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전 일본 북서부 니가타 현을 진원으로 하는 진도 6.8의 강진이 발생했다고 뉴스는 보도했다. 지진 발생 이후 일본 기상청은 니가타 현에 쓰나미 주의보를 즉각 발령했으며 정전사태로 모든 열차 운행이 보류됐고 인근 도로도 운행을 통제했다. 강진이 쓸고 간 뒤 마을은 부서진 가옥과 균열된 도로로 지진의 상처가 뚜렷이 남겨진 채 하루 종일 구급차와 소방차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니카타 지역에 긴급 설치된 대피소에 수용된 주민만도 만 2천여 명, 십여 명의 사망자도 보고됐다. 엎친데 덮친다고 기상청은 앞으로 사흘 안에 리히터 규모 5 이상의 여진이 발생할 확률이 50%나 된다고 밝혀 일본열도 전체가 지진 공포에 떨고 있다는 것.
여섯 해 전에 지진을 직접 경험한 바가 있다. 이민 보따리를 풀기도 전, 미국에 닿자마자 복병 같은 지진을 만났다. 그때 시애틀 인근을 덮친 지진도 리히터 규모 6.8의 호된 강진이었다. 마냥 들떠오른 감정을 지그시 눌러 다스리라는 자연의 경종이자 말없는 나무람인가. 하지만 대륙이 안겨준 첫 선물치고는 아무래도 너무 고약스러웠다. 겨우 시차적응이 될까 말까 한 시점에서 겪은 지진에 혼비백산, 한참을 공황상태로 지냈다. 그 잠시, 험한 제트기류에 든 비행기 같댈까. 폭풍의 바다 한가운데에 뜬 작은 배 같댈까. 미친듯한 난폭 운전자가 모는 자동차 같댈까. 몸의 중심을 잡을 수 없게 막무가내로 뒤흔들어대던 그 순간. 폼페이 최후의 날이 떠오르고 지구의 종말이 이렇게 올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그날 아침, 포 소리 비슷한 굉음이 간헐적으로 들리더니 뒤이어 불규칙한 진동이 일며 집 전체가 마구 흔들거렸다. 전등이 쏟아져 내릴 것 같고 커다란 가재도구들이 그대로 쓰러져 덮칠 것 같은 기세였다. 더럭 겁이 났다. 황급히 방을 빠져나왔으나 거실로 통하는 마룻바닥이 파도 넘실대듯 심하게 요동을 치고 있었다. 세워둔 괘종시계가 엎어져 부서지고 진열장 안의 유리잔이 한쪽으로 쏠리며 깨어졌다. 예사롭지 않은 위급상황임은 전화 불통에다 전기가 끊어지며 한층 절실하게 다가왔다. 두려움과 황당감 속에서의 몇 십 초 후, 대지가 심하게 진저리 치듯 부르르 떨리더니 이윽고 흔들림이 멎었다. 한바탕의 거센 용틀임은 지진이었다. 천지의 격랑이 지나가자 얼마간 멀미하듯 속이 다 울렁울렁 메스꺼움이 가시질 않았다.
오후 들어 전기가 들어오자 텔레비전의 뉴스는 지진 보도와 피해 속보로 내내 이어졌다. 워싱턴 주에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고속도로 봉쇄, 시텍 공항은 잠정 폐쇄조치가 내려졌다. 길게 갈라진 도로, 붕괴된 가옥, 균열을 보이는 건물 벽, 박살 난 대형 유리창 등이 자연재해의 가공스러움을 생생히 보여주었다. 난리를 겪은 듯 엉망진창이 된 사무실 풍경이며 슈퍼마켓의 진열대에 쌓아둔 물건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내린 모습도 보였다. 공포에 질린 시민들의 표정이 화면에 반복돼 나오는가 하면 놀란 나머지 맨발로 뛰쳐나온 사람들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지각 충돌로 인한 지진을 창졸간에 그렇게 겪었다. 고요한 듯하나 쉼 없이 움직이는 지구. 지표 밑에서 두 방향이 다른 판이 서로 맞물렸다가 어느 순간 판 구조가 튕겨져 나오며 발생한다는 지진. 지진은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며 피해 정도가 대규모라는데 그 특성이 있다 하였다. 시애틀 부근은 지질학적으로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하는 곳. 인근 지역에는 세 곳의 지진 진앙지를 갖고 있어 지진 재발 위험이 상존할뿐더러 이미 수차 지진도 겪은 터다. 그뿐인가. 금번의 지진은 단지 주의 환기용이자 경고적 지진일 따름으로 언제 또 지진이 발생할지 모른다며 매스컴은 가뜩이나 놀란 사람들 더 주눅 들게 했다.
언제 다시 닥칠지 모르는 재난, 죽음 자체가 두렵다기보다 아무 준비 없이 졸지에 지하에 묻혀 비명횡사당하는 일은 결코 원치 않는다. 더구나 새로운 기대감을 갖고 고국을 뒤로한 이민길이 아닌가. 묘목이 새 흙에 뿌리내려 자리 잡기 전 보다 평화로운 정착지, 내일을 기약하며 안식 누릴 수 있는 땅을 찾아야 했다. 일단 시애틀을 벗어나기로 가족 간의 의견은 모아졌으나 무작정 아무 데나 갈 수는 없는 노릇. 그즈음 동부에 사는 외가 쪽 친척의 전화를 받았다. 어렵사리 용기를 내어 우리의 현재 입장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했다. 외사촌 언니는 흔쾌히 우리를 곤경으로부터 구해주었다. 가방을 꾸려 망설임 없이 동부로 향했다. 한국에서의 미국행 결정만큼이나 과감한 결단이자 또 하나의 도전이었다. 태평양 연안에서 일곱 시간을 날아온 곳, 대서양 연안의 뉴저지에 마침내 생활의 닻을 내리게 됐다.
뉴저지, 사람 사는 곳 어느 데인들 유다르랴 만은 어딘가 모르게 한국과 닮은 자연환경에도 친근감이 들었다. 사철이 분명하고 소나무 참나무 등 산야의 풍경까지 낯설지 않은 땅. 사람들도 대부분 예의 바르고 점잖은 편이었다. 그 풍토가 그 인심을 낳는 것인가. 만나는 한국인들도 살갑고 인정스럽기만 했다. 특히 이곳은 그 어떤 자연재해도 발생하지 않는 곳, 지진은 물론 토네이도나 허리케인과도 관계가 없는 지역이라 한다. 대륙이 내게 준 첫 선물인 지진. 그러나 오히려 천만다행이라 여겨졌다. 만일 터 잡고 뿌리내려 일을 진행시킨 상태라면 삶의 근간을 옮긴다는 것이 예삿일이 아니었을 터. 하늘의 보살핌에 돌이켜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 높은 곳에 예비된 신의 뜻을 인간의 얕은 지혜로 어찌 다 헤아리겠는가. 결과적으로 우리를 보다 나은 땅으로 인도해 준 대륙의 첫 선물인 지진, 새옹지마의 고사 그대로다.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