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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r 08. 2024

며칠째 애국가 4절까지 부르는 이유

요사이 며칠째 아침마다 애국가를 부른다. 그것도 4절까지 낱말 하나하나 정확하게 발음하며 때로는 4/4박자 지휘도 하면서. 후렴구에 나오는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의 무궁화꽃 사진도 펼쳐놓고서.


뜬금없이 애국자연하고 싶어서일까. 갑자기 독립투사 흉내라도 내고 싶은 걸까. 아니면 가로 늦게 새삼 애국심이 북받쳐 올라서? 이유인즉슨, 다문화교육지원 사업의 일원이 되어 이주민의 한국어 교육을 돕고 있어서 이다. 앞으로 한국어 능력시험을 치러야 할 그녀라 한글은 물론 애국가도 미리 가르쳐 둬야 하므로. 그 시험 준비의 일환으로 애국가를 4절까지 익히는 중이다. 나도 2절까지는 어찌어찌 부르지만 3절 4절은 이번에야 제대로 익히게 됐다. 실제로 가르치면서 배우는 게 한두 가지 아니다.


높아진 한국의 위상에 준하는 다양한 사회복지 서비스가 전방위적으로 뿌리내려 많은 사람들이 충분한 복지혜택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작금이다. 그에 따라 다문화 가정, 이주 외국인에 대한 복지분야 역시 괄목할 만한 정책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다문화가족 누구라도 자신이 원하면 한국 정착에 필요한 각종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언어교육이다. 백 프로 국가 지원으로 행해지는 이 프로젝트 덕에, 은퇴한 노년기의 칠십 중반인 나까지 사회적 역할을 갖게 돼 가일층 활기차게 지낸다.



다문화가정교육지원사업처의 일원이 되어 내 건강이 허락하는 한은 언제까지든 봉사개념으로 이어가고 싶은 보람된 역할이기도 하다. 뒤뚱거리며 걸음마 배우는 아가를 손잡아 이끌어 줘, 잘 걸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 모종 한그루 반듯이 자라도록 지줏대가 되어주는 일은 얼마나 뿌듯하고 보람찬 일인가. 이같이 이뤄지는 다문화가족 한글교육은 1:1 방문 교육 시스템 하에서 이주민들을 위해 현재 활발히 가동 중이다.



다문화가정교육지원센터에서 제공되는 수업 교재는 책자의 경우 단계별로 여러 종이 나와있다. 교재 중에는 각국 언어를 번역하는 '인식펜'이란 도우미도 들어있다. 하지만 그 펜이 인식해 내는 나라는 7개 국가, 그 속에 라오스는 포함되지 않았다. 내가 담당한 교육생은 세 아이를 둔 32세의 라오스 여인. 위치도 잘 모르던 라오스라는 나라가 내게 바짝 다가왔으나 이처럼 기존의 수업교재는 별 도움이 안 됐다.



대신 스마트폰의 번역기에 의존해 수업을 진행하는 수밖에 없으나 얼마나 다행인지. 교재라는 이 없으니 전자기기라는 잇몸으로 대체해 수업을 진행해 나가므로  첨단기술력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스티브 잡스가 없었으면 어쩔뻔 했을까 싶게 그야말로 전자기기 덕을 톡톡히 보는 셈이다. 나는 라오어라면 '사바이디!' 한마디밖에 모르며 그녀는 한글은 물론 영어는 더 못 알아듣는다. 중학교는 나왔다는데 아무튼 오케이 외엔 통하는 영어가 없다.



내 경우 라오스 여인과 베트남 중학생의 한글 공부를 도와주고 있다. 따라서 하루 세 시간씩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라오스인, 금요일 하루만 학교에서 베트남 학생과 만난다. 이미 한국어 시험도 무난히 통과한 중학생은 약간의  읽기 및 발음 교정 외에는 교우관계와 미래의 꿈에 대한 대화를 주로 나눈다. 라오스 여인은 한국에 온 지 9년 차인데도 애들 낳아 기르며 집에서만 지낸 터라 한글 공부가 거의 되어있질 않았다. 그나마 다행히 가나다라 정도의 기본 교육은 받아, 초등 저학년 수준의 읽고 쓰기는 겨우 됐다.



