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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5시간전

 진짜 게국지 맛을 아는지


지난해 일이다.


겨울들어 두 번이나 호박지를 담갔다.


참하게 생긴 청둥호박만 생기면 담는 김치다.


호박으로 김치를 담다니?


충청도 해변가 태생이 아니면 거의가 금시초문이라는 호박지다.


어릴 적 겨울철 끼니때마다 화롯불에 보글보글 끓여 먹었던 구수한 호박지.


호박지를 담기 시작한 건 태평양 건너가서부터였다.


미 동부 뉴저지에서다.


한국 토종 호박씨를 심었더니 정직하게 토종 애호박이 열렸고 늦가을 서리내리자 잘생긴 청둥호박이 두둥실 떠올랐다.


나이탓인지 어릴 적에 먹어본 호박지가 새삼 그리웠다.


한국 살 때 한 번이라도 직접 만들어볼 생각을 해봤다거나 하다못해 호박지 담는 과정을 지켜본 적도 없다.


세포가, 입맛이 암기하는 기억을 되살려 호박지를 담가봤는데 맛이 그럴싸했다.


캘리포니아로 이사와서는 여러 차례 호박지를 담갔다. 


특히 외할머니네를 자주 간 딸내미는 그 맛을 그리워 하며 한인마켓에서 청둥호박을 사와 만들어 달라고 했다.


여전히 겨울철 별미로 호박지를 즐기는 딸내미라 근자 한국에서 호박지를 담아도 사진을 보내지 못한다.


그림의 떡이 아니라 사진 속 호박지를 보면 오죽 먹고 싶겠나 싶어서.



서귀포에 오니 가을철 감귤 못잖게 흔해빠진 것이 맷돌호박이라 해마다 호박지를 담갔다.


말 타면 견마 잡히고 싶듯 호박지를 먹다 보니 이번엔 한발 더 나가 게국지가 먹고 싶어졌다.


50년대 충청도 사람이나 그 촌스러운 음식을 알까, 과연 여태 게국지라는 게 존속이나 할지?


그렇게 소환된 게국지다.


허걱! 위키백과 설명에서부터 맛집이며 레시피는 물론 쿠팡 주문까지 좌악 떴다.


게국지 맛집은 향토음식으로 소문나 충남 서산 당진 태안 등 서해안 마을에서 성업중이었고.


벼라별 동서양 특식에 고급 별미가 지천인 세월에 그 볼품없는 음식이 명맥을 이어가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게다가 가격은 또 얼마나 쎈지.


세상에나! 살다 보니 게국지 전성시대를 다 만나네.


김장 끝에 남은 허접스런 배추 무 늙은호박 숭덩숭덩 썰어 거기에다 특이하게 게장의 게 국물이 동원됐다.


생새우며 여러 종의 생물 잡어 등을 넣고는 김장하고 남은 양념에 슥쓱 버무리던 막김치인 게국지다.


겨울철 뜨끈하고도 구수한 맛에 즐겨먹던 향수 어린 그 맛.


모양도 들쭉날쭉, 색깔도 희득스레, 음식치고는 무던하다 못해 투박하기 이를 데 없는 촌음식인데 방송을 탄 뒤부터 뜨는 걸까.


그게 게국지라고? 정말 웃긴다.


외할머니 손맛? 어림없는 소리다.


충청도 토박이 아니면 요즘 사람들은 생전 보도 듣도 못하던 게국지일 텐데?


관련 유튜브 여러 편을 열어봤다.


전통에 향토 음식 들먹이지만 이건 게국지가 아니라 좋게 말해 퓨전이고 완전 나이롱 사쿠라다.


게국지의 게는 옆으로 걷는 '게', 게가 삭으면서 나온 젓국의 '국', 오이지나 짠지 묵은지처럼 김치를 이르는 '지'다.


묵은 포기 배추김치를 헹궈서 넣고 그 옆에다 꽃게 앉혀 온갖 재료로 화장시킨 게국지 식당도 있었다.


염장 발효 식품인 김치의 일종인데도 심지어 생배추를 쓰는 게국지 전문식당도 있으니 말해 무엇하랴.


꽃게 매운탕의 변형이지 그게 게국지야?


니들이 진짜 원조 게국지 맛을 알기나 알아?



당진 읍내에서 너른 채운 뜰 지나 천의 란 마을 통과하면 거기서부터 대호지면이다.


