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하차피 바람을 만나러

바람의 언덕

바람 타지 않는 생이 과연 있기나 하던가.
누군들 바람 부는 언덕에 망연히 서있어 본 적 없을까.

속 갑갑한 날은 테하차피를 찾을 일이다.
인간사 실타래 뒤꼬여 짜증 나고 열불 나는 날.
세상사 돌아가는 이치 이건 아닌데 싶게 답답스러운 날.

바람언덕에 서면 사정없이 난타하는 기류가
비강을 훑고 오장육부를 한달음에 관통한다.
아! 이다지도 후련한 카타르시스가 달리 또 있을까! 바람 거친 날은 모름지기 테하차피를 찾을 일이다.

어떤 소설 제목 하나가 떠오르자 불현듯 테하차피에 가고 싶어졌다.

인디언 말로 '바람의 언덕'이란 테하차피는 LA에서 북쪽으로 두 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오래전엔 인디언들이 모여 살던 마을, 특히 세도나처럼 기가 센(자기장이 강한) 지역으로 인디언들의 성지였다는 그곳.

모하비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자리한 태고사란 절은 어떤 모습 일까도 몹시 궁금했다.

캘리포니아 컨 카운티에 자리한 태고사를 찾아 일요일 오전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

조갑상의 소설 「테하차피의 달」은 미국 모하비 사막의 테하차피에 위치한 태고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소설의 배경인 태고사는 테하차피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예일대 출신인 미국인 무량 스님이 한국 목수 두 명과 함께 철저한 한국 전통사찰을 짓는 방식으로 9년여 만에 완공을 보았다는 절이다.

얼치기 사기꾼 도목수로 인해 우여곡절도 많이 겪었다는데도 불구하고  단청 입힌 대웅전과 종각이 산자락에 두둥실 솟아있단다.

테하차피의 달 작가는 태고사에 묵언수행을 하러 모인 네 남자의 사연을 들려준다.

1박 2일 동안의 묵언수행과 법회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아 그곳에 모인 네 사람의 시점을 교차, 종합하면서 이민의 문제와 삶의 다양한 국면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더 나은 삶을 꿈꾸며 고국을 등졌지만 정착하지 못하고 벼랑 끝에 내몰린 이민자들.

그는 벼랑에 내몰린 이들의 삶을 병치해서 보여줌으로써 고립된 삶 또한 개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인디언의 聖地로 알려진 테하차피는 이로써 ‘다시 시작하는 끝’을 상징하게 되며 조락과 갱생, 시작과 끝을 반복하는 인생의 국면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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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은 태양광과 함께 풍력발전의 최적지로 각광받는 지역이다.
쓸모없이 황무지로 널려있는 드넓은 땅 도처에 태양광 집열판 시설과 풍력발전 시설물이 들어서 있다.

모하비사막으로 진입, 황량한 풍경 속으로 곧장 치달리다 보면 왼편으로 질서 정연하게 서있는 철제 풍차 행렬의 위용과 대면하게 된다.

주변 산기슭마다 하얀 바람개비가 떼 지어 돌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차창을 열면 큰길에서도 윙윙 날개도는 소리가 이명처럼 들려올 것 같다.

곧이어 나타날 지역은, 인디언들이 '바람의 언덕'이라 불렀던 테하차피다.

한여름 태양이 뜨겁게 내리쪼이는 황야를 달리고 달려 테하차피 초입 둔덕에 들어서자
벌써 세찬 바람결이 느껴졌다.

한낮임에도 어딘가 스산하니 황량한 풍경, 폭풍의 언덕만큼이나 메마른 산야만이 한참토록 이어졌다.

풍력개발단지답게 산기슭마다 하얀 바람개비가 떼 지어 돌고 있었다.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바람을 이용해 돛단배를 띄웠고 풍차를 돌렸다.

지금은 과학의 산물인 풍력발전시설을 세워 사철 부는 바람을 전기로 바꿔 쓴다.

이곳은 미국 최대의 풍력센터로 Alta Wind Energy Center에서 생산된 전력은 에디슨사에 전량 공급된다.

헌데 뜻밖에도 여기서 우리의 첨단 기술력을 만났다.

미국 캘리포니아 최대 전력회사인 SCE가 추진하는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인 Monolith 변전소에 리튬이온 배터리를 공급한단다.

ESS는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핵심 장치라고 한다.

독일에 광부를 파견했던 우리가 이젠 세계와 겨누는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하게 됐다는 게 마음 뿌듯해진다.

크기도 날개 모양도 제각각인 바람개비들의 향연이 펼쳐진 테하차피 초입 둔덕에 들어서자마자 벌써 기갈 센 바람의 기운이 전류처럼 퍼진다.

울렁증이 일 정도로 어지러이 마냥 돌고 도는 바람개비들.

바람길은 사통팔달이라 했던가. 바람의 세찬 저항에 문을 열 수조차 없어 도로 닫고 만다.

도무지 밖에 나설 엄두가 안 난다. 주눅 든 채 우두커니 앉아서 밖을 내다만 본다.  

광폭하게 휩쓸고 다니다 더러는 회오리로 맴도는 강풍에 정신없이 돌고 도는 바람개비들.

빙글빙글 회전하는 놀이기구에 탄 것처럼 메스꺼움이 일며 어지러워진다.

차창을 천천히 내린다, 떠다밀듯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 바람. 바람.

후~~ 흠~ 깊이 심호흡을 해본다. 멀미감은 물론 십 년 묵은 체증 다 가시고 속이 뻥 뚫린 듯 션하다.

그새 태고사는 까맣게 잊고 바람의 언덕에 매료되어 차창을 내린 채 윙윙대는 바람 소리와 바람 내음에 흠씬 빠져버렸다.

바람의 냄새는 비릿하니 날 것의 맛이다, 마치 목젖으로 넘어가는 코피 느낌하고 비슷해 불현듯 서늘히 한기가 돋는다.

인적 하나 없는 장소, 떠돌던 인디언 유령 슬그머니  스며들기라도 하는 양 어서 내려가자며 채근을 하기에 이른다.

오후 내내 바람맞은 여자처럼 산 언저리 길 따라 차를 탄 채 배회하다가 척박한 골짜기를 빠져나올 무렵쯤엔 어느새 평원 저만치 석양빛이 스며들었다.

암튼 이번엔 기회가 닿지 않았으나 언젠가는 꼭 테하차피에 있는 태고사를 다녀올 작정이다.

그랬다.

"바람을 만난다는 건

내가 꽃잎이 되고 꽃잎이 내가 되는 상상과도 같이

땡그랑땡그랑 지느러미를 흔드는 풍경 속의 바다처럼

내가 바람이 되고 바람이 다시 물결이 되는 그런 시안(詩眼) 속의

작은 떨림 같은 것일 게다 "

정원 시인의 시 일부 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