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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pr 09. 2024

시·서·화(詩書畵) 삼절을 이룬  여여재 강행원 선생

자코메티의 조각처럼 살이란 살은 다 발라내고 오직 뼈만 남겨진 조슈아 트리가 여기저기 죽은 듯이 산 채로 그저 묵연히 서있는 사막에서다. 문정희 시 '사막에서 만난 꽃'이 홀연 생각났다. 눈부신 맨살 드러낸/ 캘리포니아 사막에서/몇 년째 묵언 중인 스님을 만났다/햇살 부서져 흰 것뿐인 벌판에/기괴하게 몸을 튼 사라쌍수나무/기쁜 웃음 만발한 바위로 앉은/청화스님, 눕지 않고 그대로 십수 년이라/서울서 간 나에게 백지 내밀던/사막에 핀 한 송이 꽃...


이 시대 대표적 선승으로 이십 년 전 입적하신  청화 스님. 스님은  장좌불와(長坐不臥)와 일일일식(一日一食)으로 혹독하게 수행해 온 구도자였다. 해외포교에도 전력을 쏟아 캘리포니아 각지를 돌며 한국 불교를 널리 확산시켰다. LA에서 두 시간 넘어 걸리는 팜 스프링스 베닝 소재 금강선원을 찾았다. 묵언정진하며 미국 포교에 앞장선 청화 큰스님의 발원으로 건립된  사찰이라 했다. 강렬한 햇살 내리 꽂히는 메마른 민둥산 휘휘 휘감아 굽이틀자 황량한 산자락에 우뚝 일주문이 서있었다. 노송 둘러선 숲길에서나 만나는 일주문에 익숙한 터라 그 풍경은 마치 접사(接寫)한 사진처럼 기묘하고도 낯이 설었다.


고즈넉한 산사의 멋이야 애당초 이 동네 몫은 아닐지라도 왠지 엉거주춤 어설프기만 한 전경이었다. 이름 모를 붉은 꽃송이를 탐하는 벌새 나래짓 소리 크게 들릴듯한 적요 속. 어디선가 뎅뎅 풍경소리가 섞여 들었다. 참선한다기보다 고행하듯 땡볕 아래 좌정한 법당 벽 여기저기를 기어 다니던 도마뱀이 느닷없는 방문객에 놀라 잽싸게 숨어버렸다. 인기척이 반가운 듯 누렁이인지 진돌이인지가 발치 가까이 다가와 꼬리 치며 킁킁대더니 싱겁게 물러났다. 적막하기 그지없는 미국 안의 고도(孤島)였다. 이미 어른 떠나신 지 삼 년이 지난 뒤, 깡마른 모습에 눈빛 형형하나 온화한 표정의 노승 영정만 기다렸다.


서귀포 문화예술인 탐방 기획으로 만나 뵌 윤산 여여재 강행원 선생.   헌데 무슨 연고로 서두에 느닷없이 청화스님인가. 윤산은 청년 시절  불교에 귀의해 큰 스승 청화 선사 문하에 들어 십 년간   수도자의 삶을 살았다. 청화스님은 세속의 인연으로는 그의 사촌 형님이셨다. 고등학생 때 부모님을 모두 여의고 학업을 이어갈 길이 막연해지자 청화스님 밑에서 행자생활을 시작했다. 동시에 학교에 복학을 할 수 있었다. 고2 때 전남 서예 도전에서 특선을 했던 그는 산문을 나와 본격적으로 서예의 길에 들어섰다. 네 살 때부터 붓을 잡았고 붓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좋아 붓과 함께 살며 평생을 글씨를 쓰고 그림도 그렸다. 또 글씨와 그림을 그리다 보니 시를 쓰게 됐다고 했다.  폭넓고 깊은 불교 사상과 사유에 바탕을 둔 그림과 글 속에 자신을 녹여낼 수 있었던 자체를 오롯이 부처님 공덕으로 회향하는 그. 한 시대의 선지식이었던 청화 스님의 그늘은  현재의 그를 있게 한 자양분이기도 했다.

