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량화 Apr 11. 2024

물고기 종소리


사걀의 그림 같은 꿈을 꾸었다.

일상 밖의 신비스런 꿈, 환상적인 분위기가 상기도 선연히 떠오른다.

파르라니 투명한 물속, 호수인지 바다인지는 잘 모르겠다.

물고기가 유유히 노닐었다.

은빛 나는 그 물고기는 산호초 넘나드는 대신 커다란 범종 주위를 유영하며 놀았다.

종신을 어루만지는 듯하다가 미끄러져 내려와 돋을무늬 보상화문 쓰다듬고는

설핏 솟구쳐 용유 쪽으로 오른다.

범종을 종루에 매다는 용뉴에는 박진감 나게 용트림하는 용 몸체가 조각돼 있다.


물고기의 움직임에 따라 종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살몃 귀를 기울여 보았다.

그 바람에 아쉽게도 꿈에서 깨고 말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 여운의 가닥을 놓치지 않으려고 얼른 메모지를 꺼냈다.

잠에서 깨어난 멍한 의식 사이로 스러지듯 점차 흐려지는 영상.

희미해져 가는 꿈의 잔상을 부여잡고 환영처럼 어른거리는 그림들을 복원시켜 나갔다.

꿈이건만 범종은 장중함으로 여전히 실제감이 살아있다.

허나 물고기며 종소리에 이르러 그만 환각이듯 모호해진다.

아무리 허황된 꿈이기로서니 물고기와 종이 무슨 상관이람.

스스로에 어이없어하며 다시 잠이나 이어볼 요량으로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약물에 담근 인화지 위로 사진이 떠오르듯 새삼스레 생생해지는 꿈.


꿈은 그러나 꿈이다. 컴퓨터 그래픽 화면 같은 그 비현실성이라니.

물속을 수족관 들여다보듯 할 수는 없는 노릇이건만 꿈속의 나는 물에 잠긴 종을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물속이 아닌 것도 같다.

물고기가 노닐므로 응당 물 속이려니 했을 뿐 물살도 물결도 없는 투명한 고요가 아니었던가.

배경은 무한 공간인 우주일 수도 있다.

어차피 꿈인데 천공 사이 대기의 흐름 따라 헤엄치는 물고기인들 없을손가.

오래전 세상 떠난 사람도 생시처럼 예사롭게 등장해 일상사를 나눌 수 있는 게 꿈속이다.

당연한 이치의 적용이나 고정관념의 틀과는 거리가 먼 게 꿈이니까.


꿈은 현실을 초월해 한껏 자유롭다.

더불어 꿈은 마음속으로 그려온 환상의 세계를 직접 경험하게 해 주기에 아름답다.

그간 내가 꾸었던 하많은 꿈들. 어느 땐 그럴싸한 꿈을 꾸기도 하고 때로는 얼토당토않은 꿈도 꾸었다.

무언가를 예시하거나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꿈도 있는 반면 숨겨진 의미를 찾기 힘든 애매한 꿈,

나아가 황당무계한 꿈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꿈은 단순하지도 않거니와 전혀 느닷없는 꿈이 아닌 듯싶다.

이즈음 부쩍 갈등이 심해진 종교관으로 마음이 흔들린 탓에 범종이 보인 것인가.

아니면 한없이 안일에 젖어 게으름 부리는 심신의 나태를 경책하려 함인가.

비린내가 싫어 평소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물고기,

그러나 불교계에서는 자신을 부지런히 갈고닦아나가는 정진을 무언중에 상징한다.

물고기란 밤낮없이 두 눈 동그랗게 뜨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의 카타콤베에서도 물고기 부호를 본 바 있는데 기독교에서도 역시 의미 각별한 터이다.


심층 분석까지 들먹이며 유난 피우기 앞서 달리 짚이는 데가 있긴 있었다.

그 까닭인가?

오어사 연못 준설 공사 중에 고려 범종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접하고부터 내심 오어사에 가보고 싶어 했던 나.