라오스 여인을  처음 만난 날, 킁 아뜨르~란 말을 반복하는데 도통 말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소리는 큰 아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 정도로 시원찮은 발음이라 목소리는 잔뜩 주눅이 들어 자꾸만 기어들어가곤 했다. 위축돼 목소리가 졸아들 때마다 좀 더 강하게! 크게 소리 내서 자신있게 해 봐! 내 음성은 계속 옥타브가 올라갔다. 한편 제대로 잘하면 아낌없는 칭찬을 보냈다. 이번 발음은 됐어 됐어! 아주 잘했어! 최고야! 와우, 확실히 기억하네!! 격려하고 성원해줬다.



닿소리인 자음은 혀가 입 안 어딘가에 닿아야만 나는 소리다. 서로 마주 보며 입을 벌려 혀를 입천장에 닿게 해 겨우겨우 발음이 교정될 수 있었다. 자음 중 특히 ㄹ 발음에 가장 취약했는데 가을 아들 거울 등이 그 예였다. 가은은 가을, 아뜨르는 아들, 거운은 거울이라고 수차례 반복 연습 결과 점진적으로 나아졌다. 모음에도 걸리는 부분이 있었으니 ㅕ에서 걸려 넘어지기 일쑤였다. '겨울' 발음이 '거운'에서 '겨울'로 고쳐지기까지에는 스마트폰 도움이 아주 컸다. 폰의 사진 기능을 켜 동영상에 맞춘 뒤 서로 발음을 해본 다음 갤러리로 들어가 직접 틀어주면 차이점이 확연히 드러나기에 교육효과가 좋았다. 이때 본인이 스스로 틀린 부분을 인지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게 되므로 그 점을 집중적으로 복습하면 됐다.



나도 이민살이를 오래 해봐서 안다. 입에서는 뱅뱅 도나 제대로 된 발음이 안 나와 안타깝던 그 기분을. 하고 또 해봐도 따라잡을 수 없던, 버터 칠한 미국인 발음의 까탈스러움이라니. 내 경우, 오십 넘어 이민을 갔기에 가장 어려운 것이 외국어 습득, 그중에서도 발음이 문제였다. 인문계에서는 주 배당 시간이 꽤 많은 편인 영어이지만 수업 시간에 배운 영어교육은 현장에서 별로 먹혀들지 않았다. 현지인이 통상 는 영어, 도르르 구르듯 유창하게 내리지르는 말은 대충의 뉘앙스나 파악할 뿐 옳게 알아듣기조차 힘들었다. 무엇보다 일반 미국인과의 대화 시에 발음상의 문제로 번번 걸려 넘어졌다.



이를테면 뉴저지에서 살 때 바로 이웃인 펜실베니아를 내 딴에는 혀 굴려가며 말해도 그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Intonation과 Accent, 즉 그들의 억양과 강세는 아무리 연습해 봐도 똑같이 흉내 낼 수가 없었다. 우리 식 표기상으로는 펜실베니아, 그들은 펜슬베이니어라 하는데 특히 '슬'은 잦아들었다가 '베'를 높고 강하게 발음했다.

암만 애를 써봐도 도무지 그 억양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미 굳어진 혀, 억양과 강세에 주의를 기울이며 발음 교정을 하려고 애써봤자 허사였다.  



이처럼 낯설고 말 설은 미국에서 이민자의 생활을 직접 경험한 바 있어 한국으로 살러 온 이주민들의 고충을 십분 이해한다. 하여 한국으로 리턴해 자리 잡자마자 가장 먼저 다문화가정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그러나 심리 상담의 실제 현장학습도 제대로 거치기 전, 우연히 다문화 정교육지원 시스템이 가동됨을 알게 됐다.



