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로 서귀포의 봄을 일깨우는 행사가 오전에 열렸다.
제26회 ‘시로 봄을 여는 서귀포’는 예향이자 법정 문화도시로서의 위상에 걸맞게 매년 개최되는 행사이다.
오전 열 시 반, 한국문협 서귀포지부 주최로 서귀포칠십리 시공원에서 문인 다수와 산책객들이 동참한 가운데 개최됐다.
장소는 칠십리 시공원 내 갤러리 스페이스:70 앞 야외 잔디마당으로, 다행스럽게도 바람결 잔잔해 추운 줄 몰랐다.
마침맞게, 운무에 싸인 백록담이 살짝살짝 보이는 날씨의 부조로 축제 자리는 더욱 아름차게 빛났다.
고즈넉이 매화 향기 스며든 시공원, 모처럼 개인 봄 하늘 아래서 시와 음악의 향연에 취해보았다.
다만 한가지 흠결이라면 봄마중 '시' 축제에 내빈 소개는 그렇다 쳐도 굳이 도의원 인사 등은 구태의연을 넘어 속물스럽지 않은지.
시를 아껴 보듬고 사는 이들이라면 모두가 귀한 내빈인 것을.
드림사운드의 오프닝 악기 연주에 이어 박인선(서귀포문협 회원)과 현기열의 성악 공연 '봄이 오는 길'로 막을 열었다.
정영자 문협 지부장은 "서귀포가 바로 ‘시’이고, 시인이고, 노래이다." 라고 인사말 가름했다.
이어 강중훈 시인의 취지문 낭독과 김용길 시인의 영춘시 낭송으로 시작된 시의 향연.
아름다운 이상향을 꿈꾸며 더해서 새봄을 맞는 기쁨까지 고루 잘 버무려진 이번 행사는 내용도 다채로웠다.
JDC 공모전에 선정된 전국문인 서귀포 탐방 참가자 37명이 축제에 함께 했던 것.
탐방단을 대표해 오정국 시인(한국시인협회)은 “2박 3일의 탐방일정 동안 제주 4.3 사건과 제주의 풍광을 돌아보며 제주인들은 상처와 자부심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고 대표인사를 남겼다.
일행 중 조명희 시인(한국문협 대전지부) 은 자작시 가파도를 낭독하며 이 행사의 ‘시 낭독 프로그램’에 함께했다.
식후 행사에서는 최희수 성악가의 '사랑, 참'을 비롯, 서귀포문협 소속인 조승훈 선생이 '봄날의 향기'로 행사가 마무리됐다.
암튼 아주아주 오래간만에 가져본 푸근하고 따스한 모임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몇 년 전 서귀포문협 식구가 되었으나 신춘행사는 처음 함께 한 자리다.
돌아온 탕자의 귀가처럼 꽤 오랜만에 돌아온 정신적 고향이랄까.
이십여 년을 노매드 되어 자유로이 떠돌다가 귀향해 모처럼 참석한 문학행사다.
다시금 정감 어린 예술세계로 회귀해, 나름 깊은 감회에 젖어들며 만감이 교차됐다.
칠십리 시공원 야외에서 진행된 두 시간여의 행사를 마치고 전국에서 방문한 문인단과 문협회원 전원과 한자리에서 식사를 했다.
서귀포에 와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이런저런 인연으로 안면을 튼 분들도 있고 초면인 분들이 많아 악수를 여러 번 나눴다.
특히 인터뷰를 통해 만난 팔순의 원로시인 강중훈 선생은 오랜만이라며 퍽 반가워하셨다.
삼월도 중순으로 향하는데 아직은 조춘이라 차운 바람결에 싸늘해진 손길이 좀 민망스러웠다.
작가의 산책길을 따라 돌아오는 내내 코끝에 감도는 매향, 벗이듯 따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