임진왜란 와중, 약탈을 피하고자 연못에 숨겨두었던 사찰 문화재의 일부로 추정되는 동종에는 비천상이 뚜렷하고 명문도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기사가 났었다.

당대의 고승 혜공과 원효가 서로 내 고기(吾魚)라 우기던 신라적 물고기의 까마득한 후손들이 누대째 윤회를 거듭했을 연못.

기나긴 세월 동안 묵언 참선에 들었다가 시절인연 비로소 닿아 진흙뻘 속에서 환생한 연꽃 같은 동종이 보고 싶었다.

그 잠재의식의 투영일 수도 있겠다.



또는 근자에 받은 강렬한 인상이나 소망에 대한 반응이 꿈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고 하였다.

하긴 얼마 전 박물관 강좌를 통해 우리의 우수한 범종이 수도 없이 현해탄 너머로 실려갔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전해 듣고 비분강개한 바 있었다.

일본의 미술관이며 궁과 절 더러는 신사에 소장된 범종이 여럿인 데다 드러나지 않는 개인 소장품까지 보태면 그 수효가 대단하다는 약탈해 간 문화재들.

경주 대종천에서는 이따금, 밀리는 파도소리에 섞여 은은한 종소리가 실려온다고 한다.

바다에 가라앉은 범종이 내는 한 서린 음파일까.

전설대로라면 감은사 종을 노략질한 왜장이 거대한 범종을 배에 싣고 떠나다가 대왕암 근처에서 노한 풍랑을 만나 배도 종도 함께 수장되고 말았다 한다.

우리의 범종은 특히나 신비한 맥놀이 현상으로 울림이 깊고 그윽해 탐내는 이 그리도 많았던가.

신불 (神佛)께 바칠 공양이라 열과 성을 다해 범종을 빚어낸 백의의 선대들.

그들은 하늘을 공경하며 어질고 착한 심덕으로 살았기에 어느 민족보다 무량히 맑은 종소리를 내는 범종 주조에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

천상과 땅뿐이랴.

수중 저 멀리까지 아우르는 종소리라서 그 울림 한번 듣고 법계의 뭇 중생들이 해탈에 이른다 하였는데,


그렇게 인상적으로 강의를 마무리 짓던 박물관 학예사의 당부말마따나, 정신과 영혼을 살찌우는 일 못지않게 힘(국력)을 키우는 일의 중요성이 역사를 잠깐만 들여다봐도 절실해진다.

가령, 꿈의 여운이 아무리 진하다 해도 선뜻 오어사 동종이고 감포가 보이는 대종천 만나러 길 나서기엔 상그러운 교통편이 발목을 붙잡는다.

대신 나부대는 마음 가라앉힐 겸 가까운 범어사를 찾았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금빛 물속에 범천의 물고기가 살았다는 금정산(金井山) 자락.

어산교를 지나 대웅전 뜨락의 범종각 일별하고 경내에서 가장 호젓한 암자, 선방이 있는 내원암으로 향한다.


세사의 번잡 털고 공적 (空寂) 속에 잠기고 싶을 때 한 번씩 오르는 곳이다.

문 여닫음이 거의 없어 온갖 물상이 정물이듯 화석이듯 침묵하는데 오로지 풍경 홀로 깨어있다.

정적 깊어 오히려 더 선명한 풍경 소리.

자그마한 동종 아래 매달린 물고기 모형의 추가 미풍에도 예민하게 기별을 보낸다. 댕그랑 댕그랑...

벽공과 배경 이룬 처마 끝에 자태 또렷한 풍경이 미세한 흔들림에조차 맑디맑은 소리를 띄우고 있다.

얇은 금속판의 물고기가 물살 대신 바람결 타고 가벼이 허공 중을 헤엄치며 선사해 주는 청음(淸音).

샤갈의 그림 같은 꿈은 물고기가 내는 종소리, 푸른 풍경소리의 초대였구나.

기꺼움에 취해 절로 눈 감기는 순간, 홀로 누리는 정복 (淨福) 또한 꿈결만 같다.




 



작가의 이전글 도편수와 도배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