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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노을 비낀 석불사 마애불

by 무량화


석불사 병풍암을 아주 오래전에 다녀온 적이 있다.

오십 대인 맏이가 중학생이고 딸내미가 초등 일 학년으로 아직 어렸을 때다.

삼월임에도 금정산에 눈이 쌓였다는 뉴스를 듣자 우리는 신이 나서 산행에 나섰다.

눈이 귀한 부산이니까.

비탈진 바위투성이 산길을 오른 것과 달리 금정산 꼭대기는 잡목과 잔디가 널펀펀하게 펼쳐져 있다.

정상에 이르니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미답의 설원이 눈부시게 이어졌다.

우리는 환호하며 두 팔 활짝 펴고 벌렁 누워서 머리통과 등판과 발로 눈 위에 전신사진을 찍었다.

새하얀 눈밭에서 사슴처럼 자유자재 뛰어놀다가 내친김에 석불사까지 가보기로 했다.

눈 깊이 쌓인 날씨가 늘 그러하듯 온화한 기온에다 쌩한 바람도 없어 봄기운이 느껴지는 오후였다.



금정 산정에서 그 생각이 떠올라 이정표를 보고 석불사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예전에는 산행하던 분이 길을 알려줘 아이들이 앞장서 내달렸는데 그때 눈길 푹푹 빠지며 지났던 산속 동네가 이제 보니 남문 마을.

그래, 손가락으로 가리켜준 저쪽 길이 바로 여기였어..... 신기하게도 머리보다 몸이 먼저 그 길을 기억해 냈다.

이제부터는 한참 내리막길을 가다가 만덕고개 보일 즈음 큰 골짜기 건너서 위로 꺾어 무진 올라가면 석불사에 닿게 된다.

몇 굽이 산길을 휘돌자 마침내 석불사 병풍암이 모습을 드러냈다.

금강공원에서 출발해 정상까지 두어 시간, 산정에서 석불사까지 한 시간 반 너머 걸렸으니 도합 네 시간 정도 걸었다.

까치집처럼 얹힌 종각이 먼저 보이고 또 한 굽이돌자 완만한 경사로 저만치 절문이 나타났다.

경내에 들어 곧장 대웅전에 인사 올리고는 칠성각 사잇길 뒤편의 이마 반듯하게 잘 생긴 바위로 향한다.

요세미티 터널 뷰에서 건너다 보이는 엘 캐피탄만큼의 웅자는 아니라도 그 못지않게 헌칠하고 호쾌한 화강암 덩이가 벽공에 서있다.



조붓한 공간에 병풍처럼 둘러선 암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집채보다 더 큰 거대한 자연석에 새겨진 마애불상, 저절로 두 손 모아지며 고개 숙이게 만든다.

전면의 자애로운 불상은 천수천안으로 중생사 살피는 관세음보살이고 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도 모셨다.

뱀의 목을 바짝 틀어쥔 사천왕상에 청룡도를 꼬나 쥔 대장군 같은 사천왕 옆에는 근엄한 표정으로 비파를 켜는 석불도 시립 했다.

암벽에 스물아홉 분의 불상이 새겨져 있으니 국내 최대 마애불 군(群)을 뫼신 이곳 석불사.

일제 강점기인 1930년 창건됐기에 백 년 미만이면 역사는 일천한 편이다.

창건주인 조일현 스님이 주석하는 동안 이 모든 불상을 조각했다는 게 신비, 나아가 기적에 가깝다.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는 불교의 여섯 가지 수행 덕목인 육바라밀이다.


보시(布施)ㆍ지계(持戒)ㆍ인욕(忍辱)ㆍ정진(精進)ㆍ선정(禪定)ㆍ지혜(智慧) 바라밀 가운데 스님은 암벽에 부처님 새기며 오롯이 정진을 실천하였던가.

높이 40에서 20m가량 되는 직벽의 암석에 거대 불상을 그것도 깊이 돋을새김 했는데 높낮이가 매우 뚜렷하고 정교하다.

그런만치 정성과 공력과 시간이 훨씬 많이 듦은 물론이리라.

돌의 결을 따라 다뤄야 하고 때리는 망치질 정도에 따라 자칫 끌질 한치 빗나가면 허사, 전심 쏟아 정을 쪼며 수도정진했으리라.

위쪽으로 오를수록 바위 성질이 물러서인가, 사암 같은 암벽에 부처님 상 편안하고 16 나한 한결같이 동글동글 표정 유순해 보인다.

동굴 안에 모신 관음상을 지나 다리 후들거릴 정도로 가파르고 조붓한 돌층계를 올라간다.


맨 위까지 성심 어린 불조각 둘러선 독성각의 호랑이, 흔들리는 촛불에도 눈빛 형형했다.

칠성각에 내려와서는 잠시 발길이 멎는다.


예전에 아이들이 간식으로 가져온 사과 쪽을 올려놓았던 헌식돌이 있어서이다.


위엄 어린 바위 앞 정원 한편에, 새와 다람쥐를 위한 헌식돌조차 꼼꼼하게 다듬은 흔적 다사로워 한참을 지켜보게 했었지.

맞은편 백양산 자락에 어린 산노을.


석불사를 내려오다 보니 저녁해가 쟁반만큼 유달리 크게 보이며 낙동강 줄기에 낙조 황금빛으로 내쏟고 있었다. 2021


헌식돌 조차 공손히 다듬어 올린 석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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