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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할 새 없다카이

동백포구에서

by 무량화


브런치 삼아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정오 무렵 집을 나섰다.

해풍에 섞인 마른 삭정이 흔드는 바람 소리 들으며 갈맷길로 한 6킬로쯤 떨어진 동네까지 후적후적 걸어갔다.

돌아오는 길은 해안가로 바투게 난 해변길 따라 걷기로 했다.

햇살 따사로운 동백포구 방파제에 앉아 볕바라기하며 끊임없이 밀려와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았다.

발치 갯바위 틈새로 들고나는 바닷물, 모든 강물의 종착지인 바다다.

세상 온갖 오탁 다 수용하고도 어찌 이리 투명히 맑을까 싶었다.


적정량의 염분 덕일까, 파도가 쉼 없이 움직이며 자정작용을 하는 때문일까,

창조주 지으신 우주 만물 저마다, 인간의 지혜로 감히 헤아릴 수 없을 만치 얼마나 신묘한지.



바닷물이 쭉 빠진 썰물 때, 저만치 갯바위 근처에 사람들이 몰려있기에 얼른 물가로 내려섰다.

약간의 모랫벌과 자갈밭을 지나 암초 기기묘묘하게 솟구친 갯바위 앞은 바로 파도치는 바다,

긴 장화에 일복 차림인 이들도 있지만 바다로 놀러 나온 나들이객들도 하나같이 웅크리거나 엎드린 채였다.

동백마을을 비롯해 인근 해변은 수석 동호인들이 소문 듣고 찾아오는 탐석 명소이기도 하다.

참한 돌을 고르느라 골똘한가 했는데, 물이 남실대는 곳까지 진입한 그들은 바위 근처에서 무언가를 잡고 있는 중이었다.

들고 있는 양동이나 비닐봉지에다 연신 그 무언가를 주워 담고 있기에 바짝 다가갔다.

그들은 미역을 따고 조개를 캐고 바위에 지천으로 붙은 보말을 채집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더러 그 가운데 운이 좋으면 소라, 아기 전복도 만난다고 했다.



산책 나온 길이니 폰만 지참한 터라 맨손.


눈앞에서 움찔대는 숱한 보말, 그 흔해빠진 비닐봉지가 아쉽게 생각나지만 보말을 떼어내 옆엣 사람 그릇에 넣었다.


춥지 않은 날씨인 데다 바닷물이 차갑지 않아 두어 시간 너머를 엎드린 채 보말도 잡고 말미잘 성게 고동 불가사리 등속을 사진에 담았다.


처음 해보는 보말 채취하는 일이 하도 재미 진진해 콧노래가 다 나왔다.


몇몇 남자들은 해조류 붙은 돌장을 들춰내고는 호미질을 해가며 흙 속에 숨은 갯지렁이를 잡아냈다.


동네 사람인듯해 다가가서 말을 건넸다.


갯가 사람들은 보통 보름 전후한 매달 이 시기를 사리 때라 불렀다.


간밤에 중천 높이 흘러가는 둥근달을 보았다 했더니 음력으로 13일이라고 하면서 일주 정도 계속 물이 많이 빠진다는 팁도 알려줬다.


특히 한 달 후인 정월 대보름 무렵이면 연중 가장 바닷물이 많이 들어오고 많이 나가는 시기라 했다.


더 이상 성가시게 하지 않고 고맙다 인사하고는 돌아서며 옳다구나,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내일 두 시 이후에 시간 맞춰서 물질 채비하고 여길 와야겠다, 작정해서인지 저녁시간이 더디 가는 것만 같았다.


다음날 아침, 동천은 무척 푸르렀다.


간편복 차림으로 준비 단단히 갖추고는 비닐봉지 하나 들고 바다로 나갔다.


휴일인 어제보다 사람들은 적었다.


미리 보아뒀던 갯바위 들쑥날쑥한 장소로 들어가 소매 걷어붙이고 해조류 너울대는 물속의 큰 돌을 들추기 시작했다.


돌 뒷면에 옹기종기 붙어있던 보말들은 위험을 인지한 듯 거의 동시에 스르륵 자동으로 떨어져 내렸다.


태초에 입력된 유전자의 지침대로 물속에 숨어있어야 살 수 있다는 본능적인 생존전략일 게다.


마치 문어의 빨판처럼 바위면에 딱 압착돼 있어서 떼내려면 손톱 끝에 힘을 줘야 하는데 경계신호가 감지되는 순간, 물속으로 잽싸게 낙하하는 보말.


막다른 벼랑이다 싶으면 바다로 몸을 날려야만 살 수 있다는 난해한 이치를 깨친 보말이 신통스럽다.


한번 먹을 양만큼 알 굵은 보말만 적당히 취한 다음 자갈밭으로 나와 슬슬 탐석에 들어갔다.


아마추어이기도 하지만 마음 비우지 않으면 형·질·색을 갖춘 산수경석이나 문양석이 눈에 띌 리 만무다.


해변 따라 무수히 많이도 널려있는 둥글둥글 닳은 돌들, 그럴싸해 취했다가 슬그머니 내려놓기만 반복하다 돌아왔다.


집에 와 보말을 씻어 소금물에 해감시킨 뒤 끓이니 집안 가득 바다 내음이 번졌다.


캘리 사막에 살면서도 채마밭 일궈 온갖 푸성귀로 초록정원 분위기 내가며 청정채소 맛보는 즐거움 누렸던 터다.


땡볕에서 땅 일궈 거름흙 사다 두툼히 뿌려둔 다음, 씨 묻고 싹 틔워 날마다 풀 뽑으며 밭에 붙어살다 보니 인디언 할맘 같았던 나.


그러면서 나날을 행복감 속에서 도원경 노닐었노라 하면, 취미 하고는 촌스럽기도 하다 어이없어할지 모른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 일이 너무도 좋았기에 마치 흥겨운 놀이처럼 즐긴다.


천상 촌사람다이 아마 얼마간은 더 바다에 나가 갯마을 할맘으로 싱긋거리며 지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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