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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Dec 17. 2024

수도승, 조슈아 트리


조슈아 트리는 선인장과 유카의 중간 품종쯤 될까,


더러는 육중하게 자란 거목도 있지만


대체로 초라한 골격 끄트머리에 푸른 가시 잎을 앙상하게 달고 있는 기묘한 나무다.


정식 명칭이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인 이곳.


야생생물이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는데 생명체는 거의 눈에 띄지 않고


국립공원으로 가는 널따란 길은 휑하니 비어있다.


이런 도로를 만나면 제임스 딘이 아니라도 무한질주 본능 문득.




더러 연극 세트 같은 서부마을도 거치고 모하비란 이름뿐인 사막도 지나고


집채만 한 화강암 바위들이 널브러져 있는 황막한 언덕도 스쳐 지났다.


드디어 목적했던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에 들어서니 사방은 적요하다 못해 휘휘하기만 했다.


무한 펼쳐진 허허벌판에 거칠 것 없는 눈바람만 윙윙거렸다.


적막강산이 따로 없었다.



사막은 미답의 설원.


새하얀 눈에 덮인 채 묵언 정진에 든 구도자처럼 깊은 침묵에 잠겨있었다.


눈이 제법 쌓여 온 데가 고요히 빛나는 은세계를 이루었으나 곳곳엔 진입금지 팻말.


볼거리 지천인 서부에서 굳이 초췌하고 남루한 고행승 같은 그 나무 군락을 보려고


먼 걸음을 한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았다.


하여 괴괴할 정도로 인적이 드물다.


서부여행치고는 꽤 특별한 선택지, 이곳을 택한 우리 역시 꽤나 별나다.


그러나 덕분에 유유자적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을 전세 낸 듯 양껏 만끽하는 호사를 부렸다.




각각의 이름이 붙은 무슨 무슨 바위들을 죄다 섭렵하곤 해골바위 건너


피크닉 에어리어에서도 특석인 양지쪽 눈 녹은 테이블을 골라 자리 잡았다.


멧새 발자국이 난 눈길 피해서, 백설 수북이 코펠에 퍼담아 버너 위에 올린 다음 라면을 끓였다.


프라이팬에 구운 삼겹살도 깻잎쌈에 싸서 볼이 미어지도록 맛지게 먹었다.


바람막이 암벽을 병풍 삼아 둘렀기에 따땃한 볕살 아래서 끄덕끄덕, 나른한 오수를 잠시 즐겼다.




바로 목전에 드문드문 서 있는 식물, 


나무라기엔 왠지 빈약하고 풀이라기엔 지나치게 억세다.


어쨌든 이름자에  나무가 붙었다.


조슈아 트리는 밑둥을 자르면 물이 나와 갈증으로 타들어가며 사막을 헤매던 생명체들에게


물과 쉼터를 제공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단다.


조슈아는 구약에 나오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 야훼신으로부터 그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받은 호세야를 이름이다.


잘 알려진 대로 여호수아는 모세를 따라 홍해를 건넌 후 가나안 땅 정탐꾼에 선발되었다. 


갈렙과 마찬가지로 긍정적인 주장을 하여


야훼로부터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었고 모세의 승계자로 지명되었다.


지도자 모세가 야훼 신이 약속한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자 이스라엘인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간 선지자가 조슈아다.




그럴싸하다.


광야에서의 사십 년을 방황한 이스라엘 민족.


그처럼 미 동부의 몰몬인들이 서부로 오는 동안 죽을 고비 수없이 넘기며 


불볕 내리쬐는 사막을 헤매다 지쳐 쓰러지기 직전에 만났다는 생명의 나무.


당연 조슈아란 이름을 붙임 직도 한 일이다.


타는 목에 생명수요 감로수를 제공한 사막식물이므로


이집트를 떠나 광야를 헤매다가 드디어 약속의 땅으로 안내한 구약시대 유대인들의 지도자였던 여호수아가 대비될 법하다.



엘에이에서 두어 시간 달리는 중간에 황막하기 이를 데 없는 모하비 사막을 가로질렀다.


인디언 캐년을 지나면서부터 차량 통행도 뜸해 아주 한적한 도로.


길가까지 마실 나왔다가 마른 잡초덤불 사이로 얼핏 숨는 코요테와도 만나고 종종걸음 치며 달아나는 작은 새떼들도 만나고...


바람의 계곡을 스친 다음 암벽등반하기 좋은 거대한 암석들 줄지은 군락지도  일별하여 지나쳤다.





