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초록 잔디 새새로 하얀 민들레 씨앗이 비눗방울처럼 무수히 떠있는 뒤뜰로 나갔다.
그런데… 짧게 깎인 잔디밭에 금단추처럼 흩뿌려진 민들레꽃이 여기저기 낮은 키로 피어있었다.
거의 땅바닥에 닿을 듯이 아주 낮게, 마치 지면에서 방금 솟아난 듯이 붙박여서.
용케 잔디 기계에 밀리지 않은 채 꽃을 피운 꽃대가 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보다도 놀라운 건, 전날 핀 꽃대는 어느새 대궁 높이 올려 둥근 씨앗 하얗게 매단 채 바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건성으로 예사로이 보아왔을 때는 몰랐는데 놀랍게도 씨앗 품은 대궁은 어제의 난쟁이가 아니었다.
훤칠하게 허리를 쭉 편 채로 움쑥 자란 키였다.
감광성 식물인 민들레는 해가 돋으면 꽃이 피고 저녁엔 오므라든다.
꽃 지고 씨를 만드는 순간부터 생태적으로 꽃대를 쑥 밀어 올린다는 민들레.
더 멀리 씨앗을 날려 보내고자 꽃대를 전심전력 힘껏 치솟게 한다는 것.
바로 옆, 꽃을 단 대궁보다 거의 서너 배는 더 크다.
훌쩍 키를 돋우고 선 민들레에서 생명의 신비, 경이를 접한다.
그 본능이 눈가 뜨겁게 만든다.
눈가 비비는데 바람 한 자락 인다.
미풍이 지나자 뒤돌아 본 대궁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잠깐 사이다.
이 놀라운 섭리 앞에 공손히 무릎 꿇고 싶은 경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봄날 길섶이나 잔디밭에 피어난 흔하디 흔한 풀꽃인 민들레.
그 꽃을 보다 문득 숭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
그새 장발로 변한 초록 잔디가 첫 번째 이발을 한 그다음 일요일.
여름이 되면 일주 간격으로 잔디를 깎는데 잔디 깎는 기계 소리야 소음이지만 그때 온데 퍼지는 풀냄새가 얼마나 좋은지…
잔디들은 상흔마저도 신음마저도 푸르른 향으로 싱그러웠으니.
재작년 한국에 돌아갈 계획으로 일을 진행 중일 때였다.
막상 미국을 떠나려니 다른 건 아무런 아쉬움도 미련도 남질 않는데 단 하나 잔디 깎는 냄새는 그리워질 것 같았다.
민들레는 흔히 이민살이 삶에 비유되곤 한다.
그만큼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야생초가 민들레다.
또한 민들레 씨앗은 바람을 타고 정처 없이 날아가다 어디든 머무는 그곳에서 새 삶을 가꾸어나간다.
그곳이 어떠한 곳이든 환경을 가리지 않는 민들레.
웬만큼 척박한 박토에서도 능히 살아남아 제 영토로 삼는 민들레다.
잔디를 가꾸는 정원사나 골프장에선 골칫거리 중의 골칫거리다.
실제 잔디밭을 망가뜨리는 훼방꾼으로 정말이지 귀찮은 말썽쟁이다.
뽑아내도 뽑아내도 돋는 민들레라는 잡초야말로 성가시기 그지없다.
말끔히 뽑았다고 자리 털고 일어서면 숨바꼭질하듯 또다시 나타나는 민들레 노란 꽃.
전날 진종일 민들레 제거 작업을 했음에도 이튿날 아침이면 사방에서 고개 내밀고 샛노라니 웃는 민들레다.
주말을 지난 다음 날인 월요일엔 일감이 쌓인 터라 바빠 안에서만 맴돌 수밖에 없는 나.
신병처럼 짧게 머리 깎인 잔디밭에 나가볼 짬도 없이 그저 물오르는 신록의 숲을 가끔 건너다보기만 했다.
잔디가 깎였으니 몇 차례 쑥국을 끓여 먹었던 연한 쑥도 냉이꽃도 민들레도 죄다 깎였겠구나 하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화요일은 좀 한가한 날, 이름 모를 새들의 청량한 노랫소리 어우러진 숲 근처로 나왔다.
한낮의 눈부신 봄볕 속에 환하게 피어있는 민들레꽃 위로 나비가 팔랑거리며 날고 있었다.
꿀이 많은 민들레꽃이라 벌과 나비를 불러 모으니 베푸는 속정 깊은 식물이기도 하다.
봄날 길섶이나 잔디밭에 피어난 흔하디 흔한 풀꽃인 민들레.
