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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pr 11. 2024

미션 돌로레스-슬픈 성모마리아-

샌프란 발상지

샌프란시스코는 두 번째 발걸음이다.

이십 년도 더 전에 주마간산 격의 서부관광객으로 눈도장만 찍었던 곳이다.

당시 반나절이 할애된 패키지여행 공식대로 일단 금문교 들른 거야 그렇다 쳐도 금쪽같은 시간에 알카트래즈나 차이나타운이 왜 필수 코스였던지 고개 갸우뚱~   

암튼 이번, 샌프란시스코 여행은 갑작스레 이뤄졌다. 그것도 뜻밖에.


대장정이나 진배없는 대륙횡단을 감행한 이사 와중의 경황없는 일정에 예기치 않은 차질로 인한 공백기 덕이라면 덕.


일주일 잡은 이삿짐 운송이 콜로라도 지역의 눈사태로 일주 지연되며 어정쩡한 시간이 생기는 바람에 그 짬을 활용, 뜻밖의 특혜를 누릴 수 있었다.

마침 샌프란에 파견근무 중인 조카의 초대로 조카집에서 며칠 머물며 평소 둘러보고 싶던 여러 장소들을 보물찾기 하듯 찾아다녔다.

무엇보다 오래 남을 기억은 미션 방문으로 그날 흔치 않은 여행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었다.



미션 돌로레스를 찾던 날은  해가 간간 내비치긴 했지만 그리 화창한 일기는 아니었다.

바람도 거센 데다 잿빛 구름장이 바삐 몰려다니며 빗줄기를 마구 흩뿌려대기도 하는 변덕스러운 날씨였다.

그래서였을까.

오래전 영화, 개기일식이 일어나던 날 벌어진 음산한 영상이 돌연 떠올랐다.

단지 미션의 명칭인 돌로레스란 이름으로 인한 연상작용의 일환이기도 하리라.

영화 <돌로레스 크레이븐>이 언뜻 생각났던 것은 순전히 눅눅한 비 때문이었으니까.

아니 그보다도 돌로레스라는 이름이 원래 이 지역 인근에 있는 '슬픈 성모마리아의 호수'에서 따왔다는 설에서 연유한 까닭일지도 모른다.

 영화 속의 그녀 이름 돌로레스가 혹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알길 없으나
돌로레스 그녀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불행하고도 가슴 아픈 어머니 상이 아니던가.

그녀뿐이랴,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자식 앞에 선 무한정 약하디 약한 데다, 어쩌다 괜히 고해에 내보냈다 싶어 짠해지기만 할 뿐이니.



오래 전인 1769년 여름이었다.

당시 스페인의 군주로부터 신대륙인 캘리포니아 개척의 명을 받고 배 한 척이 출항한다.


군사령관 포톨라와 가톨릭 로마교회가 신세계 선교의 적임자로 선발한 세라 신부는 그렇게 대서양을 건넌다.

그때 나이 쉰다섯 인 데다 한쪽 다리마저 고질로 불편했던 세라 신부는 어깨에 받들고 온 십자가를 낯선 대지에 깊숙하게 박는다.

그렇게 시작되는 미션의 이야기는 21번째까지 계속되는데...


이번에 찾은 Mission San Francisco de Asis 또 하나의 이름인 Dolores Mission.

캘리포니아 미션 중 여섯 번째로 세워진 미션으로 비교적 초창기인 1776년에 건립되었으며 바로 그해 독립선언서가 작성되었으니 미국 역사와 궤를 함께 하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지칭되는 유서 깊은 이곳.

1906년도 대지진으로 샌프란시스코의 모든 시설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는데 반해 아무런 손상 없이 견뎌냈다는데.

이는 나무와 벽돌로 쌓아 올린 1미터가 넘는 단단하고 두터운 벽이 비결인 셈이라고.

지금도 그 덕에 원형 그대로의 단아하고 소박한 모습을 보여준다.

큰 길가에 나앉았으나 눈여겨 일부러 찾지 않는 다음엔 좀처럼 자취 드러내지 않는, 말하자면 전혀 튀지 않는 검박한 미션이 돌로레스다.    



