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량화 Apr 10. 2024

카멜 미션 산책 - 서책 향기-

캘리포니아 최초의 도서관

Mission San Carlos Borromeo de Carmelo는 짧게 카멜 미션이라 부른다.

미션은 16세기 이태리 밀라노에서 활동했던 대주교이자 성인인 카를로스 보로메오를 기렸다.

캘리포니아에서 두 번째로 세워졌으며 건립자 세라신부가 여기 주석하면서 최초로 고해성사를 보았다.

캘리포니아의 도시는 거의가 미션을 시작으로 촌락이 형성되고 차츰 대도시로 발전해 나갔기 때문에 미 교과서에도 다룰 정도로 미션은 캘리포니아 역사에서 차지하는 의미와 비중이 지대하다.

이처럼 미션의 역사가 곧 캘리포니아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고자 한 선교사들의 열절한 사명감을 이용해  제국주의 군대가 침략의 전초기지이자 병참기지로 삼으려는 야욕이 물론 뒤에 도사리고는 있었지만.  

캘리포니아의 태평양 연안을 따라 San Diego에서 Sonoma에 이르는 곳에 전략적으로 21개의 미션이 세워졌는데 둘째 미션이 카멜미션이며 국가 역사유적지로 지정되었다.

처음에는 몬트레이 인근, 타모 인디언 부족의 마을 근처에서 시작했다.


나 군대가 성당과 함께 머무는 것은 선교나 식민지 유지를 위한 정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세라 신부 주도로 이듬해인 1771년 이 자리로 옮겨졌다.

1784년 세라신부가 선종한 뒤 사목을 맡은 로페즈 신부에 의해 1797년 지금 같은 바로크풍의 전아한 석조건물을 완공시켰다.

그 과정에서 원주민들 다수가 노역 도중 심한 부상이나 사고를 당했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맨손이나 다름없는 변변치 않은 도구와 장비로 큰 건물을 세워야 했으니 고초 오죽했으랴.

현재도 미사 집전을 하는 바실리카 성당은 보기엔 경건하고 평화로운 정경이, 드높은 종탑과 석조양식의 웅장한 건축물을 올리다가 희생되었을, 힘없고 그저 순박하기만 했던 영혼들을 위해 잠시 고개 숙였다. ​


카멜미션을 둘러보다가 뮤지엄 안의 침침한 작은 방에서 캘리포니아 최초의 도서관을 만났다.

고대 최초의 도서관 하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미국 최초의 도서관은 벤자민 프랭클린이 만들었다고 시민권 시험준비하며 달달 외웠는데 미 서부 최초의 도서관은 여기라... 흠

세월의 먼지냄새가 켜켜이 배어있을 것 같은 고서적이 즐비한 도서관에 이르자 거므스레 낡은 서책들에서 홀깃 '장미의 이름'이 떠올랐다.

움베르토 에코의 그 소설은 14세기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이 배경이다.

연쇄살인사건을 조사하러 나온 윌리엄 수사는 미로로 연결된 장서관을 주목한다.

비밀은, 웃음에 대해 쓰인 필사본에 있었다.

신앙은 근엄해야 한다며 웃음을 죄악시한
극단적 경건주의자인 장서 책임자가 책갈피에 독약을 묻혀두었던 것.

젊은 호기심에 그 책을 몰래 보려던 수사마다 죽음을 맞았으며 그 외에도 중세의 신학논쟁과 마녀 화형, 이단 등이 흥미롭게 묘사된 추리소설이었다.

작가는 책 말미에 이렇게 썼다.

"가짜 그리스도는 지나친 믿음에서 나올 수 있고 하느님이나 진리에 대해 지나친 사랑에서 나올 수가 있다.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라.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는 많은 사람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때로는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하는 법이다." ​

만사 과유불급이요, 극단을 조심하라는 얘기겠다.


Fray Junipero Serra신부는 1749년, 멕시코에서 미션을 시작하여 도보로 북상해 캘리포니아 최초의 미션인 Mission San Diego de Alcala를 세웠다.

 

한참 뒤, 그다음에는 배를 타고 올라와 1770년 카멜 미션을 세운다.


그리하여 몬트레이 반도의 작은 해안도시 카멜을 일구어냈다.

1784년 여름, 세라 신부는 71세의 일기로 눈을 감고 카멜 성전 제단 아래에 묻힌다.

지난해 미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라 신부 시성식을 주관했다.

이에 원주민 단체 네이티브아메리칸스는 세라신부가 인권 유린을 저질렀다며 반발 시위를 하면서 온라인 청원 캠페인도 벌렸다.

당시 선교 과정에서 인디언들을 반강제로 개종시켰으며 원주민 수십 만이 유럽에서 딸려온 전염병과 잔혹한 대우 등을 겪다가 원통하고 억울하게 숨진 것만은 사실이다.

이에 교황은 볼리비아 방문 때 “신의 이름으로 미국 원주민들에 가해진 매우 심각한 수많은 범죄”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고 천명했다.

미국 특히 서부에 가톨릭의 기반을 닦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세라 신부에 대한 견해는 엇갈리고, 찬반 논쟁 또한 그치지 않으나 과보다 공이 훨씬 크다면 공으로 과를 상쇄시킬 수는 없을까.

반궁형 천정, 섬세한 조각품, 이백 년도 더 전에 조성된 채플이 현대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우아하고 세련된 모습이라니.


카멜 미션은 역사 속에 박제된 과거형이 전혀  아니었다.  


