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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Dec 17. 2024

쿠스코는 흐리거나 비

페루에서 일주일


겨울비가 아침 내내 추적추적 내렸다.


비는 새벽부터 왔으나 마치 봄비 같은 보슬비라 강수량은 별로다


벌써 동녘은 번하니 들고 있다.


아직도 하늘 잿빛으로 찌푸린 채 심술이 잔뜩 나 있지만 구름층으로 봐 더 이상 비는 올 성싶지 않다.


페루에서의 몇몇 날, 하루 종일 청명하게 해 뜬 날이 별로 없었다.


날마다 오늘 날씨처럼 우중충 흐리고 간헐적으로 비가 내렸다.


더러 먼 데서 뇌성 으르렁거린 적도 있었다.


크리스마스 어름이나 여름철 우기인 그곳 절기임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날씨였다.


열대성 폭우 만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암튼 매일 방수점퍼를 입고 다녀야 했다.

그러다가 해 쨍쨍 나 더워지면 겉옷 벗어 들고 속에 받쳐 입은 반소매 티나 엷은 셔츠 차림으로 다녔다.



황토 색깔 지붕과 대비 이룬 터키석같이 푸른 창공과, 남반부의 감청 빛 밤하늘 수놓은 성좌 보리라던 기대는 무산됐다.

자연히 멋지고 아름다운 사진, 이른바 사진발 잘 받는 풍광들 아깝게시리 번번 훼방 부려 놓치게 하는 건 일기였다.

날씨 꾸물꾸물 받쳐주지 않으니 폰 사진마다 희득스레, 영 명료하지 않아 그나마 뽀샵으로 재주 부린 게 이 정도다.

하긴 피사체 제대로 잡는 법을 몰라 삐딱한 건물 보면 실력 없는 목수 연장 나무라는 격이지만.

암튼 길 건너 끝에서 찍어도 화면 한꺼번에 담기지 않을 정도로 엄청 웅장한 건물인 데다 드높이 쌓아 올린 돔 꼭대기는 아예 댕강 잘리기 일쑤였다.



날마다 흐리거나 비. 변명 덧붙이자면 기타 등등 쿠스코 사진도 그 연장선상에서 주길.

그러나 어쩌면 쿠스코 분위기에 가장 잘 맞는 날씨였다는 생각이 다,

명쾌 상냥한 날씨보다는 딱 그런 날씨가 제격일 거 같은 쿠스코였으니까.

황금이 흔했고 돌을 자재로이 다루던 선조들의 흔적은 길바닥부터 거리 도처에 주추로 남아있으나.


이복형제간의 황실 갈등이라는 허점 틈새 노린 정복자에 짓밟혀 찬연하던 역사 묻혀버렸고 가뭇없이 사라지고 만 잉카인들.

태양의 제국이란 말을 그들이 쓴 의도도 역으로 햇빛 사뭇 귀한 까닭은 아니었을지.

오뉴월 날씨는 어떤지 모르나 그땐 계절이 겨울철, 과연 캘리포니아만큼 산뜻 명쾌하진 않을 거 같았다.

뜸하던 비가 다시 내리고 있다. 성긴 빗줄기다.

현 시국처럼 심란스럽고 개갈 안나는 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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