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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Dec 06. 2024

성읍마을 지키는 노거수 팽나무

91년 여름 뜻밖의 보너스를 받았다.

파격적인 삼 박 사일의 공인된 휴가.

결혼 이후 이십여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살림 사는 주부로서 누리기 어려운 특혜라 그 며칠간을 기다리는 동안 해외 나들이 이상의 설렘으로 들떠 있었다.

더구나 단 혼자만의 여행기회다.

일행이 있는바도 아니며 짐 지워진 목적도 없다.

어떤 틀이나 일정에 매인 것도 아니다.

명목은 창작마을에서의 창작 활동이지만 순전히 내 뜻 나름으로 요리할 수 있는 자유자재한 시공간이다.

가정과 가족으로부터, 가사로부터 일상적인 테두리를 떠나서 완벽히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당시 이어령 문화부 장관의 특별 배려로 화가 문인들에게 일주일쯤 전국 어느 민속마을이든 선택해 예술 창작의 시간을 갖도록 한 것.  


 


마음 같아선 제주 성읍마을에 가고 싶었으나 가까운 낙안읍성으로 생각을 돌렸다.

주어진 복이라고 좋은 거 한꺼번에 마구 과용했다간 체할 거 같아 수위 조절을 했던 것.

암튼, 그때부터 벼르던 아니 사모해 온 정의현 성읍마을이라 그곳으로 향했다.

표선에서 버스를 내려 환승하려고 주민에게 길을 물어봤다.

민속마을 가려는데요, 했더니 저 아래로 죽 걸어가면 된다고 했다.

걷는데 이골이 난 사람이니 그쯤이야, 싶어 설렁설렁 걸어갔다.

어라? 근데 해안 길이 나온다.

푸른 바다 배경으로 죽죽 뻗은 야자수가 시야 시원하게 했다.

길가에 제주민속촌이라 새긴 돌이 나타났다.

아차~싶었지만 이왕 내친걸음이니 끝까지 걸어 민속촌 매표창구로 갔다.

성읍마을 가려는데 잘못 온듯싶지만 여기도 들어가 볼까 묻자, 양쪽 분위기 비슷하니 길 건너에서 버스 타면 금세 성읍마을이라 했다.

친절히 안내해 줘 고맙다는 말을 남긴 다음 버스로 잠시 후 성읍마을에 도착했다.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 1리는 마을 전체가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로 정해진 민속마을이다.

고려 때부터 한라산 북쪽에 제주목이라는 행정청을 둔 외에 조선 태종 때 동쪽에는 정의현, 서쪽에는 대정현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왜구의 노략질이 빈번해 마을 둘러싼 높고 긴 성벽 어찌나 견고하게 쌓았던지 지금껏 원형이 잘 유지 돼오고 있었다.

오랫동안 정의현의 중심지로 번성하던 성읍은 일제강점기 면 소재지로 격하되며 일반 농촌마을로 주저앉았다.

도로변에 전통 초가집과 돼지를 키우는 돼지막, 각종 일상용품들이 비교적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어 있는 성읍마을.

말로만 듣던 물허벅과 물구덕을 내려놓는 시설인 '물팡' 실물도 처음으로 봤다.

제주 흑돼지가 실제 사육되고 있는 '돗통시'(돼지= 도새기+ 변소 =통시) 역시도.

비가 와도 화산석이라 물이 죄다 빠져버리는 제주라 귀한 빗물을 모아두는 '촘항'이라는 것도 진기했다.

큰 나무 밑에 물 항아리를 놓아두고 띠나 짚을 댕기머리처럼 엮은 새촘 통해 취수되도록 하고 항아리 물을 정화시키려 청개구리 노닐게 했다고.

민속 보존은 그런대로 잘 돼있었으나 다만 민속마을 관리는 미진했던지 빈집이 너무 많아 아쉬웠다.

천연기념물 제161호인 팽나무와 느티나무, 읍성 안의 관청과 객사, 정의 향교, 국가 민속 문화재인 성내 민가를 천천히 둘러봤다.

마을 규모가 커 구석구석 다니다 보니 어느 결에 저물녘.

남쪽 성벽 위 붉은 깃발 사이로 바라보는 석양 장엄했으며 마을 초가에 스며드는 노을빛은 부드럽고도 고왔다.  

날씨가 포근해 고목 숲 위로 뜬 하현달도 시립진 않았다.




 

 

길이가 1200미터나 된다는 길고 높은 돌성은 아주 견실했다


 

 


 

 

세 곳에 만든 성문 위 성루/성곽 폭은 서너 사람이 걸어도 남을만한 너비였다.



 


 

 


 

 

신격화되고도 남을 노거수 팽나무와 느티나무 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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