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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Nov 07. 2024

청와대 본관보다 관저가 더 궁금

추적대는 빗줄기로 신록 한층 싱그러운 창밖을 내다보다가 불현듯 비원이 떠올랐다.

금아 선생이, 비원은 서울 한복판에 있으면서 숲이 울창하며 산속 같은 데가 있다 하였다.

이어서, 미(美)는 그 진가를 감상하는 사람이 소유한다고 했다.

덧붙여서, 비원은 창덕궁의 일부로 임금들의 후원이었으나 실은 후세에 올 나를 위하여 설계되었던 것인가 한다, 고 썼다.

비원에 가기 전, 길목에 있는 성북동부터 들렀다.

서울에 생긴 최초의 문화예술인 마을이었던 성북동이다.

수연산방과 심우장 길상사뿐인가, 운 좋으면 간송미술관도 둘러볼 수 있다.

호젓한 기와지붕 아래 비에 젖어 고개 숙인 모란꽃과 매발톱꽃에 빠져 길상사에서 너무 지체하는 바람에 점심때가 지났다.

일단 비원은 접어둔 채 괜찮은 식당을 찾아 북촌을 헤매고 다녔다.

어느 맛집은 예약 손님이 마흔 명도 넘었고 어디는 주차장이 만원이었다.

국숫집이며 팥죽집도 이런저런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길거리에서 우왕좌왕하던 우리는 마침 가까이 있는 청와대나 구경 가자는데 의견 일치를 봤다.

형부는 시장해서 을지로에 가서 식사를 하겠다며 차를 몰고 휑하니 가버렸다.




그 바람에 우연히 가게 된 청와대다.

처음 들어간 곳은 춘추관, 언론 브리핑이 진행되던 청와대 프레스센터 격인 곳이다.

금색 무궁화 문장이 든 출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자 둥근 잔디밭이 나왔으며 그 앞에 이층 한옥이 고압적으로 버티고 섰다.

비록 창밖에 있긴 하나 신문고인지 큼직한 북이 걸린 전각이 보였고 대통령 휘장이 걸린 곳 등 비교적 자유로이 이층 건물까지 둘러봤다.

정해진 길만 따라 걸으니 금세 한바퀴, 그때까지만 해도 청와대 본관은 저만치 따로 있다는 걸 몰랐다.  

청와대로를 따라 얼추 십여 분 걸었으리라, 그만큼 청와대가 차지하고 있는 대지면적이 방대하다는 얘기다.

규모 면에서 미국 백악관보다 훨씬 크고 넓다더니 과연 그랬다.

백악관은 생각보다 작았고 조촐했는데 청와대는 예상외로 으리번쩍했다.

하긴 행정부 수반의 관저만이 아니라 한국의 입법부 의원 숫자도 지나치게 많아 물경 300명이나 된다.

미 상원 의원 100명에 각 주에서 선출된 하원 의원은 435명인 미국은 50개 주가 있으며 한국보다 대략 98배나 큰 나라다.

그중에 뉴욕주 한 곳의 경제 규모만 해도 한국보다 월등 크다.

조그만 나라 대통령 관저 규모가 이리 엄청나 집무실이 운동장만 해도 문제를 제기하는 자 없이 착한 백성만 사는 나라 대한민국.  

영국, 독일 총리 관저나 일본 수상 관저며 대만 총통 관저도 청와대와는 숫제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 작은 규모란다.

일제 강점기라고 표현하나 암튼 식민통치 시대 조선총독 관저를 그대로 집무실로 사용하면서 청와대는 시작되었다는데.

청와대 터가 풍수지리상 나쁘다는 말은 누차 나왔다.

영욕이 교차하는 최고 권력자 자리이긴 하나 결국 개인적 욕망이 앞서 흠결과 오점 크게 남긴 탓이지만.

그러니 역대 대통령마다 대부분 말년이 흉하지 않은 이 별로 없다시피 하였으므로 떠도는 썰이 그럴싸하게 들리기도 한다.

사실 그 터는 조선시대 왕을 낳았으나 왕비가 되지 못한 일곱 후궁의 신위를 모신 칠궁 사당이 자리한 곳이라 어쩐지 뒤숭숭하다.

일제 총독이야 개의치 않았겠지만 크리스천인 이 대통령 당시부터 께름칙하게 여기지 않았을까.

열두 명의 역대 대통령 생애를 떠올리며 걷다 보니 그제야 북악산 아래 청기와집, 뉴스에서 자주 본 본관 건물이 나타났다.

예약도 없이 무작정 갔는데 65세 이상은 현장접수도 가능했다.

경복궁 후원이었던 자리라서 이리라, 경복궁을 관람한 후 뒷문인 신무문을 통과해 길을 건너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이미 청와대 정문 입구에는 숱한 인파가 몰려있었다.

우리도 그 무리에 끼어 떠밀리듯 청와대 안으로 들어갔다.

조경 멋진 정원이나 울창한 숲길보다도, 웅장한 본관보다도, 더 관심을 끄는 곳은 대통령이 살던 관저였다.

살림집은 청와대 관내에서도 가장 깊숙한 자리에 구중궁궐 내전이듯 사리고 앉아있었다.

몇 해 전 탄핵정국이던 당시 미국까지 들려오는 풍설은 매우 고약스러웠다.

별의별 말 같지도 않은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문정부가 들어서며 청와대 입주 일이 늦어지게 된 이유인즉 박 대통령의 거울방을 철거하느라 그랬다는 등의  가십성 다분한 낭설들.

피트니스 실이 야리꾸리한 거울방으로 둔갑, 선동질에 가까운 가짜 뉴스가 마구마구 판을 치던 때였다.

이번에 관저를 구경하고자 했던 것은 내실의 하얀 옷장이 진짜로 그리 큰가 싶어서였다.

유난히 정숙 씨가 옷탐이 많았는지 즐비하게 늘어서 있던 뉴스 속의 그 옷장은 유리창 너머 벽에 나란히 선 채 건재했다.  

내부는 개방하지 않아 집 둘레를 돌며 화려하게 빛나는 실내 샹들리에며 부엌 기명들 밖에서 감질나게 홀깃 훑어보는 게 고작이었다.

단지 관내 일부 외관만 수박겉핥기식으로 돌아보게 한 점, 본관 개방과는 차이가 많이 났다.

그나마 수확은, 정무를 보는 본관과 살림집인 관저가 이처럼 멀찌감치 떨어져 있으니 국정운영의 누수현상 불 보듯 뻔히 보였다.

전직마다 오 년 간 세상 온갖 영화 누리며 희희낙락했으나 결국 그 곱절의 세월 갚아야 할 빚의 무게는 어느 정도였던지.

옛말 그른데 없다고 화무십일홍이며 인연은 지은 대로 가고 업장은 쌓은 대로 간다 하였다. 2023

* 그로부터 일 년여 지나자 정숙씨 옷장이나 타지마할 관광 정도는 애들 재롱으로 보이는
수준의 놀라운 일이 연일 터지니...ㅉ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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