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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pr 11. 2024

도편수와 도배공

학수고대하던 도편수가 당도하니 집은 즉각 윤곽을 잡아갔다. 방향을 정하고 목재를 고르고 골격을 짜고 뚝따닥. 일 년여 넘어 오랜만에 다니러 온 딸이다. 남북이 아니라 동서 이산가족으로 사는 우리. 나는 미 동부 뉴저지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딸은 서부 캘리포니아 쪽에서 지낸다. 논스톱 비행기로 여섯 시간 걸리며 시차가 세 시간 나는 거리다. 마침 연휴를 기해 잠시 다니러 온 이때를 놓칠쏘냐. 내 재주로는 어림없는 일이나 몇 차례 도편수 경험이 있는 딸은 집을 잘도 짓는다. 맨 처음 지은 집은 자신의 공간으로 홍콩과 왕가위 감독을 주제로 꾸몄더랬는데 1998년 조선일보 추천 사이트에 소개되기도 했다.



두 번째 작품은 나의 정자. 절기 따라 개중축을 거듭하며 꽤나 공을 들인 집이었다. 두어 해 신명나게 음풍영월 소일하던 그 정자는 주인장의 이민이라는 긴 출타로 인해 퇴락해 가더니 마침내 스러져 버렸다. 가뭇없는 소멸이었다. 허망했다. 사람의 훈기가 감돌지 않는 집은 어디서나 맥없이 삭아내리기 마련. 시절 인연이 다한 것이라고 짐짓 초연한 척했지만 애석하기 그지없었다. 애착 깊었던 만큼 아쉬움 또한 깊었던 것이다. 그나마 저장시킨 파일로 남은 서까래 약간은 다행히 건질 수 있었다.


90년 대 초, 한 작가를 만난 적이 있다. 교수직에서 정년퇴직한 그분은 안동 본가의 고택을 헐어다 서울 근교에 옛집을 복원시켜 살고 있었다. 두 번 다시 하라면 절대 사양하겠다며 고개 흔들던 그분. 수시로 현장에 들러 뒤집어쓴 먼지도 먼지려니와 일반 건축비보다 배 이상 비용이 더 들어간 귀족 취미였노라고 손사래 치면서도 표정만은 뿌듯해 보였다. 그 생각을 하며 먼젓번 집에서 건진 재목 몇을 블로그로 날랐다. 더러는 몇몇 집에 들러 거기 실린 내 글을 되 퍼 오기도 했다. 자료를 거지반 옮기고 새 글도 추가시키니 그럭저럭 짜임새가 잡혀갔다.



미국 한구석에서 은거 아닌 은거 생활을 하며 세상과 절연한 채 살다가 그렇게 소통의 창구 하나를 터놨다. 새로이 외부와의 연결고리를 건 것이다. 오래전 교유한 벗들이 찾아왔다. 국향, 우산, 달빛, 반가움에 덥석 가슴으로 안고 싶은 그리운 이름들, 얼굴들이다. 옛집 얘기도 나눴다. 처음 그 집을 짓던 때의 감회가 새록새록 피어났다. 맘껏 호사를 누리며 가상공간에 지었던 집. 평수도 원하는 만큼 늘리고 구조도 알뜰살뜰 꾸몄다. 이미지, 음악, 아이콘도 적절히 사용했다.



초지일관 철저히 익명으로 집을 꾸민 딸과는 달리 자신의 면모를 시시콜콜 드러내려는 내게 인터넷 속성을 도통 모른다느니 과욕이라느니 면박 자심했던 일도 떠오른다. 아이콘을 고르고 사진을 배치하며 딸과 다른 심미안으로 의견 조정하느라 벌인 실랑이가 설핏 웃음으로 번진다. 아이디를 정할 때는 기억하기 좋은 근사한 이름을 찾기 위해 꿈속에서까지 헤맸다. 고개 갸웃한 채 호를 따서 지원이라 할까, 심원이라 할까 망설이노라니 딸이 옆에서 "건 구태의연, 책 제목에 있는 종소리 어떻노?” 던지듯 한 한마디다. 이에 대뜸 동의, 낙찰을 본 아이디 종소리로 동네방네 누볐다. 지나고 보니 행복한 한때였다.



블로그는 하루 만에 공사가 마무리됐다. 집 짓기에 앞장선 도편수는 여전히 유능했다. 반면 줄레줄레 뒤따르는 도배공은 욕심만 앞섰다. 과유불급, 여백의 미는 아랑곳없이 덕지덕지 장문의 글로 온데 도배질이다. 아무렴 어떠랴. 때론 횡설수설인 글, 성의 있게 읽어 주는 참을성 많은 독자가 한 사람만 있어도 집 지은 보람은 있으니. 무엇보다 시공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이 노닐 수 있는 내 놀이터 하나가 추가되었다는 사실이 그저 흐뭇. ㅡ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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