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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r 08. 2024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덜어내기, 비우기 연습장

짐의 무게가 삶의 무게


산티아고를 걸으며 아주 오래전 설악산 봉정암에 오르던 생각이 났다. 백담사와 오세암을 거쳐 깔딱 고개 넘을 즈음엔 눈썹조차 빼놓고 가고 싶다던 노보살님들.


짊어진 쌀 한 됫박 무게가 천근같이 느껴지며 비 오듯 땀을 쏟아내야만 비로소 봉정암에 이를 수 있었다. 오죽하면 눈썹 무게라도 덜고 싶을까, 실제 걸어보면 공감되고도 남는 봉정암 등정으로 그만큼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40그램의 무게마저 부담이 되는 길, 그래서 앞서 간 누군가는 필수품인 세숫비누조차 슬몃 표지석 위에 꺼내 놓았으리라. 그렇게 하나씩 짐을 덜어내고 지닌 것들 미련 없이 비워가야만 걸을 수 있는 길이 카미노 길이었다.


여행 날짜를 정해 비행기 표 예매하고 웹서핑 통해 준비 목록 체크해 가며 물품 하나씩 꼼꼼스레 챙겨나갔다. 짐을 꾸리면서는 수없이 부피와 무게에 신경을 썼다. 거의 누구나 짐 싸기 전에 우선 웹을 열어 선험자들의 준비물 정보를 참고하되 자신의 일정과 성향에 따라 각자 취사선택을 하게 마련이다.


필수라는 스틱도 애당초 거추장스러워 제외했다. 스패츠는 물론 손전등도 진작에 아웃. 침낭은 부피를 줄이려고 속에 든 솜을 전부 뜯어내 한주먹거리로 만들었으나 다만 등산용 양말과 방수 재킷만은 두툼했다. 카메라 역할 맡을 셀폰 두 개는 요지부동의 필수품이나 보조 배터리와 메모장도 최대한 얇은 걸로, 개인용 스푼이며 손톱깎이도 소형을 택했다. 하다못해 볼펜도 날렵한 형태의 작은 것을 챙겼고 비누도 쓰다 남은 조각을 골라 넣었다.


토종 식성 탓에 느끼할 때 입맛 개운히 다스려 줄 튜브에 든 조그만 고추장도 샀다. 매운 컵라면에 감격했더라는 후기를 보고 컵라면을 사서 알맹이만 차곡차곡 봉지에 담았어도 네 개 이상은 무리였다. 대부분 한 달간 지낼 물품을 갖고 가야 하는 데다 일회용 밴드와 상비약 등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야 하므로 이런저런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다 넣어 갈 수도 없는, 말 그대로 짐스러운 짐들. 샘플용 로션 하나에 작은 선블록 하나, 가벼운 슬리퍼에 갈아입을 옷 두서너 벌로 최대한 짐을 줄였건만 30L짜리 배낭은 이미 터질 듯 빵빵했다.


자기 체중의 1/10 정도가 적정 무게라는데 내용물을 아무리 빼고 또 빼내봐도 내 배낭 무게는 최종적으로 4,7킬로였다. 적정선을 넘겼지만 더 이상 뺄 물건은 없었다. 체구 왜소한 사람이 버거워 보이는 큼직한 배낭을 메고 걸으면 뒤따라 오는 사람 안쓰러울 테니 그도 민폐.


짐을 완벽하게 챙긴 다음 배낭을 메고 실제 상황처럼 걸어보자 깡똥하게 등에 밀착되는 아담 사이즈의 배낭이 맘에 들었다. 그런데다 누군가가 들려준 말대로, 배낭의 무게가 바로 자기 삶의 무게라니 '체중 듬직한 사람에 비해 삶의 무게가 가벼워 다행'이라며 스스로를 위무하며 걷기로 했다.



사실 짐이라는 게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 거 같지만 물이며 먹거리를 덧보태게 돼 오히려 더 늘어나게 돼있다. 첫날부터 파리에서 하루치 양식인 바게트와 크루아상 그리고 물 대용품 우유와 오렌지를 사 들었으니 별도의 짐이 또 생길밖에.


해서 생장 순례자 사무소에서 발급받은 크레덴셜(Credencial)이라는 순례자 여권 외의 유인물은 미련 없이 버렸다. 지역별 알베르게 정보가 상세히 든 여러 장의 안내문과 카미노 일정별 고도 표시 자료 지도 사진에 담은 후 폐기처분했다. 종이 몇 장마저 짐이라 무서웠던 것. 그렇게 나의 카미노 여정은 조금씩 덜어내고 비우는 일에 차츰 익숙해져 갔다. 나아가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속담처럼 어떤 경우든 대안이 떠오르며 궁즉통, 궁여지책이 나서는 법이니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들에조차 연연해하며 살아온 자신. 뒷날 떠올려보면 부질없고 어리석고 그래서 무의미한 집착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하지만 당시는 그럴 수 없이 귀하고 중차대하고 유의미하기 이를 데 없었던 사물과 생각들. 그로부터 벗어나지 않고는 우리 앞에 열린 어느 길이라도 편안히 걸어내기 어렵다는 걸 은연중 학습케 해주는 카미노였다.


짊어진 짐의 무게에 치여 헉헉거리면서도 턱 내려놓지 못하고 끝끝내 버리지 못하는 끈질긴 습(習)에 동여매여진 우리. 뜨겁게 부여안고 깊이 애착했던 모든 것, 종내는 다 두고 떠나야 하는 우리다. 그럼에도 천년만년 살 사람처럼 욕심껏 움켜쥔 손을 놓지 못했으니... 부르시면 당장 내일이라도 가차 없이 하늘나라로 향해야 하는 우리 아닌가. 그냥 빈손으로.


십계명 중 하나가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당부였다. 하느님보다 더 사랑하고 소중히 아끼는 상징물들 모두는 우상이라 정의된다. 우상이란 돌이나 나무에 새긴 다른 신의 형상만이 아니라 무형의 우상들까지 아우르는 말. 하나의 도구일 뿐인 유형의 우상은 어떤 면에서 차라리 순진한 편이고 그보다 더한층 위험한 것이 무형의 우상일 터.


물질에 목 매이거나 자식 사랑에 눈멀거나 특정 사상에 탐닉하거나 스포츠 영웅이나 정치인을 열광적으로 추종하는 따위 등등. 이 모든 탐욕과 지나치게 편향된 집착에서 벗어나기란 그리 쉽지가 않기에 부지불식간에 우상을 섬기는 꼴이 된 우리. 하긴 오랜 기간 동안 버킷 리스트 첫째로 품어왔던 산티아고행까지도 무형의 우상이었다는 걸 깨우쳐 준 카미노 길이다. 그 길도 이젠 극복된 우상 명단에 올려놓을 수 있게 됐으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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