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야 겨우 하늘이 푸르다.
옅은 구름층 사이로 일출도 볼 수 있었다.
모처럼 한라산 새하얀 백록담도 웅자 드러냈다.
그끄저께인 7일부터 심하게 휘몰아치는 눈보라로 3백여 편의 비행기가 속수무책 제주공항에 묶여버렸다.
그제 어제도 일기는 불순했다.
엄청난 눈도 눈이지만 최대순간풍속 37m에 달하는 태풍급 강풍이 미친 듯 달겨들었으니 어쩌겠는가.
도리 없었다.
강추위 속에 묶인 2만여 명이 속절없이 제주에 억류됐다.
일반적인 날씨 패턴을 벗어난 불시의 기상이변 상황이야 어디 이번뿐인가.
항공편 무더기 결항으로 북새통이던 제주공항도 비로소 운행이 재개됐다.
임시편도 급히 투입된 모양이다
KAC 상황판도 속속 탑승 중, 수속 중이 뜬다.
공항 혹은 항공사 측 사정상 지연도 더러 보인다.
외떨어진 섬.
왜 한때는 유배처였겠는가.
바닷길 하늘길 막히면 꼼짝없이 고립되는 섬.
며칠째 폭설과 강풍에 묶여 비행기도 여객선도 요지부동이었다,
오지 중의 오지, 적막강산이 따로 없다.
최고의 관광지인 신비의 섬 제주가 이처럼 때로는 겁먹게 한다.
재작년 겨울 미국에 갈 적 일이다.
그땐 겨울비가 며칠째 엄청 줄기차게 내렸다.
만약 기온이 급강하해 비가 눈으로 변한다면?
혹시 모르니 서울에 가서 대기하기로 했다.
김포행 항공권을 급히 앞당겨 서울로 갔다.
원래는 미국까지 곧장 스트레이트로 연결시킨 비행기 표였다.
아니나 다를까, 제주에 엄청난 폭설이 내려 그날 비행기는 뜨지 못했다.
생각사록 아찔했다.
위약금 물고 표를 바꾸기 백번 잘했지.
하마터면 제 때 미국행 비행기에 탈 수 없을 뻔했다.
살다 보니 날씨로 인한 극한체험을 몇 번 하긴 했다.
극지탐험을 한 것도 아니면서 이쯤이야 아이들 엄살에 속하겠지만.
미 동북부 한파는 기세 대단했다.
뉴저지의 쨍하도록 새파란 겨울은 오지게도 추워 혹독할 정도였으며 그 통에 귓바퀴 동상도 걸린 적 있었다.
햇살 좋은 오월 카미노를 걸으면서다.
피레네를 넘다가 저체온증으로 손발이 마비되는 비상상황 상태도 만들었다.
지난여름의 폭염에 따른 혹서 외에도 기상변화에 따른 어려움을 당하면 별수 없이 겪으며 치러내야 한다.
집에서라면 에어컨을 켜거나 난방을 높이면 된다.
문제는 밖에서다.
그럼에도 엊그제 기어코 돌문화공원으로 눈 보러 갔다 왔다.
여전히 음산한 어제는 두문불출, 방에서 내리 세 편 영화만 봤다.
오늘 오후엔 혹사한 눈도 쉬게 할 겸 편백숲 푸른 사려니숲을 다녀올 참이다.
여전 천백도로와 오일육도로는 길이 닫겨있다.
당연히 눈꽃버스 운행도 중단됐다.
눈꽃버스 타면 삼십분 만에 설화 마주하련만 도로가 통제됐으니 방법이 없다.
지금도 오전이라 날씨 풀리지 않아 바깥공기 차디차다.
북창 너머 한라산 자락, 잠깐 창을 열고 사진에 담는데도 손끝 시립다.
현재 서귀포 외부 온도 3도, 한낮엔 5도란다.
심야엔 더러 영하 1도, 지금 서울은 영하 6도나 된다잖아.
그렇다면 아무리 할망이라도 과연 엄살이 심하긴 심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