후원 양지바른 한편, 전복 껍데기로 테두리를 한 묘역에는 수많은 십자가가 세워졌지만...


꽃밭의 한 줌 흙이 된 채 이미 오래전 영혼 떠난 이름들은 점점 잊혀 가지만....


노거수인 올리브나무, 후추나무 허리통 굵어지고 무화과나무며 담쟁이 등 덩굴은 잎 졌지만....


비록 담벼락 회 칠은 벗겨지고 군데군데 흙 벽이 드러나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지만....


그래서 더 고풍스럽고 퇴락한 분위기마저 보석처럼 빛나는 곳.  


더구나 경내에 가톨릭 스쿨이 있어 아이들이 수업 중이었으며, 그래서 맑고도 싱그러이 현재를 살아 숨 쉬는 카멜 미션이었다.​


미션 산책을 작정하고 시작한 데는 까닭이 있다.


오래된 미션에 가면 해묵어 퀴퀴한 먼지 냄새와 풍우의 세월이 남긴 녹처럼 습습한 이끼를 만날 수 있어서이다.  

고색창연한 카멜 미션 역시 흙벽 낡아 모퉁이 무너지고 비 샌 얼룩이 노병의 상처 흔적같이 아릿하게 남아있었다.

담황색 기와지붕은 녹두빛으로 변했고 석축은 추상화 화폭에 폭신 싸여 근사했다.

다 이끼가 부린 조화였다.

사시장철 건조하고 해바른 마을에 살다 보니
지붕골이며 나무 밑동에 낀 이끼가 유독 생광스럽게 다가왔다.

외갓집 찰랑거리던 돌샘, 바가지로 물을 뜨면 돌에 붙어 하느작대던 이끼가 일제히 왈츠를 추었지.

안개 낀 대흥사에서 본 이끼는 부도밭에서, 석탑에서 푸른 생명을 꽃피우고 있었지.  

후미진 산사 돌담 아래 깔린 새파란 우산이끼는 산토끼처럼 발 빠르게 영역을 넓혀나갔지.

뉴저지 밀밀한 숲속 고목 무릎짬까지 더께 진 이끼 깊고도 두터웠지.

 지난겨울에 이어 다시 찾은 카멜 미션 후원에서

한꺼번에 이끼에 관한 기억들이 두서없이 풀려나왔다.

문득, 이끼를 세월의 녹으로 풀어쓴 문장이 아직껏 기억에 남겨진 어떤 분이 떠올랐다.

중세 건축을 접한 다음 구라파 문화에는 역사의 먼지가 차곡차곡 앉아있다,라고 표현한 대목도 생각났다.

당시 연세 높은 분들은 유럽을 구라파라 표기했다.

한참 웃어른이신 것이, 내가 사십이 채 안 됐을 때 1920년 생이신 그분은 정년퇴직한 법대 명예교수였다.

'목 필'이라는 동인지는 해마다 책을 묶었으니 80년대부터 십수 년 한 달에 한차례, 동인으로 자리를 함께한 분이다.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88년 여름 첫 산문집을 낼 때 그분으로부터 과분한 발문을 받은 인연도 있는데 높이 쌓아 올린 학문의 탑 남겨두고 오래전 작고하셨다.

 동아대 법대 학장, 대학원장을 역임하신 그분은 ‘목탄으로 그린 인생론’, ‘문학과 철학 사이’ 등 수필집을 낸 법철학자이자 수필가인 현석 김병규 박사님.

평소 들어주는 역할을 주로 하시는 그분이 느릿느릿한 말씀으로 수만 권 서책이 함축된 해박한 논조를 펼칠 땐 얄팍한 지식으로야 감히 한마디 보태거나 나설 수도 없었다.  

연륜과 경륜을 갖추신 그분은 우리 모두의 멘토로 동인들 중심에 바위처럼 묵묵히 자리해 계셨다.

오랜 기간 만난 분이지만 여전히 어렵던 어른, 무엇보다 진중하고 겸손한 인품으로 존경을 받았다.

동인끼리 갖는 식사 자리에서도 가벼이 허튼 농 한마디 안 하시던 점잖은 모습 떠올리니  
지금은 어언, 그때 그분보다 나이가 더 들었건만 여전 경조부박한 자신이 민망스레 돌아다 보인다.

그렇다, 타고난 성정도 성정이지만 품격은 오랜 기간 삶 가운데서 자신 스스로 만들어가는 거다.

주어진 하루를 여하히 살 것인가, 그리하여 먼 훗날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가.

1700년대 중반, 두 번째 선교 전초기지로 세워진 카멜 미션에서 세월의 향기 흠향하며 거닐던 중 홀연.

이끼를 주제로 한 문장과 토씨 하나 소홀히 다루지 않던 어른이 떠올라 잠시 자기 성찰과 회억에 잠겨 들게 되었다.  

羞惡之心 義之端也 (수오지심 의지단야) 부끄러움을 아니 그나마 다행이라 위안 삼으며 이끼 눅진 카멜 미션을 나섰다.


기회가 되면 부겐베리아며 등꽃 핀 봄에 한번 더 가서, 오래 그 고즈넉함 속에 머물다 오고 싶은 그곳..

​모든 분들께도 하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길 빌고 싶던 그곳.....

 3080 Rio Rd, Carmel-By-The-Sea, CA 93923


작가의 이전글 열망의 첫 씨앗 ㅡ샌디에고 미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