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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pr 10. 2024

열망의 첫 씨앗 ㅡ샌디에고 미션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3세 당시의 일이다. 캘리포니아 미션베이에 1769년 칠월, 스페인 배 한 척이 긴 항해의 닻을 내린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난 다음 샌디에고의 올드타운에는 미션과 세라 뮤지엄이 건립된다.


먼 옛날, 항해술과 지리학이 발달되기 전의 유럽에서는 유럽이 세상의 전부로 알았다. 그러나 바다 건너 신대륙들이 발견되며 그들은 유럽 외의 세상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종교적 가르침대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소명을 실현시키고자 한다. 그리하여 험난한 뱃길에 올라 동양으로, 아메리카로 진출한다.


당시 주도적 입장에 있던 나라는 해양대국이었던 스페인과 포르튜갈로 두 나라 다 톨릭 국가다. 힘이 우세했던 스페인은 황금제국 중남미국가들을 마구 공략해 들어간다. 정복자들은 표면상 종교를  세운다. 종교적 사명으로 신앙을 전파한다며 의도 순수한 신부들이 앞장 섰으나 종당엔 종교가 제국주의 정부에 철저히 이용 당한다.


자국 신부가 순교를 하거나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을 물어 군대를 이끌고 마구잡이로 침략해 들어와서는 약탈과 분탕질을 일삼아왔으니...그렇게 십자가 뒤를 이어 대포가 밀고 들어오며 남미 원주민 문명을 깡그리 말살시켜버리고 만다. 기름진 땅과 황금과 그밖의 값나가는 자원들에 눈이  정복자들에게야 식민지 땅을 넓히는 명분과 의도만이 뚜렷했으니.


한편 유럽인들의 정착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몰락을 의미하는 역기능외에 쇠를 다루는 과학기술과 농경과 축산법을 보급하는 등 삶의 질을 높이기도 하였다. 당시 미션은 톨릭 전파의 전초기지라는 종교적인 임무만이 아니라, 요새이자 지역공동체의 자급자족형 농장같은 다양한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뒷날 해가 지지않는 나라 영국이 바다를 제패하며 바톤을 이어갔지만  그들 역시 어디까지나 정복자일 따름이었다.


캘리포니아 지역으로 선교를 나선 후니페로 세라(Junipero Serra)신부가 최초로 세운 샌디에고의 미션은 딸내미가 앞장서 안내한 곳이다. 유럽 선교사들이 맨처음 미대륙에 세운 이 미션. <미션의 어머니>로 불리는 샌디에고 미션을 세운 세라신부의 나이 당시 쉰 다섯이었다. 열절한 사명감으로 신대륙에 십자가를 깊숙이 꽂은 그.


미션은 선교사 자신들과 같이 사는 원주민들이 살아가기 위하여 각종 생활용품을 생산했다고 한다. 보리 밀 옥수수 등의 곡식을 재배하였으며 소 말 당나귀 양 염소 등을 가축을 키웠다. 양털로 옷감짜기, 가죽에 염색하는 방법도 원주민들에게 가르쳤다. 포도를 재배하고 양초와 비누를 생산했으며 올리브 기름을 짜서 식용으로 쓰거나 팔기도 했다니 중세유럽의 장원 비슷한 형태였지 싶다.


이웃한 뮤지엄에는 그 흔적들과 멕시코 원주민들의 생활상이 초라한대로 남겨져 있었다. 문 닫을 시각이 임박하여 휘리릭 둘러보긴 했지만, 산과 들을 주무대삼아 살던 원주민들의 움집이며 농기구들이 전시장을 채워줬다. 남포불 그을음으로 우중충한 벽면에서  발견한 두 마리의 뱀이 그려진 액자 한 점은 원래 그들의 신앙대상이었을까.


경내 정원에 선 세라신부의 동상. 하많은 순례객들이 경배하며 쓰다듬은 흔적이리라. 수단 자락 위, 반들거리도록 닳은 묵주와 십자고상이 눈길을 끌었다. 슬그머니 손을 얹어본다. 왼쪽 가슴이 저릿거린다.