탐방 기사를 쓰려면 먼저 인터뷰 계획에 따른 섭외를 하고 스케줄이 조정되면 인터뷰이에 대한 리서치부터 한다. 인터뷰어는 이처럼 인터뷰이에 대한 포괄적 정보를 사전 검색하게 된다. 일문일답식이나 질의응답식 건조한 인터뷰 형식보다는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대화를 이끌어가는 방식을 선호하는 편이다. 현장에서 녹취를 한다거나 속기로 메모를 하지도 않는다. 가급적이면 편안하게 일상 우리가 살아가는 보통 얘기를 나누면서 요점만 머리에 입력시킨다. 인터뷰에 정해진 왕도는 없으니 궁금한 사항은 보충 질문은 하되 그다지 정답에 매이지 않는 게 서로 편편하다. 인터뷰할 분은 시·서·화(詩畵) 삼절을 이룬 강형원 선생이었다.


초면이나 청화스님의 카랑카랑한 이미지가 단박에 겹쳐졌다. DNA 형질의 신비에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1947년 전라남도 무안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윤산, 여여재인 강행원.  맨 처음 문인 화가로 소개받았는데 시·서·화(詩書畵)를 아우르며 다방면에 이처럼 재능이 뛰어난 예술가를 만나긴 처음이다. 한 가지 분야에 출중하기도 어려운데 한학에 능한가 하면 한국 화가이자 서예가이며 시인으로 <금바라꽃 그 고향> 외 몇 권의 시집을 펴냈다. 진경산수화를 비롯해 민화와 불화에 심취하기도 했다. 미술사 강의차 여러   대학에 출강하였으며 국전 심사위원을 역임하였다. 수차례의 개인전 및 국제전과 초대전 등에 참여한 바 있는, 꾸준히 정진하는 작가이다.   


하루 24시간을 쪼개 써야 할 만큼 여러 분야에 조예가 깊은 그는 <선가사상과 문인화에 관한 연구>, <추상미술의 배경과 정신> 등 이십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미술이론 저서로는 '문인화론의 미학'을 비롯해 ‘한국문인화-그림에 새긴 선비의 정신’을 집필했다. 중앙 일간지 연재물인 황석영, 김성동 등의 소설 삽화를 맡아 그렸다. 고은 시인의 연작 시집 <만인보> 삽화와 일찍이 미우라 아야코의 소설 <빙점>의 삽화도 그렸다.  또한 정신적 귀의처인 불교의 진리를 닦아나가는  마음 수행자이기도 한 그. 한국불교 미술인 연합회 회장, 법보신문 시론 위원을 지냈다. 예도를 추구하는 작가인 반면 민중미술 운동을 이끌었던 경력에 따라 사) 민족미술협의회 대표를 역임했다.

잭슨 폴록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비싼 화가로 꼽힌다.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인 잭슨 폴록은  시케이로스의 실험 워크숍에 참여해 시케이로스 미학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기법인 액션 페인팅을 시도했다. 시케이로스는 누구인가. 그는 로스엔젤리스에 머물며 벽화 '아메리카 트로피컬'을 1932년 올베라 스트리트의 한 건물벽에 그렸다. 멕시코 출신 이민 노동자에 가해진 부당한 착취에 대해 그린 벽화가 전한 정치적 메시지는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벽화는 흰 덧칠 속에 감춰졌다. 한참 후 게티 보존연구소의 후원과 시의 재정으로 복원되어 2012년 재공개되었다. 그 벽화를 보러 갔었다. 십자가에 매달린 인디오 그리고 십자가 꼭대기에 날개 활짝 펴고 앉아있는 독수리(미 제국주의의 상징)와 독수리를 겨냥한 저격수... 섬뜩했다.  


