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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Dec 18. 2024

사색의 숲 비자림 거니노라면


생멸 끊임없이 계속되는 생명의 숲 비자림.

태곳적 세월이 응축돼 있는 비자림에서는 누구나 절로 묵상의 시간을 갖게 된다.

천년숲 비자림에 들면 자연스레 드는 생각. 몇 백 년 혹은 천년 세월을 살아온 나무에 비하면 백 년도 못 미치는 한갓 인생사랴 싶어 삶 전체를 통찰하게 되므로.

상흔은 더러 옹이로 남거나 마디 되는가 하면 삭고 늙어 속이 비어버린 비자나무 곁에 세대교차하듯 새순이 자란다.

옆 가지에 치이고 돌담에 걸려 비틀린 가지, 물길 장애물 만나면 굽이돌듯, 자리 잘못 잡은 나무는 스스로 기이하게 굽어 그 또한 멋스런 풍경이 된다.

칡덩굴 등덩굴 뒤엉켜 치열하게 햇볕 바라기하려 키돋움하면서도 서로 의지하고 받쳐주며 공생공존하는 숲.

한 뼘 영토 더 넓히려 뒤틀거나 비비적대며 안간힘 쓰나, 의연하게 때로는 초연히 저마다 살아가는 방식 천태만상이다.

숲 바닥에서도 선명히 빛나는 자금우 곱다랗고 화산암 틈 사이 생명이 숨 쉬는 숨골이며 화산석 휘감은 으름덩굴이 반긴다.

곶자왈다이 온데 수풀 우거져 자유분방한  비자림, 고사목에 기생하는 이끼류 식물과 아주 작은 콩짜개란 무성하다.  

서로 어우러져 아름다운 숲, 뭇 생명의 조화가 안겨주는 평화로운 안정감이 마음까지 느슨하게 만든다.

거의 모든 철학과 문학은 책상 위가 아닌 산책시에 영감 얻었다듯 직립보행을 하는 동안 깊어지는 사유.

수도승이 홀로 심산유곡이나 외진 사막으로 들어가는 이유를 알듯도 하다.


새천년 비자나무와 8백년 생 비자나무에 자생하는 콩짜개 난


뭀경 천년의 일월 품은 숲이라서인지 거목들 기상도 걸출하다.

곶자왈처럼 원시의 생명력이 살아숨쉬는 숲에는 양치식물과 풍란 어우러져 서로 키재기를 한다.

밀밀하게 들어찬 우람한 둥치의 나무들 올려다보니 충분히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을만한 자격 갖췄다.

분위기 자체가 외경감을 들게 해 다소곳 자연 공손해지며 말수 아껴진다.

그저 또 하나의 자연물 되어 비자숲에 흡수되듯 녹아든 자신.

생태숲다이 진녹색 온데 자욱한 비자림 숲길을 걷는다.

황톳빛 숲길에선 사각사각 별사탕 자그락대는 소리가 난다.

화산송이를 바닥재로 깔아 감촉까지도 느낌 상큼하기 그지없다.



숲향기로 말하자면 비자림만큼 독특한 데가 달리 또 있을까 싶잖다.

한약초 내음 같은 게 사방에서 말갛게 스며드니 청량감은 절로 따른다.

식물 속에 들어있는 정유 성분이 피톤치드처럼 숲 속 공기에 녹아든 테르펜 덕이다.

비자나무와 같은 주목과 상록수에 함유돼 있으며 살균 살충 효과가 있는 방향성을 지녀 신경을 안정시킨다고.

천천히 숲길 걷노라면 자율신경이 자극돼 정신집중의 효과를 본다는 설명글에 관심이 급 증폭된다.

비자(榧子)란 이름은 잎의 배열모양이 한자의 아닐 비(非)와 비슷하게 닮은 데서 유래하였다더니 그럴싸하다.

길가로 뻗은 낮은 줄기의 비자잎을 사진에 담고는 이파리 살짝 만져본다.

잎새 어루만지 듯 쓰다듬자 매끈한 촉감과 함께 까칠한 침엽수 고유의 성정이 전해진다.

침처럼 손끝마다 자극을 주자 소화기관이 반응을 보낸다.



비자림은 눈맛 시원하게 해 주고 청각 상큼하게 열어주고 후각 청량하게 트여주고 덤으로 미각과 촉각도 깨어날 수 있었다.

시(視)·청(聽)·후(嗅)·미(味)·촉(觸), 오감 고루 자극하니 이보다 더 좋은 데 어디일까.

무엇보다 신선한 숲 향기 심호흡하노라면 푸른 생명력 전이받는 듯하다.

영혼은 물론 세포 낱낱이 새롭게 충전받은 느낌이 들었다.

휘적휘적 더러는 성큼성큼 걸으며 비자림에서 한나절 보냈더니 천년 숲 향 테라피로 심신 두루 쇄락해져 더할나위없이 개운하다.

자유로움과 평화, 이에 더 무엇을 원하리까.

그 어떤 매임이나 구속도 없다 보니 이리도 홀가분하고 편안한 것을.

두어 시간 형체 없는 정령처럼 부유하다 숲에서 나오니 심신 날아갈 듯 가뿐하고도 상쾌하다.

맑은 기운으로 전신 세례 받아 정화된 데다 충만된 사유의 시간 선사해 준 비자림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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