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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pr 12. 2024

미션 샌 루이스 레이-등꽃 향기

미션의 왕


미션 샌 루이스레이에 닿은 것은 등꽃 향그러운 오후였다.

주렴처럼 늘어진 연보랏빛 꽃송이들이 등꽃의 꽃말대로 나를 '환영'하며 맞아주는 기분이 들었다.

꽃그늘 아래 서니 한나절 봄꿈과도 같았던 범어사의 환상적인 등운곡이 떠오르고 경주 현곡이 생각났다.

현곡에 가면 수령이 수백 년은 됨직한 천연기념물 등나무가 사연을 안고 서있다.

신라시대 서라벌에 어떤 자매가 하필이면 한 낭도를 똑같이 애모했다고 한다.

전쟁터에 나간 화랑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낙담한 자매는 근처 연못에 함께 투신하여 등나무 두 그루로 서게 된다.

전사한 줄 알았던 낭도가 살아 돌아와 그 사연을 듣고는 그 역시 못 속으로 스러졌는데 그 자리에 팽나무가 자라났다.

 우람한 팽나무를 사이에 두고 실제 등나무는 서로 얼크러 설크러져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나눈다는데..

이렇듯 하늘 이치를 거슬러서인지 등나무만은 여느 덩굴식물과 달리 지금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감고 올라간다던가.

등꽃에 나른히 취해 미션 앞에서 생뚱스레 전설 따라 삼천리를 읊어대다가 아차.....

본관 정문 위에 높직이 선 미션의 수호성인인 Louis IX의 동상


프랑스 왕 루이 9세를 기리기 위한 이 미션은  페르민 라수엔 (Fermin Lasuen) 선교사가 건립하였다고 한다.

라수엔의 뒤를 이은 안토니오 페이리 신부가 부임하며 미션은 절정기를 맞게 되는데, 34년간에 걸친 재임 동안 최고의 번성기를 누렸다.

캘리포니아 미션 중에서 가장 방대한 규모로, 무려  2만 에이커의 대지에 교회 부속 구조물만도 6 에이커에 달했다니 능히 한부락을 일군 셈.

당시 원주민 개종자만도 3천 명을 헤아렸을 정도로 지역 인구가 가장 많았던 미션이다.

  

오우? 스페인 국왕도 아닌 프랑스 왕인 루이 9세를 기린 수도원임이 의아하나, 그 당시 유럽국가는 왕족끼리 혼사로 맺어지는 게 예사인 데다 프랑스 역시 정통 가톨릭국가다.


모든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며 그리스도적 사랑으로 나라를 다스렸기에 성왕으로 불렸으며 그의 치하에서 프랑스는 유례없는 번영을 누렸다고 한다.

십자군 전쟁에 직접 참여한 루이 9세는 임종 시에 “제 영혼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라면서 숨을 거두었다 할 정도다.

훗날 루이 9세는 프랑스 왕 중에서 유일하게 시성(諡聖) 된 왕으로 추앙받는다.

미션 샌 루이스 레이가 ‘미션의 왕(King of the missions)’으로 불리는 연유는 위 두 가지를 아우른 까닭에서 이리라.

이 미션의 정식 명칭은 Mission San Luis Rey de Francia.


캘리포니아에 있는 스물한 개의 미션 중 1798년에 열여덟 번째로 건립됐으니 후기 미션에 속한다.


미션의 거리는, 서로 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말을 타고 하루걸이로 갈 수 있는 간격을 두라는 원칙에 따라 적정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미션 샌루이스레이는 세라 신부가 최초로 만든 샌디에이고 미션과 미션의 보석이라 불리는 미션 샌후안 캐피스트라노의 중간 지점에 자리를 잡았다.


오션사이드 시에 위치한 이 미션은 멀리에서도 기다랗고 높은 건물의 새하얀 벽부터 눈에 먼저 띄었다.

청푸른 창공 아래 드러난 백색 수도원 앞에는 어디나 그러하듯 이끼 낀 분수대와 해묵은 후추나무가 서있었다.


‘미션의 왕’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을 만큼 미션 규모도 대단하지만 한 시절 크게 번성했던 역사를 반증해 주는 벽돌장들이 들판에 널려있었다.


그중 하나가 라벤데리아(lavanderia)로 불리는 공동세탁장의 흔적들.


미션 앞에 흐르는 계곡 물을 이용해서 저지대에다 벽돌로 물웅덩이를 만들어  공동세탁장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인디언 여인들은 빨래도 하고 목욕을 했으며 아이들을 청결하게 씻겼다.


하수는 필터장치로 정수되게 한 다음 미션에서 경작하는 채소밭이며 과수원으로 흐르게 하였다고.


훤히 들여다보이는 수도원 중정까지 개방이 되어있지는 않았지만 예배실인 교회 내부와

잔디 푸르른 세미트리는 열려있었다.


수도원은 스페인 풍과 바로크 스타일이 혼재된 단정하면서도 위엄 어린 건축양식으로 꾸며졌다.


높은 천장에 자연채광창을 두었고 벽과 기둥에 아라베스크 문양을 그려 넣었으며 바닥재는 테라코타 타일을 깔았다.


벽감 하나하나 정성스러운 손길로 섬세하게 만들어 성인상을 세우고 아라베스크 무늬 단청도 곱게 입힌 제대.

 

숨 낮춰 절로 두 손 모으게 만드는 경건한 분위기에 압도당했다기보다는 그저 그냥 고개 숙이고 간절한 염원 뇌이게 되었다.


"Hodie Mihi Cras Tibi" , 수도원 후원에 마련된 세미트리마다 쓰여있는 문구를 되새기며 등꽃향 흐르는 미션을 물러났다.

성체 거동 때 성체 현시에 사용되는 전례용구인 성광/채플 앞 성수대

샌디에이고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수도원 내의  Sematary-오늘은 내가 내일은 네가/세라 신부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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