여기서도 두산리 산골길 하염없이 걸어가야 외가가 있는 사성리에 이른다.


농촌이자 어촌인 사성리였다.


유년기 추억이 서리서리 쌓인 이때, 이곳은 나의 보물창고이다.


외갓집 앞으로 다랑이 논이 펼쳐지고 그 곁에 커다란 방죽이 있었으며 제방 너머로는 간척지 드넓었다.


일제 때 만들었다는 간척지 지나면 큰 원뚝이 바다를 가로막고 길게 누워있었다.


웬만큼 수영하는 이라면 능히 헤엄쳐 건널 수 있는 너비의 폭 좁은 바다였다.


빤히 건너다 보이는 대산(지금은 석유화학단지로 변모)은 서산군으로 중심에 망일산 높다라니 솟아있다.


등잔불을 사용하던 당시이나 밤이면 망일산이 보관을 쓴 듯 휘황했는데 미군 레이다 기지가 있다고 했다.


마을 감싸듯 빙 둘러쳐진 앞바다를 끼고 있는 적서리 개펄은 유난히 기름졌다.


여름철 개펄에 들어가 호미질을 하면 바지락이 끝없이 나왔고 황발이 능쟁이라 불리던 게가 버글거렸다.


외갓집은 정미소를 운영했고 자손을 못 둔 외삼촌네서 나는 어린 시절의 태반을 살다시피 했다.


국민학교에 들어가려고 읍내 집으로 돌아올 때 일이다.


동구밖까지 따라오던 외숙모는 솔밭에 들어가 하염없이 울었고, 지나가던 이는 자식 군대 보낸 줄 알았다.


학교 때문에 집으로 왔어도 주말은 물론 방학만 되면 쏜살같이 내닫던 그 삼십릿길.



 겨울방학에 외가 가면 때마다 무쇠솥 밥 한복판에서 게국지 뚝배기가 끓었고 화롯불로 옮겨져서도 게국지는 보글거렸다.


그 생각만으로도 입에 군침이 고인다.


희미해진 옛 기억 더듬어가며 직접 게국지를 담가봤다.


능쟁이 황발이 밴댕이 황석어는 여기서야 접하지 못하니 도리없다.


갯벌이 없는 서귀포에서 구경하기 어려운 해산물일랑 제쳐두고 잡어와 열기만 넣고 분위기 비스므레하게 흉내만 냈다.


삼일 후, 소박한 식탁에 걸맞게 갓 지은 밥 한공기에 게국지 찌개와 김장김치, 생 김, 방풍나물 장아찌를 접시에 올렸다.


비주얼만이라도 그럴싸하라고 고춧가루 쏟아부었더니 슴슴해야 할 게국지가 맵기만 맵고 깊은 맛이라곤 도무지 안 난다.


깊이 곰삭은 맛까진 바라지 않았지만 담백하면서도 구수하고 시원한 게국지 고유의 맛 대신 호박지 버전 투, 맛이다.


밥보다 군고구마나 떡이랑 곁들여 먹으니 음식궁합은 그나마 잘 들어맞았지만 여전 아쉬운 느낌.


미진한 마음 혹시나 가실까 싶어 전화기를 들었다.


그간 많이 먹어는 봤어도 게국지 담는 걸 직접 본 기억은 없으므로 외사촌 언니에게 전화로 물어봤다.


구순이 가까운 언니도 어릴 적에 옆에서 봐오긴 했으나 한번도 만들어 본 바는 없다고.


다만 예전 기억을 단편적으로 들려줬다.


농사처가 없어 바다에 나가는 걸 업으로 삼은 이웃에게 여름이면 보리를 됫박으로 퍼주고 구럭에 담긴 게를 몽땅 샀더란다.


자잘한 게와 집간장을 항아리에 같이 부어놓으면 게가 살아서 거품을 내며 버스럭댔다면서 싱싱한 게로 게장을 만들어 가으내 밑반찬 삼았다고 했다.


그러다가 김장철이 되면 먹다 남은 게장을 퍼다 게국지를 담았단다.


이때 고춧가루는 넣는둥 마는둥 생새우와 새뱅이라는 민물새우와 망둥어나 생태를 뭉턱뭉턱 저며넣었다고.


그래야 구수하면서 시원한 맛이 난다며 신이 나서 첨언을 했다.


아주 오래전에 살았던 옛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이 들수록 이처럼 신명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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