다혈질인 성격과 강한 정치적 성향으로 '불의 사나이'로 불린  멕시코 벽화 미술의 대가인 그다. 전통 프레스코 벽화 기법을 유럽에서 공부한 그는 급진 사상의 영향을 받아 멕시코 혁명운동에 적극 참여한 사회주의 미술가이자 열혈 혁명가였다. 사실 급진적 사회주의자로 투사에 다름 아닌 그에 대해 별로 호의를 느끼지 못했다. 시위 때마다 내걸리는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붉은 걸개그림과 거친 함성부터 연상되기 때문이다. 그와 달리 종교의식 이어서일까, 야단법석 시 당간지주에 대형 괘불 내걸고 법회를 할 때 붉은 색깔을 보고도 흥분은커녕 차분해진다. 프랑스혁명 때 들라크루아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그렸지만  심장 무섭게 격동질 치게는 하지 않는다. 종종, 불평등한 사회로 인해 팽배해진 불만과 분노와 증오심은 혁명으로 표출된다. 그러나 1세기 전 시케이로스가 열정적으로 선도한 사회주의는 결과적으로 멕시코 민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는가. 현실과 유리된 예술은 자칫 관념의 유희에 빠지기 쉽다지만, 예술의 미적 개념 근저에는 물론 저마다 취하는 형식과 내용이 다르긴 하나 추구하는 바는 아름다움의 재현이다.


서귀포 칡오름 인근에 개인 미술관 건립을 추진 중인 선생 댁에서 미술관 설계도와 청사진을 미리 접할 수 있었다. 참고하라며 화집과 시집도 빌려주셨다. 원로작가인 선생은 이처럼 시집 발간을 비롯해 문인화, 서예, 전각 등 1천5백여 점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은 바 있으므로 이 모두를 위한 전시공간의 필요성은 당연하겠다. 창작활동이 일상인 선생의 심미안은 시대정신과 궤를 같이 하기도 하지만 평생을 불교인으로 살아온 바대로 불교적 삶을 통해 스며든 선정의 세계를 시어로 풀어냈다. 마무리로 소개하는 선생의  <고향달> 시에도 그 향훈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금바라꽃은 금영화, 캘리포니아 파피가 바로 그 꽃인데 혹여 정신적 고향인 청화스님 족적 찾아 캘리포니아를 다녀와 쓴 시일지도.


모하비 사막 허허벌판에 느닷없이 나타난 화염 같은 오렌지빛에 경탄한 적이 있다. 오직 하늘만을 바라며 제 기쁨에 취해서 춤을 추는 파피 꽃송이들을 만났던 것. 파피 보호구역 너른 언덕 가득 핀 꽃 무리는 아주 장관이었다. 캘리포니아 파피 군락지였다. 소박하면서도 한껏 화려하기까지 한 꽃들의 향연은 무언가 충만한 기쁨에서라야 터져 나올 법한 열락의 몸짓이며 경건한 기도에 가까웠다. 일제히 하늘 향해 추는 춤. 바람은 그들을 춤추게 하는 음악이었다.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벅찬 환희심이듯 넘치는 행복에 겨워 너울거리는 혼의 춤을 추는 그네들. 수천만 송이송이마다 황금잔을 치켜들고 환호하 듯한 경이로운 이름다움은 극히 몽환적이라 차라리 비현실적이었다. 색채 완연 다른 동과 서의 거리가 멀고 멀다 하나 우리가 돌아갈 본향 길은 종당엔 한 곳으로 귀결된다.


하늘 끝에 걸린 산하

떠도는 오색구름

피안 저 하늘에

은하마저 숨고 없다


방편 삼던 화두

마음을 떠나니

번민으로 타는 분상

영생의 나라 서쪽으로

금바라꽃 그 고향

멀고도 멀어......


마음 바람 일어와서

소슬대는 가을 속에

붉게 물든 단풍잎이

겨울 꿈을 설레는데


고향 하늘 초승달이

졸졸 흐르는 맑은 개울

웅덩이에 빠져 웃고 있네.


ㅡ고향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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