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글
간밤 언니와 오래 통화를 나눴다. 평소와 다른 주제로 얘길 하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보통은 정치판 갈구거나 가벼운 여행담, 자녀들 얘기가 주 화제인데 어제는 거창하게도 '인생에 대해' 논했다. 생애 내내 희로애락 파도에 실려 출렁거리다가 종당엔 한 움큼 흙으로 돌아가는 생의 노정. 나침판은 물론 모범답안도 없을뿐더러, 이 나이 되고 보니 모두가 오십보백보인 인생 여정이더라는데 우리는 동의했다. 모쪼록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부지런히 놀러 다니고 새로운 거 배우자고 했다. 또, 나를 필요로 하는 곳 찾아 나눔 봉사하며 살자고도 하였다. 덧붙여 언니에게 인근 호수공원으로 자주 산책 나가 걸으라는 주문 거듭거듭 했다.
올해 언니는 일흔다섯이다. 그간 누구보다 활기차게 직장 생활을 한 언니다. 퇴직 후에 맡은 강의와 사회복지 쪽 일도 이제 쉴 때가 되었다며 올해서야 마무리 지을 정도로 내내 활동적이었다. 언니네 삼 남매 다들 안정된 직업에 편안한 가정 이루고 건강하게 사니 복노인인 언니다. 넉넉한 노후의 삶이 유지될 만큼 연금액 높아 요즘에도 양주 분 정다이 해외여행 다니며 남부럽잖게 지낸다. 작년에도 우리집에 와서 함께 미서부 여행을 다녔던 언니 음성이 어제 따라 맥이 빠져있었다. 참 허망하다며 잇따라 인생 아주 잠시더라는 언니 목이 순간 잠긴다. 대체로 기분파인 데다 단순 경쾌한 성격의 언니답지 않게 처연스럽다. 그렇다고 주변의 누가 심히 아프다거나 친지가 세상을 떠나 충격받은 바도 아니다.
언니네 조카들은 하나같이 결혼이 늦어 첫째 손주가 지금 고 1이다. 특목고에 다니느라 수면시간도 줄이며 공부로 진을 빼는 손자가 안타깝기만 한 할머니. 등 다독거려 주면서 용돈이 든 봉투를 아이에게 건넸다. 그러자 아이 엄마가 너도 빨리 커서 할머니께 용돈 보내드리라 했다. 순간 계산을 해보니 암만 빠르다 해도 십 년 후나 가능한 일, 여태껏 진지하게 셈해본 적 없는 십 년 세월이 명치에 턱 걸리더란다. 여든다섯 나이에도 심신 건강해 음악회도 가고 여행도 다닐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그때도 과연 김장 담고 백화점 쇼핑객 되어 적극적 소비생활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싶더란다. 지금처럼 지낼 수 있는 기간은 잘해야 앞으로 고작 오 년여 뿐이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느낌 묘해지더라는 언니.
예측불가인 미래, 물론 내일 일은 하늘이나 알지 우리는 잠시 후도 모른다. 신의 가호가 함께한다는 전제하에서 예측할 따름인 미래다. 현재도 언니 동창들 거개가 벌써부터 무릎관절이나 척추 문제로 가까운 국내여행도 힘겨워한다. 한국식 좌식문화 탓만이 아니라 칠십여 성상 부려먹은 인체, 이미 닳을 대로 닳아 퇴행성 환자가 됐다. 무쇠로 된 기계라도 헐거워지거나 탈이 날 때가 되었다. 따라서 이젠 순순히 나이듦을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일. 칠십 중반에 이르러보니 뛰어나게 잘난 자나 부유한 자나 명망 높은 자 모두 노쇠해지면서 공평하게 도움과 보호 필요로 하는 아이가 되어가더라는 것. 잘 나간다 해도 다 한때더라는 것.
백세시대를 노래하는 세상이다. 일부는 지혜롭게 노후설계를 하는 등 착실히 은퇴 후를 준비한다. 허나 늦게사 미래를 설계한다는 것 자체가 애매해, 그저 부부 서로 의좋게 지내며 건강관리나 잘해나가기로 한다. 노년기의 십 년이나 이십 년 후는 보장받을 수 없는 불투명한 시간이다. 여든이나 아흔에 할 일을 미리 계획한다는 것, 이러저러한 구상 자체가 가당찮이 여겨진다. 그렇다고 아무 대책 없이 무료하게 세월 보내며 귀한 시간 허투루 낭비하거나 막연히 좀슬게 해서는 안 될 일이겠다. 무엇보다 나이에 걸맞은 품위 있는 노년, 짐 되지 않는 노년을 만들기 위해 자기관리만은 게을리하지 말아야.
십 대는 십 대대로, 이십 대는 이십 대 대로의 청사진이 있다. 젊음이 좋은 건 무한한 가능성이 있으며 미래 위한 준비 기간이 충분해서이다. 각자 구체적으로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자아실현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는 시기. 목표치 달성하기 위해 그 뒷받침이 될 실력을 향상시키는 시기. 내일을 향해 최선 다해 전진해 나가는 시기가 청춘이다. 하긴 그 시절 역시 앞날의 불확실성으로 고민하고 갈등 겪는다. 더구나 향후 십 년 뒤의 세상은 산업혁명 이후 한 세기에 걸친 사회 변천사보다 더 놀라운 변화를 예고한다. 눈부신 IT 산업의 기술발전으로 현재 직업의 반이 사라질 거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문명은 항상 인류의 유익 쪽으로 진화 발전하기 마련이었다.
아흔 넘도록 열정 잃지 않고 꾸준히 자기계발을 위한 도전 멈추지 않았던 카잘스, 록펠러, 피카소. 그렇듯 처칠은 칠십오 세에 '제2차 세계대전'을 쓰기 시작해 팔십에 6권을 완간했다. 파파 노인 되어서라도 자기 일이 있어 평생 현역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경우라면 은총이겠지만 이는 극히 드문 케이스다. 이 모두를 받침 할 수 있는 경제력도 물론 중요하나 보다 필요한 것은 건강 자산. 연만할지라도 세상과 단절되지 않고 소외되지 않은 채 살아갈 자신이 있거나 건강만 하다면 또 모른다. 그러나 칠십 이상 미국 노인들 병원 도움을 받아야 하는 기간이 평균 5-6년으로 나타났다. 비건강상태로 앓다 죽는다는 소리다. 인생 말년 아파서 누워지낸다면, 특히 뇌졸중이나 치매라도 덮친다면 장수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자 악몽이 된다. 건강관리는 고령화 사회가 가장 관심을 두어야 할 문제. 부디 건강하자며 결연하고도 비장스러운 다짐을 연거푸 한 다음 전화를 끊은 어젯밤, 쉬 잠이 오지 않았다.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