달리고 달려도 기대하던 표지판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기분이 들었다.


운전하는 딸내미에게 "이거, 옳게 가고는 있는 거니?"


통박 맞을 괜한 소리나마 하고 싶어 진다.


그만큼 사막 한가운데를 질러 너르게 나있는 도로는 텅 비어 괴괴할 정도다.




가령, 구름 한 점 없는 한여름 작열하는 태양 아래였다면 어땠을까.


달도 없는 깊고 푸른 밤, 총총한 사막의 별빛 아래였다면 어땠을까 싶어 진다.


정말이지 너무도 황량하고 삭막해서 다시 세상 속에 나가면 더 치열히 살고 싶다는,


더 열심 내어 살아야겠다는 다짐 같은 걸 하게 만들던 그곳.



 조수아 트리 국립공원 내에는 거대한 바위산 아니면 둥근 돌무더기만이 끝도 없이 펼쳐졌기에


곧게 뻗어나간 도로변은 어디나 할 것 없이 황량 그 자체였다.


사막에 펼쳐진 뜻밖의 설경에 초대받은 가족들이 간혹 길가에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는다.


눈도 코도 없는 밋밋한 눈사람을 만들며 즐거워하기도 한다.


'불의 고리'를 이룬 채 지심 저 아래서 끓어오르는 마그마의 열기를 식히려는 걸까.





길가 안내판이 붉은 글씨로, 경고하듯 강력한 지진 지대임을 알린다. 


캘리포니아는, 태평양을 둘러싼 불의 고리에 포함돼 있어 세계에서 지진활동이 가장 활발한 지역.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해있는 곳이라서 엔젤레스와 샌프란 인근의 지진은


대부분 이곳이 진앙지,라고 큰 바위산 앞 표지판에는 씌어있다.


발치가 자꾸만 내려다보인다.


발끝이 왠지 저릿거린다.


이처럼 가도 가도 끝없는 막막한 황무지에 강성 지진대까지 매복해 있다고?


정녕 여긴 신의 저주라도 내린 땅이 아니던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미국 최고가의 저택이 들어선 비벌리 힐과 말리부가 예서 두어 시간 거리이니 지척이다.


얼마 전  인터넷판 뉴스에서 러시아 어느 학자가 예언하길, 


몇 년 후 미국이 쪼개져 국가가 네 쪽으로 분열돼 서부 쪽은 동양권이 될 거라나.


하긴 로스앤젤레스 시가지에선 물결 이룬 한글 간판에 여기가 한국인 듯 착각하게도 된다.


샌프란은 샌프란대로 중국인이 득시글거린다.


서양 사람들은 중국인과 한국인을 거의 구별 못하니 어쩌면 이걸 두고 동양 영향권이란 말 나올 법도...


광개토대왕이 달리 있는가, 


이렇게라도 국토 확장을 하며 미국 땅에 뿌리내린 대단한 우리 교민들. 파이팅이다!




서부여행을 할 적마다 갖게 되는 또 한 가지 싱거운 생각.


만일, 그 예전 신천지를 찾아 나선 메이 플라워 호가 동부 메사추세추가 아닌


이곳 서부 태평양에 닿아 내륙 사막지대라도 걷게 되었더라면?


아마도 그들 유럽인은 오 마이 갓~을 외치며 누가 붙잡을세라 급히 꽁무니를 빼면서 도망치듯 서둘러 뱃머리를 돌렸을 텐데......ㅎ



서부 사막을 여행하다 보면 산자락이나 평원에서 드문드문 만나게 되는 조슈아 트리.


눈 쌓인 겨울에 본 조슈아 트리나 화창한 봄날에 마주한 조슈아 트리나 느낌 휑하다.


거개가 기형적으로 비틀어진 채 활처럼 구부정한 데다 쓸쓸할 정도로 메마른 실루엣이라 왠지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특히 석양 비낀 설원에서 마주한 조슈아 트리는 눈매 퀭한 설산 고행자 혹은 사막의 은수자를 연상시켰다.




판화나 추상화 같은 조슈아 트리가 여기저기 죽은 듯이 산 채로 


그저 묵연히 서있던 조슈아트리 국립공원,


언제이고 다시 한번 찾아갈 것이다.


후에 알았는데 유성우가 매혹적이라 하니 언제든 꼭 한 번은


쏟아져내리는 유성을 보러 어느 별밤 그곳에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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