남쪽의 샌디에고부터 북쪽 샌프란의 소노마 지역에 이르기까지 약 900킬로미터의 여정이다. 이를 대략 21등분하여 말을 타고 하루에 닿을 수 있는 거리마다 스물 한 개의 미션을 캘리포니아 지역에 건립한 프란체스코 수도회. 이렇게 이어진 길을 엘 카미노 레알, 즉 왕의 길이라고 부른다. 각각의 미션이 건립된 지역은 날,  같은 캘리포니아의 주요 도시를 이루는 기반이 되었으니 따라서 미션의 역사가 캘리포니아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작년 여름에 찾은 샌디에고 미션은 캘리포니아 미션의 첫 순례지다. 스페인 풍의 소박하고도 아름다운 수도원이 있다고 하여 그땐 딸을 따라 무작정 떠난 여정이었다.

가는 길목, 환상과도 같은 절경지 라호야 비치에서는 한참을 머물렀다. 시선 닿는 곳마다 경탄을 자아내게 하는 비치였다, 라호야는 스페니시로 보석이란 뜻이란다. 망망대해를 품어안은 고급 갤러리와 유럽풍의 별장이 즐비한 곳. 다이버들이 즐겨 찾는다는 바닷가답게 해변은 사암이 조각해낸 거대한 자연 조각품과 천연동굴 그리고 절벽. 짙푸른 파도에 깎인 해안선이 절경 이뤘다. 바다사자의 서식지이기도 한 라호야 비치.


왼쪽편엔 스페인풍의 집들이 선 메마르고 황량한 둔덕, 한편엔 태평양을 거느리고 두 시간 여만에 닿은 샌디에고. 샌디에고의 올드타운 내에 있는 첫 미션 발상지와 박물관에서 거기 첫발을 내딛은 유럽 선교사들과 멕시칸 원주민들의 삶의 모습들을 둘러보면서 연신 카메라를 눌러대는 한편 놀랍고도 신기해 감탄사를 연발했다. 동부에 사는 나에게야 눈부신 캘리포니아의 하늘과 태평양부터가 경이로움 그 자체였으니.




먼 옛날, 항해술과 지리학이 발전되기 전의 유럽에서는 유럽이 세상의 전부로 알았다. 그러나 바다 건너 신대륙들이 발견되며 그들은 유럽 외의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종교적 가르침대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소명을 실현시키고자 험난한 뱃길에 올라 동양으로 북미로 진출한다. 당시 주도적 입장에 있던 나라는 해양대국이었던 스페인과 포르튜갈 두 나라 다 톨릭 국가다. 뒷날 해가 지지않는 나라 영국이 바다를 제패하지만 그들의 국교는 성공회.


아무튼 스페인은 중남미를 마구 공략해 들어간다. 포장 상 처음 의도는 순수했다. 열절한 종교적 사명으로 신앙을 전파한다며 신부들을 앞장 세웠으나 종당엔 종교가 제국주의 정부에 이용 당한다. 자국 신부가 순교를 하거나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을 물어 군대를 이끌고 마구잡이로 침략해 들어와서는 분탕질을 일삼았다. 그렇게 십자가 뒤를 이어 대포가 밀고 들어오며 남미 원주민 문명을 깡그리 없애버리고 만다. 기름진 땅과 황금과 그밖의 값나가는 자원들에 눈이 멀고만 정복자들. 그러나 한편 유럽인들의 정착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몰락을 의미하는 역기능외에도 쇠를 다루는 과학기술과 농경과 축산법을 보급하는 등 삶의 질을 높이기도 하였다. 당시 미션은 톨릭 전파의 전초기지라는 종교적인 임무외에도 요새이자 지역공동체의 자급자족형 농장 등 다양한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내내 流轉을 생각했다. 그랬다. 전에는 내가 딸을 데리고 자주 가는 곳이 박물관이었다. 박물관이래야 오직 하나밖에 없는 대연동 부산시립 박물관이 전부였으니 늘 그 전시물이 그 전시물. 더러 특별전이 열리기라도 할라치면 그 틈을 놓칠세라 적극 활용키도 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으나 박물관 입구의 반구대 탁본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물리거나 싫증이 나지 않는 나의 '귀한 그대'였다. 백화점 샤핑을 다니면 금세 머리가 띵한데다 눈이 따갑고 아파왔다. 해서 아이를 데리고 샤핑을 다니기보다 박물관 구경을 그렇게나 자주 갔다.


휴가철마다 ​딸을 만나러 오곤 했던 로스엔젤레스. 나중에는 동서 대륙을 횡단해 이사를 왔지만 둘이 다닌 곳은 거의가 박물관이거나 올드 타운. 하다못해 샤핑도 엔틱쪽이다. 결국은 돌고돌아 유전하는 생.

오래전엔 내가 길라잡이, 지금은 딸내미가 앞장을 선다는 차이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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