2021년도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인구수는 5,182만 명이며 이주 외국인 수는 203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제주에만도 다문화 학생 수는 전체 초중고 학생 수 대비 3%에 달했다. 현재도 그러하지만 갈수록 점점 더 세상은 다양성이 공존하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이에 언어와 문화가 다른 외국에서 온 이주자들과의 차이를 인정하되 차별 두지 않기. 선입견 없이 '그들'이 아닌 '우리'로 살아가야 하는 시대 변화에 대비한 의식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바로 지금이다.



그들과 원활히 소통하므로 편견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한글교육의 첫걸음을 나는 그렇게 떼어놓았다. 교사 신청 자격은 은퇴 교직자나 관계 직종에 종사하다가 물러난 시니어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젊은이 일자리와는 전혀 충돌되지 않는 노년기 봉사 차원의 활동을 하며 소정의 거마비를 받는 수준이나 보람으로 기꺼이 이에 임한다. 구나 가르칠수록 가르칠 거리가 속속 줄을 지어 나타나니 하루 세 시간 수업도 후딱 지나가 버린다. 스트레이트로 세 시간 떠들고 나면 나도 시장기가 돌지만 그녀도 지칠법한데 그녀 눈빛은 여전히 초롱하다.



다문화가정교육은 원활한 의사소통에 필요한 언어 수업이 우선되어야 하나, 한국어 교재를 통한 한글 공부만이 전부는 아니다. 언어교육 외에 서로 다른 문화와 전통과 생활방식이며 일상 습관과 사고방식 등등 그때그때 적절한 주제로 수업은 진행된다.

뿐만 아니라 예절, 청소, 위생, 운동법, 건강 문제, 자녀교육까지도 아우른다. 심지어 정리 정돈이며 물자절약에 관해서도 가르쳐야 한다.



제일 첫날 교육은 그녀의 집 현관 정리였을 것이다. 뒤죽박죽 어수선하게 널려있는 슬리퍼와 장화를 짝 맞춰 가지런히 해두라고 가르치는 일뿐인가. 마루 김치냉장고 위에 컵라면이 수북 쌓여있었다. 컵라면은 부득이 야외에서나 먹고 집에서는 라면을 냄비에 끓여 먹으라고 일렀다. 그보다 좋기로는 라면 대신 국수 요리를 해 먹는 게 낫다고도 다. 아무리 식약처의 안전발표가 있을지라도 인스턴트 식품이나 일회용품의 잦은 사용은 어린이 건강에 어떨지 상식적으로 영 마뜩잖아서다.



어느 날 그녀가 수업 중에 모기를 한 마리 낚아채 잡았다. 그녀는 두루마리 휴지 둘둘 말아서 쪼끄만 모기 하나를 싸서 쓰레기통에다 버렸다. 전후세대 관점으로는 요즘 사람들 뭐든 흔전 만전, 물자 중한줄 모르고 낭비벽 자심해 보인다. 그 즉시 휴지 한 칸만 떼서 쓰라는 주의를 주며 이걸 뭘로 만드는지 아냐고 물으니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럴 때 자연 설명이 길어진다. 나무로 만드는 종이를 아껴 쓰지 않으면 나무가 마구 줄어든다고 설명해준다. 밀림 이룬 열대우림에서 온 그녀는 나무는 자꾸 베어 쓰는 게 좋다고 여기는 수준이라, 숲이 지구의 허파란 말은 하나 마나다.



왜 숲이 울창해야 우리에게 이로운지, 나무의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산소와 탄소동화작용까지 들먹이려면 폰의 도움만으로는 부족했다. 무엇보다 산소라는 단어와 탄소동화작용을 내 재간으로는 알아듣게 설명할 길이 없었다. 폰의 번역기를 돌려 산소를 라오어로 전환시켜서 이거 알아? 하면 비로소 고개 끄덕거린다. 산소란 글씨 아래 라오어로 써두게 한 뒤 꼭 외워둬야 한다고 강조도 한다. 매사 이런 식이다.



