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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pr 03. 2024

'동백꽃 피는 날에' 감동적인 무대의 여운

1949년 오늘  4.3

어제 지인으로부터 카톡을 받았다.


오늘 오전에 방영되는 KBS제주 다큐 시청을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외가의 4.3 내력이 담긴 다큐라 했다.


지인은 글을 쓰는 이다.


언젠가 화제가 4.3에 이르렀을 때 4.3에 대한 평가는 더 먼 훗날 남북이 통일된 다음,  후대의 역사가 평가해야 한다는  내 지론을 묵묵히 듣던 그였다.


아마도 그래서 더 내가 시청해주길 바란 건지도.


제주 섬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직간접적으로 4.3과 연계되지 않은 이들이 거의 없다.


반면 나를 비롯 육지에서 온 외지인이라면, 학교에서 부분적인 내용만 배워서 얼핏 알 뿐이다.


남로당의 사주에 따라 죽창을 든 무장대가 도내 지서를 습격해 군경을 사살하며 촉발된 비극의 현장에 토벌대가 투입되며 섬은 광기 어린 전쟁터가 돼버린 것.


살기등등했던 무장대와 토벌대의 좌우 대치 상태에서 억울하게 희생당한 주민들.


그로 인해 섬 인구의 십분지 일이 생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https://youtu.be/cK7kvOhhvS0?si=6LA1xwIBg0rXmezg

 

다큐를 보는 동안 몇 차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12살 소년은 만주와 일본에서 유학한 엘리트 형들을 둔 까닭에 어머니와 형제자매들이 처절하게 죽어가는 참상을 목도한다.


소년은 애먼 주홍글씨를 피해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간다.


모진 질곡의 세월을 견뎌내고 뉴욕에서 작은 글로서리를 하며 가정을 꾸린 그.


마침내 아메리칸드림을 일궈낸 그는 의사 아들에 변호사 딸을 키워낸다.


그의 나이 88세에 이르러 가슴에만 품고 산 비극의 가족사가 드디어 밝혀진다.


유전자 감식에 의해 암매장된 친형을 찾게 됨으로 해서다.


나는 지인에게 'I am sorry'란 한 문장만을 찍어보냈다.

저지난해 사월이었다.


모슬포에 사는 길벗과 연극 공연 예약을 해둔 터라 예술의 전당 앞에서 유 선생을 만났다.


음악교사로 은퇴한 그녀인지라 리사이틀 무대를 자주 찾는다기에 공연 소식을 전했더니 무척 반겼었다.


그렇게 창작 뮤지컬 '동백꽃 피는 날에' 마지막 공연을 어제저녁 서귀포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관람했다.


이 뮤지컬은 '2022년 방방곡곡 문화공감사업'인 문예회관 기획·제작 프로그램’ 공모에 선정된 작품이다.


4·3에 대한 트라우마가 깊은 할머니는 집 뜨락에 서있는 불에 타다 만 동백나무에 유달리 집착한다.


한 맺힌 사연을 가슴에 묻고 사는 할머니와 북촌마을 개발을 찬성하는 마을 주민들의 갈등 국면은 첨예하게 맞부딪곤 했다.


끝내는 갈등을 넘어서게 되는 극복 과정과 화해에 이르기까지의 사연이 담긴 이야기다.


4·3의 의미를 되새기며 새로운 희망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제주 고유의 민요 선율과 현대 모던 재즈가 적절히 버무려진 퓨전 국악 뮤지컬로 러닝타임 100분간 진행됐다.


연출·극작을 맡은 김재한의 탄탄한 연출 기량과 기승전결이 완벽한 스토리 구성이 돋보였다.


제주 출신 작곡가 김경택의 수준 높은 음악성에 매료돼 백 분 동안 온전히 빠져들었다가 엔딩 시그널 이르러도 여운에 취해 쉬 일어나지 못했다.


주제 자체가 던지는 질문에 묵지그래 해진 데다 내용이 워낙 가슴 먹먹하게 만들어 자못 숙연해지기도 한 탓이지만.


출연진은 주인공 정분임 역을 맡은 배우 채연정 등 기량 돋보이는 뮤지컬 배우 여덟 명만으로도 무대는 꽉 채워졌다.


사진 촬영이 금지된 관계로 공연이 마무리된 다음 엔딩 장면에서 몇 컷 담았을 뿐이다.


해방 후 극도의 혼란기에 벌어진 당시의 일들 그 통한의 상처는 다시 헤집기보다 훗날 역사의 판단에 맡기고 조용히 묻기로 한다.


다만 기억하면 영영 지지는 않는다니 시대의 광기에 의해 무참스레 떨어진 붉은 동백꽃 잊지는 말자.


4·3 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분들을 기리는 74주년 추념식이 열리고 있을 오늘 아침.


하늘빛 유독 창창해서 외려 더 처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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