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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무량화
Dec 17. 2024
단기 4288년에 생긴 일
한국전쟁이 끝나고 난 전후의 피폐하고 불안한 시대에 나는 국민학교 1학년 생이었다.
빨치산 잔당이 지리산에 숨어들어 여전히 토벌대와 격전을 벌이던 당시다.
순후한 인심의 충청도에서 조차 그들의 자수나 전향을 권유하는 삐라가 헬리콥터에서 하얗게 뿌려지던 그때.
군대 가는 청년들을 가득 실은 트럭이 행길에 뽀얀 먼지를 날리며 지나가면 연도에 도열해서 손을 흔들어주었고
남파 간첩이 접전 끝에 사살돼 거적 떼기에 덮여있다는 흉한 뉴스를 라디오로 듣던 시절.
가지고 놀던 불발탄이 터져 불의의 사고를 당한 어린이의 끔찍한 사진이 신문에 종종 실리던 혼란기였다.
상이군인이 쇠갈고리 손으로 위협하며 대문을 밀고 들어와 무턱대고 돈을 요구하던 살벌한 시기이기도 했다.
단기 4288년, 서기로는 1955년이다.
연대기를 살펴보니 그해 한국에서는 민주당이 창당을 하였고 현대문학이 창간호를 냈으며
남로당 당수 박헌영이 북한에서 처형당한 해이기도 하였다.
1955년 미국에서는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백인에게 버스 좌석을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
수감된
흑인 여성 로사 파크스 사건이 인종 차별 반대 운동의 시발점이
됐다.
같은 해에 제임스 딘이
사망했으며
디즈니랜드가
개장한 해
다.
영원한 반항아 제임스 딘이 국민학교 일 학년 때
세상을 떠난 사람이라는 게 어째 실감 나지 않는다. ㅎ
이 통지표는 엄마가 어릴 적 물건들을 소중히 간수해 둔 덕에 아직껏 내게 남아있게 되었다.
1학년 3반 78번.
아홉 살 열 살짜리도 한 반에 있었기에, 만으로 여섯 살에 학교에 들어간 내가 제일 어렸다.
그래서 번호가 맨 꽁지 78번이다.
서른 명도 안 되는 요즘과 비교하면 근 80명이 한 교실에 빡빡하게 찼으니 그야말로 콩나물시루였다.
그때 담임이 우리 담장 너머 옆집에 사는 김교순 선생님이었다.
안경을 쓴 그분 어머니는 일본 유학을 한 인텔리로 대한 부인회 간사였으나 전쟁통에 남편을 잃는
바람에
우리 선생님이 결혼을 하지 않고 가족들을 부양하는 가장 노릇을 했다.
기억 속의 선생님은 늘 검정 비로드 치마에 하얀
양단
저고리를 입고 다니던 단아하면서도 엄격한 분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자상하셨던 선생님으로 예방주사 맞는 날 꾀병을 부려도 어이없다는 듯 웃고만 마셨다.
한 번은 회약을 억지로 먹다 선생님 치마에 토해버렸는데 이제 생각하니 비로드를 어찌 세탁하셨을까?
지금은, 마른 요량하고는 자타가 인정하는 건강 체질에다 깡인지 암튼 강단이라도 있지만
어릴 때는 통지표 출석상황에 표기된 대로 결석일수가 17일이나 될 만큼 잔병치레가 잦은 약골이었다.
걸핏하면 아파 학교를 빠졌는데 특히 등교 시간쯤 코피가 잘 쏟아져 쑥으로 코를 틀어막고는 누워있어야 했다.
그래도 학급에서 제일 어린 막내인 데다 옆집 애라서 이래저래 선생님의 귀염을 많이 받았던가.
학예회 때 연극에선 주인공을 맡기도 했다
.
그 선생님이 공주의 한 요양병원에서 세상을 뜨셨다는 소식을 재작년에 듣고 화살기도를 바쳤는데
키가 시원스레 훤칠한 데다 목소리 힘차서 꼭 여군 같던 선생님, 이제 보니 글씨도 아주 달필이시다.
머리가 하얗던 교장선생님, 심한섭이라고 한문으로 쓴 존함이나 내 이름을 보니 필체가 단정하면서도 기운차다.
풍금도 잘 치시고 운동회 때면 학년 전체 고전무용 지도를 하시던 팔방미인 선생님.
봄방학인 요즘이라 책상을 정리하다 오래전 통지표가 나와 잠시 옛 생각에 잠겨보았다.
올해는 단기로 4357년이니 참 오래전 얘기다.
통지표를 보면서 또 다른 생각 하나가 고개를 든다.
어릴 적이나 이제나 한결같이 약체, 빼빼인 체구로 한 번도 보기 좋게 살쪄본 적이 없다는데 생각이 미친다.
위 사진에는 볼이 통통하게 보여도 안색은 창백하고 늘 해리해리하던 예의 일 학년 때로
입이 짧아 춘궁기 아이처럼 얼굴에 마른버짐이 하얗게 돋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얼굴이 활짝 핀다는 사춘기에도 대학 시절에도 신혼 때도 매양 그 타령이었다.
복사꽃처럼 화사하게, 모란꽃처럼 소담하게 꽃 피워본 시절이 내게 과연 있기나 했던가 싶다.
여태껏 한 번도 체중이 45kg을 넘지 않고 그 안에서만 오르내린다.
젊을 적엔 날씬함으로 위안 삼았지만 나이 든 이젠 그게 아니다.
링컨은 나이 사십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라 했는데 애진작에 포기한 부분이 되고 말았으며
예민해 보이는 인상이라 푸근하고 넉넉한 마님상을 가져보기는 아예 글렀다.
비쩍
말라
빠져
남 보기에 피죽 한 그릇도 못 먹은 사람처럼 측은하게 보이는 데다
주름만 기고만장
활개를 친다.
해서 강박관념처럼 '살과의 협상'을 벌여보나
'살과의 전쟁'이나 마찬가지로 뜻대로
안 되는
게 이 일이다.
해도 해도 안되니 이젠 생긴 그대로,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고 거기 적응해 나가기로 한다.
다만 그 덕택에 성인병 없다는 걸 감사히 여기며 이쯤에서 그 욕심을 접기로 한 것이다.
타고난 체질을 어찌할 것인가, 미련을 버리고 이대로에
자
족하며 가볍게 살아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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