일상적으로 쓰는 단어가 아닌 경우 모르는 거 투성이다. 이를테면 마트는 알아도 편의점은 생소하고, 병원은 알아도 학교 보건실은 뭐 하는 곳인지 모른다. 한번도 학교에 가본 적이 없으니 강당은 무엇하는 데며 음악실, 미술실이 따로 있다는 게 자못 신기한 그녀다. 모든 바깥일은 다 남편이 도맡아 해왔기에 학교도 은행도 병원도 간 적이 전무한 까닭에 사회생활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던 그녀. 그저 아이 셋 낳아 젖 먹여 기르며 빨래하고 설거지나 했지 직접 시장에 가 콩나물조차 사본 경험이 없으니 말해 무엇하랴. 그러나 이젠 컴퓨터도 새로 익혀야 한다. 앞으로 쳐야 할 한국어 시험에 대비, 우리집에서 컴퓨터 기본교육도 시켜야 할 판이다. 그녀 집에는 와이파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녀 체중은 60킬로가 넘으며 여섯 살인 딸애는 거의 30킬로 가깝다고 하였다. 기가 찼다. 어린이집에 다녀 한번도 본 적이 없는데 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니 고도비만아였다. 여름철이라 땀띠로 목이며 허벅지 여기저기가 헐 정도라고 했다. 이 상태로 그냥 방치했다가는 건강도 건강이지만 명년에 학교 입학하면 아이들로부터 따돌림받기 십상일 터.



인스턴트 음식을 줄이고 채소 과일 위주로 식생활을 조절해 줘야 한다는 데서부터 적당한 운동방법 등을 유튜브에서 찾아 카톡으로 넣어줬다. 일단 엄마가 혼자서는 아무 일도 못하는 수준, 자기 건강관리를 할 수 없으니 딸 역시 그저 먹이고 빨아주고 재우는 일이 전부였다. 아이들 데리고 공원을 걷는다거나 학교 운동장에 가서 달리기를 한다거나 등등 일체의 외부 활동을 해본 적이 없는 그녀였으니.



마을 산책길에 운동구점 앞을 지나게 됐다. 줄넘기 두 개를 샀다. 다음날 그녀에게 전해 주면서 딸애와 열심히 줄넘기를 하라고 일렀다. 주말이 지난 월요일 아침, 그녀는 발목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고 엉거주춤 인사를 했다. 세상에나! 어이없게도 그녀는 무턱대고 할 수 있는 한 지나칠 만큼 줄넘기를 했던 것. 설마 그런 무작스러운 사태까지 생길 줄이야 상상이나 했으리. 그녀는 마당에서 줄넘기 빡세게 한 그간의 경과를 손짓 발짓으로 설명하면서 생글다. 딸애는 줄넘기하며 땀이 줄줄 흘러 곧장 샤워를 해야 했다고. 자신의 발은 어제보다 한결 좋아져 괜찮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민망한지 자꾸 발을 감췄다.



쓸데없이 켜 둔 전깃불 끄라면서 잔소리.  재활용 쓰레기 제대로 분리시키라며 또 잔소리. 햇빛 좋을 때 빨랫줄에 애들 요 일광소독 시키라 이르곤 시엄니 같지? 했다. 이어서 시엄니가 무슨 말인 줄 알아? 묻자  우리 할머니요, 한다. 아랫동네 사는 시어머니 집이 있는 방향을 가리키며 살짝 웃는 그녀. 아직도 그녀는 꾸밈없이 순수하다. 배우려는 열의 가득해 수업태도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탐구적인 눈빛 반짝대며 설명에 귀 기울이다가 모르면 몰라요, 알아들었으면 예~예! 유치원 아이처럼 즉답한다.


지난달 수업 시간에 좋아요와 싫어요 의미를 설명해 준 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걸 써보라고 했다. 한참 생각하는 눈치길래 짐짓 딴전 피우다가 그녀가 다 썼어요, 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선생님 좋아해요." 그간 나름 보람 느끼며 즐거이 해온 역할이다. 순간 뭉클함이 밀물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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