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린이 대공원에 어린 추억

by 무량화


부산 어린이 대공원은 성지곡 수원지(聖知谷水源池)로도 불린다.

근대 상수도 시설의 효시로 인정돼 국가등록문화재 제376호로 지정된 성지곡 수원지.

이는 낙동강 상수도 시설이 들어서기 전 부산 시민 식수원이었다.

애초엔 일본인 거류지에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해 1909년에 콘크리트로 준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상수도 시설이다.

신라시대 성지(聖知)라는 지관이 팔도 명당을 찾아다녔다.

그가 백양산과 금정산 가슴골인 이 골짜기에 명산 표식을 하며 성지곡이란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미국 이민을 가기 전에도 이곳을 찾았는데 이유는 한국 자유총연맹 부산지부에서 필수적으로 받아야 하는 반공교육 때문이었다.

지금도 필수 과정인지 모르겠으나 당시는 몇 시간의 반공교육을 받은 다음 확인 도장을 여권에 받아야 출국이 가능했다.




84년 대구에서 부산으로 이사를 왔다.


깡추위와 찜통더위로 소문난 대구를 떠나 바다가 있는 부산에 오니 온화한 해양성 기후가 너무도 맘에 들었다.


노상 부산찬가를 부르다시피 하며 십오 년 여를 사는 동안 문단 말석에 이름을 올렸으며 작품집도 상재할 수 있었다.

그즈음,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가족나들이 삼아 몇 차례 성지곡을 찾았더랬다.

아이들이 좋아라 하는 어린이대공원과 이웃한 동물원이 그 안에 있어서였다.

이 자리에 위치한 어린이대공원은 서울 어린이대공원보다 2년 먼저인 1972년에 개장했다.

동네마다 놀이터가 생긴 지금은 굳이 놀이동산을 찾지도 않는다.

하지만, 당시야 아이들 놀이기구가 변변치 않아 여기나 가야 신나게 놀 수 있었다.

그에 더해 부산에서 가장 큰 동물원까지 있어서 구경거리도 많았던 곳이 여기다.

한번은 공작새가 꽁지깃 활짝 펴고 부채춤을 추는 정오 무렵 동물원에 갔었다.

그들이 펼친 한바탕의 맵씨자랑이 끝나자 여기저기 깃털이 떨어져 있기에 청록색 무늬 우아한 깃털 몇 개를 집어 들었다.

유러피안 모자 장식으로도 쓰이고 웨딩 부케에도 사용되는 공작 깃털이라 마른 꽃과 데코 하면 잘 어울릴 거 같았다.

그러나 깃털을 자세히 살펴보다가 깜짝 놀라서 후다닥 내던지고는 옷소매며 앞자락까지 훌훌 털어냈다.

언뜻 눈에 안 띌 만큼 아주 작은 이와 서캐들이 공작 깃털 새새에 달라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많던 동물을 품고 있던 동물원도 시설이 낙후되며 적자로 운영이 어려워져 버렸다.

여러 차례 사업처가 바뀌는 등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문을 닫았다 한다.

성지곡 끄트머리에 옹색하게 남은 놀이터만이 겨우 어린이대공원의 자취를 전해주고 있을 따름이었다.

다만 전과 달리 수원지 오르는 언덕길을 덱으로 잘 다듬어 놓아 인근 주민들의 건강을 위한 산림욕장 겸 조깅터로 각광받고 있었다.

현재는 수원지 역할보다는 숲 속 호수로 하루 종일 백양산 산 그림자와 물오리를 안고 지낸다.


삼나무 소나무 편백나무 굴피나무 등 울창한 숲 거느린 호젓한 산책길을 열어놓은 성지곡.


덱을 걸어가는데 아낙 둘이 옥천 약수터로 찻물을 뜨러 간다면서 한갓지게 담소 나누며 물통을 끌고 앞서 갔다.


수원지를 중심으로 공원을 한 바퀴 돌려면 2.4㎞에 달한다는데 오후 잠시 걸을만한 마침맞은 거리였다.


올 들어 처음으로 얼음 언 물을 여기서 본 셈인데 저수지 곳곳이 지난 한파로 하얗게 얼어있었고 물가 오리 떼가 제법 시끄러웠다.


거의 눈이 오지 않고 날씨가 맵지 않은 부산 날씨라 오랜만에 본 얼음도 반가웠다.



도중에 헌 7 학병 6·25 참전 기념비와 박재혁 의사 동상이 늠름한 기상으로 서있었다.


육이오 전란으로 국가가 위험에 빠지자 부산에서 학생 신분으로 1661명이 전쟁에 자진 참전하여 훌륭한 전과를 올렸으나 다수가 숭고하게 전사했다고.


박재혁 의사는 하시모토 슈헤이 부산 경찰서장에게 폭탄을 투척하여 폭사시키고 거사 후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아 대구형무소에 수감 중 단식 옥사한 3대 독자다.

마찬가지로 공원 초입의 부산 항일학생의거 기념탑이 잠시 옷깃 가다듬게 했다.


지금으로부터 71년 전인 일제강점기 때 동래고등보통학교와 제2공립상업학교 학생들이 벌인 항일 운동을 기리는 비라고 한다.


오늘날 젊은 청년들 그런 정의로운 혈기와 결기, 과연 있는지 모르겠다.

여기에 뜬금없이 웬 사명대사 동상? 했는데
까닭이 있었다.


1602년 2월 선조에 의해 일본과의 외교강화사절에 임명되었다.


그해 8월 부산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가 임진왜란 때 잡혀간 3천여 명의 동포를 데리고 부산항으로 귀국한 일을 기념하기 위함이다. 문득 이는 숙연감!

부산진 구민을 비롯 부산 시민들의 산림욕장으로, 산책지로, 휴식공간으로, 소중히 자리매김된 이곳 성지곡.

도심 속의 자연공원이자 여기저기 연결된 산행길이 열려있어 하루 종일 등산객과 트레킹객들 이용 인구가 꽤 많다고 한다.


운동화 차림이 아니라서 산꼭대기에 있는 어린이회관 분홍 건물까지는 올라가지 않고 수원지만 빙 둘러보고 언덕을 내려왔다.​



성지곡 수원지 위치: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새싹로 295,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43​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