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의 꽃 수선화를 보러 추사 유배지를 다녀왔다.
어제 안덕 길가에 핀,내 기억회로는 미국 때 이른 수선화를 보자마자 생각난 추사 선생이다.
유배처 인근에 줄지어 가꾸던 수선이라 그 꽃을 보러 갔지만 아직 일렀다.
한 달쯤 지나서 가보면 주변에 수선화 꽃 향 그윽하게 스며있으리라.
내동 그리스 신화 나르시스의 꽃으로만 여겼던 수선화였다.
따라서 당연히 서양 꽃으로 알고 있었다.
서귀포 와서 살면서 비로소 알게 됐다.
제주 수선이 아주 오래전부터 이 들녘에도 뿌리내렸더라는 사실을.
일찍이 그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을 뿐, 해마다 눈 속에서 꽃대 올렸던 제주 고유의 식물이란 것을.
추사 선생 덕에 제주 몰마농이 수선화로 거듭날 수 있었다는 사실도.
김정희는 세 살 때부터 붓을 잡기 시작하여 여섯 살에는 입춘첩을 써 붙일 정도로 서예에 천부적 재질을 타고났다고 한다.
추사체 글씨뿐만 아니라 금석학, 성리학, 실학의 대가였으며 회화와 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추사 김정희 선생.
생원시에서 장원급제한 김정희의 가계는 병조판서를 지낸 아버지를 비롯 대대로 세도가였다.
왕실의 외척이기도 한 그는 효명세자 사부였으며 흥선대원군이 그 문하에서 글을 배우기도 했을 정도다.
부친이 청나라로 동지사 사신으로 떠날 때 아버지와 동행해 6개월 동안이나 북경에 머무는 동안 고증학과 신학문을 익혔다.
그때 북경에서 수선화를 그림으로 접한 바 있는 추사 선생이다.
하여 대정에서 열두 해의 겨울을 지내며 들녘에 지천으로 핀 몰마농이 수선화라는 걸 단박 알아봤을 터다.
한겨울에 피는 꽃으로 동백과 매화를 꼽지만 목본류와 달리 수선화는 여린 초본류다.
시린 설한풍 몰아쳐대는 혹독한 시련 견뎌내기에는 너무도 연약해 보이는 잎새와 대궁과 꽃.
수선화는 그래서 물가의 미소년 이미지가 담긴 나르시스 신화가 더 잘 어울리는 그런 꽃이다.
제주에서는 마소가 짓밟기나 하는 잡초라서 마구 뽑아버리며 ‘몰마농(말마늘)’이라 불리던 그냥 풀이었다.
기실 이전엔 밭고랑에 무성하게 자라는 풀이라서 성가신 잡초였으나 추사로 인해 그 이름 제대로 불리게 되었다.
이를테면 진면목을 알아본 안목 덕분에 잡초에서 신선으로 격상한 수선화다.
유배처에서 추사가 해탈신선이라 극찬하며 지극히 아껴 가까이했던 꽃.
눈 속에서 꽃 피운대서 설중화요, 하얀 꽃받침과 노란 부화관 모양이 옥 받침 위의 금잔 같아 금잔옥대다.
이런 별칭을 얻게 된 건 훗날 일이다.
전국 산야 그 어디에서나 흔한 꽃이 아니었기에 추사를 통해 조선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수선화다.
제주로 추사 선생이 유배당하지 아니했다면 당시 아무도 그 풀이 수선화인 줄 몰랐으리라.
날씨 차가워도 꽃봉오리 둥글둥글 / 그윽하고 담백하여 감상하기 그만이다....
호미 끝에 팽개쳐진 평범한 이 물건을 / 햇볕 드는 창문 옆의 책상 위에 모셔둔다,라고 시로 읊은 추사.
그의 편지글에는 "그 꽃은 정월 그믐께부터 2월 초에 피어서 3월에 이르러서는 산과 들, 밭두둑 사이가 마치 흰 구름이 질펀하게 깔려 있는 듯 또는 흰 눈이 광대하게 쌓여 있는 듯하기도 합니다"라고 쓰기도 했다.
내심 기대했던 동글동글한 꽃봉오리와의 해후는 오늘 이루어지지 못했다.
유배지에서 벙근 수선화는 두어 포기에서만 보았을 뿐이라 다음을 기약하고 기념관으로 향했다.
여러 번 방문한 추사기념관이지만 이번은 특히 금석학의 대가가 남긴 현판과 비문의 탁본을 족자와 액자 통해 직접 볼 수 있었다.
북한산에 세워진 비석은, 무학대사의 비가 아니라 신라 진흥왕 순수비라는 사실을 밝혀낸 금석문 권위자인 추사 선생이다.
금석학은 금석에 새겨진 다양한 문자를 탁본이나 다른 방법을 통해 문자를 해독하고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를 위한 기본 토대인 금석문은 주로 쇠붙이나 돌 또는 나무에 문자를 새긴 것을 말하나 그 외에도 여러가지를 포함한다.
고분 벽화나 상량문의 묵서명, 기와나 전돌과 자기에 새겨진 명문, 떡살이나 고가구에 새겨진 문자, 묘비나 인장에다 새긴 글씨 등이다.
바위에 새겨놓은 불화나 비석에 새겨진 글씨를 탁본으로 뜬 경험, 요즘은 문화체험을 통해 쉽게 접하기도 한다.
쉽게 말하자면 인주를 묻혀 도장을 찍듯 탁인하는 기법의 일종이다.
흡습성이 높은 화선지를 글씨가 새겨진 비석에 대고 먹을 묻힌 솜방망이로 두드리거나 눌러서 형체를 뜨는 방식의 통칭이 탁본이겠다.
구글도사의 설명을 이에 풀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