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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이 그립다
생이퐁낭이 있는 마을
by
무량화
Jan 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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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랑 치는 정국에 심란스런 시국은 언제나 평온을
되찾으려는지 도무지 깝깝하기만 하다.
이럴 땐 밖으로 나가 머리 텅 비운채 마냥 걷는 게 최고다.
금모래 해안을 통해 용머리로
걸어가
보려고 화순리에서 친구와 만났다.
마을 고샅길로 접어들자 크고 작은 감귤밭 이어졌고 돌담에 구기자 열매며 해당화 열매 붉게 익었다.
바다 쪽으로 방향을 잡고 시나브로 걷다가 마을 삼거리에서 용틀임하듯 한 노거수를 만났다.
사진을 찍으려는데 주변 배경이 지저분하게 걸리적거렸다.
양 측면 어디로 견줘봐도 마땅치가 않아 바짝 쪼그리고 앉아 찍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길 건너 양지에서
우릴 바라보던
할머니 한 분이 나무를 가리키며 무어라 했다.
말이 고픈 노인네 무료하던 차 한마디 거드는 훈수 임직하였다.
할머니 쪽으로 가서 저 나무 이름이 팽나무냐고 물었다.
그러자 나무에 얽힌 옛 얘기를 손짓 섞어가며 줄줄이 풀어놓았다.
세 손가락을 펴고는 삼백 년 된 나무로 처음 마을이 생길 때 심은 퐁낭이라 했다.
퐁낭,
퐁낭 하더니 금세 생이퐁낭이라고 정정했다.
생이는 또 뭐냐고 묻자 두 팔로 훨훨 나는 흉내를 내가며 많은 새들이 저 나무에 모여든다고 하였다.
아닌 게 아니라 나무 아래 땅바닥에는 흰 새똥이 즐비하게 널려있었다.
생이퐁낭 덕에 이 고을 복이 바다로 새어나가지 않고 삼태기에 모이듯 고스란히 모여 부촌 이뤘다고 했다.
바로 아래 바닷가에서 태어나 윗동네로 시집와 여태껏 여기서 산다는 95세 할머니는 연세에 비해 퍽 정정했다.
꽃분홍 바탕의 스웨터며 진보라 털모자까지 차림새도 전혀 허술하지 않았다.
피부도 해풍 센 지역에 사시는 분 치고는 고운 편이고 특히 또렷한 눈망울 초롱하였다.
다만 음성이 자꾸 커지는 걸로 미루어 청력은 약한듯했다.
어촌에서 태어났으니 할머니도 해녀일 하셨겠네요? 하자 천한 사람이나 좀녀가 되는 거라며 아버지가 절대 말렸다나.
친정이 무척 잘 사셨나 봐요, 했더니 아랫녘 논밭이 모두 자기네 소유였는데 화력발전소가 생기며 다 잃었다고도.
열일곱에 결혼해 자녀는 오 남매를 뒀는데 두 아들을 얼라때 놓치고 삼 남매만 키웠다고.
시청 과장이었던 아들이 효자라고 자랑했으며 지금은 손주들까지 제주시에 나가 선생 한다며 집안 자랑이 끊이질 않았다.
할머니 막내딸이 나와 갑장이라 갑자기 더 친근해져, 스스럼없이 가정사 들려주며 자기 집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자고 했다.
고맙지만 지금부터 용머리 해변까지 걸어가야 한다니까 더는 권하지 않았으나
양 씨 할머니 이바구는 계속 이어졌다.
이십 년 전에 먼저 간 영감님이 병원비로 돈 숱하게 쓴 사연과 자신이 안덕면 화순리 서부락에서 가장 장수노인이라며
엄지 척도.
할머니께 건강하셔서 백수 누리시라는 인사 남기고 화순 해안로를 따라 내려왔다.
갈매기 떼 지어 노니는 모래톱을 지나 화순 곶자왈탐방로에 이르렀다.
썩은 다리란 고약스런 이름과는 달리 말끔한 데크로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어 안심하고 계단길 걸어 올라갔다.
탐방로 양옆에는 잡목들이 우거져 다양하게 자란 여러 식물군들을 접할 수 있다지만 계절 탓인지 거의 마른 풀섶만 이어졌다.
반면 테크길과 흙길 적절히 분포돼 있어 반려견 동반도 가능하며 조용하고 호젓한 숲길은 그다지 인적 많지 않아 산책하기 좋다.
보통 곶자왈은 거친 땅바닥만 보고 걷게 되는데 여기선 더러 한라산과 산방산 풍경을 퍼뜩퍼뜩 보여주곤 해 그 재미가 쏠쏠했다.
전에 사계 해변을 걸으며 서쪽에서 산방산을 조망해 봤는데 동쪽에서 바라본 산방산이 주는 느낌은 서향과 영 달랐다.
서쪽 방향은 산세가 아담하고 단정하다면 동쪽 모습은 단호하게 깎아지른 절벽 분위기가 완강하면서도 걸출했다.
산방산을 이모저모 감상하는 묘미와 가끔씩 나타나는 바다 바라보며 걷는 한 시간 남짓의 탐방길이 그리 지루하지는 않았다.
'한국 아름다운 숲' 공존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다 하나 생태 그대로를
보전한 원시림의 매력은 여타 곶자왈만 못했지만 말이다.
어찌 보면
평이한 산길 같은 화순 곶자왈탐방로이나 주변에는 산방산, 화순금모래해변, 용머리해변 등이 아주 가깝다.
평이한 보통의 시골길처럼 무심할 정도로 단조롭고 평탄한 하루하루를 지루해하며 무언가 특별한 일을 기다려온 데 대한 벌일까.
평범한 일상을 당연하게 여겨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
우리는 뭐든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참가치를 깨닫게 된다.
가정의 평화, 나아가 국가와 세계 평화까지는 아니라도 그저 단조롭고 소소하다 못해 무미건조한 평화로운 일상이 그리운 요즘이다.
망각의 동물이라는 인간이라서
그랬던가.
잃어버린
삼 년이 되고 만 어처구니없는 코비드 세상도 겪었으면서 다시금 평범한 삶의 가치를 되뇌다니.
숨 가쁘게 터지는 엄청난 사건 사고들로 지난 12월은 정말이지 숨죽이고 살았다.
이
이상 좋지 않은 일들이
살면서 다시
생길 수 있을까
싶잖다.
지금사 매일 아침 눈뜨고 일어나 하루 무탈하고 건강하게 지내면 그로 족한 노년이기 망정이다.
나이듦이 그래서 고맙고 기꺼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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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 지나니 만사 여유작작, 편안해서 좋다. 걷고 또 걸어다니며 바람 스치고 풀꽃 만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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