채플에 들어서니 원주민들이 그린 천장 그림이 어둑신하게 내려다보는 내부는 조명도 희미했다.

섬세한 바로크 제단과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마저 침침하게 묻혀버린다.

입구에 세 개의 종이 달린 종각도 나지막하니 조촐한 돌로레스는 붉은 기와를 구워 지붕을 얹은 스페인 전통양식의 자그마한 건축물이다.

여타 다른 미션들과 달리 돌로레스는
출입구 문설주 위 종각의 종을 직접 당겨 종소리를 들을 수 있게 배려했다.  

댕그랑댕그랑~ 늘어진 밧줄을 붙잡고서 마냥 당겨보고 싶었다.  

바로 곁에 선 화려하고 웅장한 자태의 백색 건물 바실리카 성당은 좀 생뚱맞다 싶었는데 연유를 들어보니 그럴싸.


서부의 골드러시로 샌프란시스코에 뭇사람들이 몰려들자 비좁은 돌로레스를 대신하고자 1918년 채플 옆에 새로이 지은 바실리카 성당이다.


지난 1991년 미션 돌로레스 건립 200주년을 맞아 문을 연 박물관에는
스페인 및 멕시코에서 가져온 미사 제의 용품들과 갖가지 제구들이 빛바랜 채로 우리를 맞아준다.

건립 당시 마을 사람들이 직접 빚어 사용했던 벽돌 일부도 실물 그대로 관람할 수가 있다.

또한 당시 이 터에 살던 인디언 부족의 움집과 옷가지, 소소한 생활 집기 등이 보존 전시되어 있다.

초기의 신대륙 개척 당시만 해도 정복보다는 선교사들의 원주민 교화 목적이 최우선이었다.

잔혹한 약탈과 문명 파괴는 현지의 황금에 눈이 어두워지면서부터다.

흔히 말하길, 군대가 종교와 짝을 이뤄 동시에 신대륙으로 진출했다고 하나 그건 제국시대적 얘기.


영화 <미션>에서도 그러하고 지금 역시  척박한 아프리카나 몽골에 들어가는 선교사들 사명감은 그 시대와는 전혀 다르다.

'땅끝까지 복음을 선포'하려는 순수한 종교적 열망으로 선교활동들을 한다.  


하긴 그때도 선교사들은 비교적 평화로운 방법으로 가톨릭 수도원 울타리 안에다 원주민들과의 공동체 마을을 일구었다.


그다음 서구의 앞선 기계 문물을 전수하며 신앙을 심었으니 복음의 첫 씨앗을 뿌린 이 자리가 바로 명실상부한 샌프란시스코의 발상지가 된 셈이다.

따라서 실제로 캘리포니아 역사는 미션과 함께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같이 1700년대 샌프란시스코가 처음 태동할 때의 옛 흔적들을 만나볼 수 있는
역사교육 측면의 소중한 유적 탐방 장소이기도 한 이곳.

 

박물관 뒤편 후원에 은자처럼 숨은 미션 묘지에는 묘비가 숱하게 기립해 있다.

푸른 눈의 유럽 선교사들은 물론 1804년, 1826년 두 차례나 마을을 휩쓴 홍역으로 희생된 수많은 원주민과 이주민들의 묘역이다.

또한 멕시코 점령 당시의 캘리포니아 지도자라는 돈 루이스 안토니오며 샌프란시스코의 첫 시장인 돈 프란시스코 등의 처음 개척자들도 거기 누워있다.


묘비도 다 그만그만하니 죽음 앞엔 모두가 평등해졌다.  

너나없이 언젠가는 가야 하는 길임이 애틋하고 일면 고마우나, 세월의 이끼 더께로 낀 채 적요 속에 묵묵한 석비를 지켜보자니 어쩐지 처연스럽다.

후원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어느새 푸르고도 맑게 개어있고 그 아래 문득 위엄 어린 옆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바실리카의 우아한 백색 자태.

갑자기 타임머신에서 내린 듯 시간개념이 뒤엉켜 버린다.

오늘은 어느 적 지금이며 여기 서있는 나는 또 언제 적 누구인가.  

한창 제철을 맞아 향기로운 장미 그 화려함이
묘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비대칭으로 보임은 나만의 수수로운 소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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