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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pr 12. 2024

소쇄원(瀟灑園), 선비 걸음으로


취향대로 담담한 정자를 마련했다.


소쇄원의 제월당 (霽月堂)을 염두에 두고 지은 집이다.


"시냇물 서늘히 벽오동 아래로 흐르니...."


송강이 쓴 '소쇄원 초정(草亭)에 부치는 시'를 공사 기간 내내 음미했다.


더불어 자연의 소리를 거기 깃들게 하였다.


-1999년 졸작 空樓 중에서-



그 소쇄원을 비로소 다녀왔다.


사 반세기 만이다..


신록 깊고 대기 투명한 소쇄원 초입 대숲 언덕을 오르는데 둥둥둥 북을 치듯 심장의 동계 자못 심했다.


걸음새 땅에 닿을 새도 없이 바람결처럼 가벼이 치달려 단숨에 소쇄원 원림(園林)에 이르렀다.


숲에서 은은히 뻐꾸기 소리 들리는 오월이었다.


환몽이듯 흐르는 숲 안개 사이로 드러나는 조촐한 자태의 누정(樓亭).


반가움에 울컥, 감회 벅차오르는 바람에 심곡 슬몃 젖어왔다.


벼르고 벼르길 어언 몇 십 년째, 그리던 님 드디어 만났으니 왜 아니 그러하랴.


님은 오월 빗줄기로 정갈하게 소세하고 청량한 얼굴로 반겨주었다. 아주 고즈넉하게.


산록 암반 사이로 흘러내리는 작은 계곡 건너 배롱나무 오동나무 등덩굴에 창포꽃 사이

몇 단의 축대 올린 간결한 공간에 단아하게 자리한 서너 칸 누옥.


소쇄원의 사랑채와 같은 광풍각(光風閣)과 안채 격인 제월당(霽月堂),


좁고 긴 마당 위로 기단 쌓아 조붓한 토방,


거기 정좌한 제월당은 구들방과 대청마루 가지런히 놓여있다.


소쇄원(瀟灑園)의 한자이름을 풀어쓰자면 물 맑고 깊을 소(瀟)에 깨끗할 쇄(灑)라는 음을 갖는 바, 물이 맑고 시원하며 깨끗한 원림이라는 뜻이다.


가공하거나 꾸밈없이 본디 그대로의 풍치를 살린 자연정원인 원림.


그렇듯 결 맑은 조선의 선비가 거닐었던 뜰답게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럽고도 단촐한 풍광을 지닌 소쇄원이다.


소쇄원을 만든 양산보는 일찍이 조광조를 만나 그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스승인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유배당한 후 사사된다.


그 충격으로 현세적인 벼슬길의 무상함을 깨닫고 향리인 담양에 내려와 은거한 양산보.


대봉대(待鳳臺)는 봉황을 기다리는 곳이라니 귀한 손님 오기를 기대하는 그의 마음이 읽힌다.


가사문학의 중심지로 선비 문인들이 풍광을 관상하며 시적 감흥을 즐긴 장소이자

기개 푸른 이상을 토로하며 담론 나누던 정신문화의 산실이었던 소쇄원이다.


한 나라를 개혁하고자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자 입신양명의 꿈을 접고 자연 속으로 들어와 1530년 경에 소쇄원을 꾸며놓고 은둔하며 처사(處士)의 삶을 살았던 양산보.


소쇄원에서 정철, 고경명, 기대승, 송순 등 당대 명사들과 교류하며 지내던 양산보는

"이 동산을 남에게 팔거나 양도하지 말 것이며 어리석은 후손에게 물려주지 말 것이며, 후손 어느 한 사람의 소유가 되지 않도록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정유재란 때 왜군이 담양으로 쳐들어와 소쇄원을 불 질러버리자 양산보의 손자, 증손자가 소쇄원을 하나씩 복구해 나갔다.


이때 1548년에 쓴 '소쇄원 48 영'이라는 김인후의 시와 1775년에 만든 '소쇄원도'라는 판화를 참고로 하여 거의 원래대로 복원시켰다고.


한국 민간 정원의 원형이자 고품격 운치로 사랑받는 명승 제40호인 소쇄원은

오백여 년 동안 한적한 숲에 은거한 채 고담스러운 분위기 자체로 뭇 시심 피어나게 해 준다.


일행이 기다리고 있어 급하게 다녀와야 했던 그곳,


다음엔 넉넉한 여유를 두고 소쇄원을 찾아

선비 걸음으로 천천히 원림을 한나절쯤 소요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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