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한참 전 일이다.
딸내미가 아빠와 엄마 꺼라며 보약을 각각 지어왔다.
약을 달이려고 약제를 펴보니 정갈한 녹용이 첫눈에 띄었다.
보혈 강장작용을 하는 보약의 대표 격인 녹용이다.
얼른 내 약제를 펴봤다.
굵은 인삼은 들어있으나 아무리 뒤적여도 녹용은 쪼가리조차 없다.
딸내미한테 전화를 걸었다.
왜 내 약제엔 녹용이 안 들었냐고 따졌다.
아빠 체질은 인삼이 맞지 않고 엄마 체질은 녹용이 안 받으니 어쩔 수 없어, 답변은 간단했다.
별 걸 다 샘내요, 란 후렴구가 따랐다.
보약이라도 체질에 따라 한약재 처방은 서로 다르다는 걸 그때 분명히 알았다.
모든 체질의 사람에게 무리 없는 약제나 식재료가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예도 많은 걸로 안다.
개개인의 체질이 달라 같은 증상에 따른 처방이라도 들어가는 약제가 각기 다르다고 한다.
한의학에서 검사 및 문진과 동시에 체질 감별을 정확히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아무리 좋은 약, 훌륭한 음식도 내 체질에 맞아야 보약이 되고 보양식이 된다.
체질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거나 부작용이 따르는 경우도 있다.
체질을 파악하여 뭐든 적절하게 섭취해야 효과를 얻는다는 얘기다.
코로나19에 대해 WHO가 팬데믹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발원지 중국은 물론이고 한국과 이탈리아 이란 등지에 엄청난 피해를 준 전염병이 전 지구상으로 확 퍼졌다.
빠른 진단과 치료도 중요하나 적극적으로 방어한다는 측면에서 예방의학이 최우선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곧 면역력을 높여줘야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증상이 가볍게 지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즈음, 감염병 확산세에 따라 공포감이 증폭, 면역력 올리는 방법이나 건강식품들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규칙적인 운동으로 다져진 건강한 신체와 균형 잡힌 식사가 면역력을 높여 준다는 건 누구나 안다.
면역(免疫)이란 역병을 면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한창 면역에 민감한 시기라서 방치했던 비타민도 찾아 먹게 되고 자연스레 면역력 높이는 식품들에 눈길이 쏠린다.
메디컬푸드란 치료 효과가 있거나 건강에 도움이 되는 식품으로, 대부분이 몸속 면역세포들의 기능을 활성화시켜 면역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효과가 있다는 소문에 김장철도 아닌데 근자 생강 가격이 엄청 올랐다.
생강차 등 물을 자주 마시고 된장과 김치 같은 효소가 많은 음식을 섭취하라고도 조언한다
마늘의 알리신(Allicin), 양파의 퀘르세틴(quercetin), 강황의 커큐민(Curcumin)도 항균 및 항산화 작용을 통해 체내 면역을 높여준다는 보도에 자극받아 당연히 더 챙기게 된다.
싱싱한 풋마늘도 사 나르고 마트에 간 며늘에게 강황을 사 오라는 부탁도 그래서 하게 된 것.
매우 강력한 항염증, 항산화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식재료이자 약재료인 강황이다.
그 가루를 밥 지을 때마다 티스푼 하나씩 넣어 밥을 하니 냄새는 전혀 없고 산수유 꽃 빛깔이 고왔다.
고기 재울 때 양념과 같이 쓰면 고기의 비린내 나 누린내를 잡아주는 효과도 있다고 들었다.
칼국수 반죽에 조금 넣으면 간단하게 노란 면을 만들 수 있다니 여러모로 쓸모가 있겠다 싶었다.
딸내미와 통화하면서 요즘 밥에 강황을 넣어 먹기 시작했다고 하자, 강황은 엄마에게 맞지 않는 식품이란다.
뜨거운 성질인 강황이라 열 많은 엄마에겐 별로이며 체중이 과하거나 뼈마디 아프고 몸이 찬 사람에게는 좋다고 한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므로 남들이 좋다 한다고 무조건 취하기보다는 체질에 맞는지를 알아보고 샀어야 했는데.
제아무리 좋은 식품도 자기 체질과 건강 상태에 따라 가려서 먹어야 하건만 이 역시 소문에 솔깃했으니 귀가 얇은 게 문제다.
자신의 건강에 대해 관심을 갖고 관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시시콜콜 과하게 민감해지면 자칫 건강염려증이 될 수도.
자기 관리도 능력인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특히 요새 같은 때 스스로 알아서 골고루 충분한 영양섭취, 적당한 운동과 수면으로 각자 면역력을 강화해 나가야 하리라.
약이건 식품이건 본인 체질에 맞게 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강황을 통해 다시금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