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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r 08. 2024

저마다의 꿈을 깨우자


혼곤히 잠에 취해있던 나를 일깨운 한 여자가 있다. '나는 꿈을 꾸었죠'로 시작되는 노래를 부른 그녀.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본 것은 몇년 전이었다. 필라델피아 월낫 스트리트 극장은 예상외로 협소했다. 어둡고 암울한 죄수들의 노래로 열리는 첫 무대 분위기와 흡사하게 꽤나 우중충하기도 했다.

아마도 그 얼마 전에 서울에서 보았던 <노틀담 드 파리>공연장의 웅장한 외관과 규모가 떠올라 상대적으로 초라하게 여겨졌을 터다. 실제로 한국의 외형적인 발전상은 괄목할만해서 서울의 경우 어느 국제도시와 견주어봐도 별로 뒤처지지 않는다. 다만 사회의식과 정치면에서 여전히 후진성을 탈피 못해 유감이지만.

비참한 사람들이란 뜻을 지닌 레미제라블. 널리 알려진 대로 참담한 빈곤과 절망이 팽배해 있던 프랑스 혁명기가 배경이다. 사회가 혼란한 때일수록 더 고달프고 혹독할 수밖에 없는 민중들의 신산스러운 삶. 그 와중에 꽃 피는 사랑을 바탕으로 대서사시를 엮어낸 빅톨 위고의 소설을 프랑스 작곡가가 뮤지컬로 만들었다.

한 덩어리의 빵, 은촛대란 단어만 들어도 금방 유추되는 이름 쟝발잔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인간성의 본질을 성찰케 한 레미제라블. 그러나 사랑의 감화로 구원받은 영혼이 비참함을 넘어서서 더 넓고 깊게 확산시킨 사랑의 물결은 아름답고 고귀하기만 하였으니.

그날의 뮤지컬은 대단한 흡인력으로 우리를 온전히 옭아매었다. 연출자의 절제된 기량이 돋보이던, 후다닥 변화하는 놀라운 무대장치며 세심히 재연시킨 의상과 소품이며 가히 환상적이던 무대조명.

그 무엇보다도 신비로울 정도로 섬세한 소프라노, 강한 의지의 바리톤, 힘차고도 부드러운 테너, 조화로운 삼중창 합창곡까지 오페라처럼 완벽히 소화해내는 탄탄한 배역들이 돋보였다.

청순한 코제트의 노래도, 가엾은 미혼모 팡틴의 유려한 목소리도 매혹적이었지만
극도의 긴장감을 유지시켜주는 자베르 경감의 눈빛 연기며 탐욕스런 여인숙 부부의 수선스러움은 극에 잔재미를 더해주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한동안 쟝발잔의 고뇌 어린 노래 '나는 누구인가?'의 여운에 깊숙이 파묻혀 지내기도 했다. 나는 누구인가, 묻고 또 물으면서.

오래 전, 온 오프라인을 동시에 뜨겁게 만든 한 여인이 있었다. 영국 텔레비전의 신인 발굴 프로그램에서 "그렇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꿈도 있고 헤쳐나갈 수 없는 폭풍도 있어요." 란 노래를 오페라 아리아처럼 맑은 고음으로 들려준 수전 보일.

그녀가 출연한 프로의 동영상이 유례없는 조회 수를 기록하며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순간. 그녀는 노래 한 곡으로 잠깐만에 유명 인사가 돼버렸다.

시골마을 교회에서 성가를 부르던 촌스러운 뽀글 파마머리의, 세련미와는 거리가 먼 펑퍼짐한 아줌마의 인생 대역전기였다.

더불어 첫인상으로 결정되곤 하는 일반적인 선입관과 오만스럽고도 무지스러운 편견과
무엇보다 외모지상주의를 가벼이 무릎 꿇린 그녀다. 그러면서 거침없이 자기의 꿈은 뮤지컬 가수가 되는 것이라고 당차게 대답할 수 있었음은 아주 오래도록 꿈꿔온 그녀의 소망이라서 일게다.

뒤늦게 다시 인터넷을 뒤져 그녀의 노래 '난 꿈을 꾸었죠'를 듣고 보니 과연 명불허전. 청아한 목소리란 표현이 이런 경우를 이르는 것이구나 싶었다.

촌티 나는 얼굴에 볼품없는 몸매로 무대에 선 시골 노처녀의 천연덕스러움에 시큰둥 냉소를 보내던 방청객과 심사위원들이다. 그러나 첫 반응과는 달리 짧은 한 소절의 노래만으로도 이내 감탄사를 터뜨리게 만들고 종당엔 기립박수를 이끌어내고 만 그녀.

긴 세월 함께 지내다가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어머니를 생각하며 그분에게 들려드리듯 노래를 불렀다는 그 곡이 바로 뮤지컬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 I Dreamed a dream> 이었다. 극중 코제트의 엄마인 팡틴이 어쩔 수 없이 거리의 여자로 전락해가며 빛나는 꿈이 있었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면서 부르는 노래다.

수전이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은 맑고 시원스런 가창력에다 기교 부리거나 꾸밈이 없는 순수함에 더해 그녀의 목소리에 꿈이 담긴 까닭은 아니었을까. 깨어날 시간을 기다려 온 꿈. 노래 외엔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는 변변찮은 조건들이다.

그녀가 보여준 바처럼 현실이 아무리 팍팍하고 고단할지라도 꿈의 끈을 놓지 말라고 되뇌인다. 하여 좌절치 말고 끝까지 '도전'하다 보면 기회는 마흔일곱에도 찾아온다고 힘겨운 세상 향해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는 수전.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대. 숱한 청춘들이 꿈이 사라진 현실을 비관하며 미래를 잃고 자포자기 속에서 마지못해 살아내고 있다. 그녀처럼 우리도, 상황이 아무리 견디기 힘들더라도 굴복하지 말고 체념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꿈을 껴안고 기다려보아야 한다.

미증유의 팬데믹에 따른 깊은 후유증이다.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경제난을 겪으며 저마다의 마음은 춘래불사춘일지라도 창밖엔 지금 매화 꽃잎 분분히 날리며 봄이 바삐 고 있다. 꿈속의 꿈만 같은 혼몽스런 봄날이 기다리고 있는 삼월 아닌가.

이 봄이 떠나기 전 어서 나의 꿈도 흔들어 깨워야 할까 보다. 저마다에게는 깨어날 시간을 기다리는 마지막 꿈이 틀림없이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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