그 꽃을 보다가 문득 경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
민들레는 흔히 이민살이 삶과 비유되곤 한다.
그만큼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야생초가 민들레이다.
한동안 보살피며 끼고 사는 동물과 달리 식물들은 일찌감치 분신을 멀리 떠나보낸다.
어미 그늘을 벗어나 넓고도 자유로운 신세계 향해 멀찍이 날아가서 힘차게 살라고 한다.
각각의 방법에 따라 힘껏 요령껏 살아가라 한다.
더러는 바람을 타고서, 물결에 실려서, 동물의 신체를 빌려서, 모체로부터 그렇게 멀어져 간다.
더 너른 영토 새로운 땅에서 힘찬 번식을 하라고.
그리하여 무리와 비비대는 경쟁에서 벗어나라고 하이얀 깃털 가벼이 나래를 달아준다.
마음 매인데 없이 뒤돌아보지 말고 아무 미련 없이 떠나라고.
본 자리에 집착 두지 말고 훌훌히 떠나라고 한다.
그렇게 민들레 씨는 바람을 타고 하염없이 날아가다가 어디든 머무는 그곳에서 새 삶을 가꾸어 나간다.
그 자리가 어떠한 곳이든 환경을 가리지 않는 민들레.
땅속 1미터 가까이까지 물을 찾아 뿌리를 내리는 민들레다.
혹독한 겨울도 뿌리 상태로 추위를 이길뿐더러
웬만큼 척박한 박토에서도 능히 살아남아 제 영토를 넓혀간다.
하다못해 돌담 언저리나 도심 보도블록 틈새에서도 샛노란 꽃을 피우는 민들레다.
그 민들레가 요즘 어디나 지천이다.
잔디를 가꾸는 정원사나 골프장에선 골칫거리 중의 골칫거리가 뽑아내도 뽑아내도 돋는 민들레라는 잡초.
이땐 잡초로 분류되나 반면 민들레는 동양의학에선 간을 깨끗하게 해 주고 피를 맑게 해주는 약재다.
뿌리 잎 할 것 없이 귀한 약재 중의 하나로 치며 어린싹은 나물로 먹기도 한다.
실제 민들레는 잔디밭을 망가뜨리는 훼방꾼으로 정말이지 귀찮은 말썽쟁이다.
말끔히 뽑았다고 자리 털고 일어서면 숨바꼭질하듯 또다시 나타나는 민들레.
어제 진종일 민들레 제거 작업을 했음에도 이튿날 아침이면 사방에서 노랗게 고개 내밀고 환히 웃는 민들레다.
주말을 지난 다음 날인 월요일엔 일이 바빠 안에서만 맴돌 수밖에 없는 터라 신병처럼 짧게 머리 깎인 잔디밭에 나가볼 짬도 없었다.
잔디가 깎였으니 몇 차례 쑥국을 끓여 먹었던 연한 쑥도 냉이꽃도 민들레도 죄다 깎였겠구나 하면서
혼자 아쉬워하며 중얼중얼.
화요일은 좀 한가한 날,
이름 모를 새들의 청량한 노랫소리 어우러진 숲 근처 한낮의 눈부신 봄볕 속을 나비가 팔랑거리며 날고 있었다.
그 아래 초록 잔디 새새로 하얀 민들레 홀씨가 비눗방울처럼 무수히 떠있기에
얼른 사진기를 꺼내 들고 뒤뜰로 나갔다.
그런데… 짧게 깎인 잔디밭에 금화 흩뿌려진 듯 민들레 꽃이 여기저기 낮은 키로 피어있지 않은가.
거의 땅바닥에 닿을 듯이 아주 낮게, 마치 지면에서 방금 솟아난 듯이 붙박인 채로.
용케 잔디 기계에 밀리지 않은 채 꽃을 피운 꽃대도 신통했지만 그보다도 전날 핀 꽃대는 어느새 대궁 높이 올려 둥근 홀씨를 하얗게 매단 채 바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건성으로 예사로이 보아왔을 때는 몰랐는데 놀랍게도 저마다 깃털 단 홀씨 품은 대궁은
어제의 난쟁이가 아니라 허리를 곧게 편 채 늘씬하게 움쑥 큰 키였다.
민들레는 구덕초(九德草 )라는 별칭대로 여러 가지 덕을 지녔는데 그중에서도 강덕(堈德)은 아무리 짓밟히거나 뿌리를 다쳐도 다시 살아날 정도로 역경을 이겨낸다는 점.
예덕(禮德)은 한꺼번에 피지 않고 한 꽃대가 피었다 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피어나
차례를 지킨다는 것이다.
먼동이 트자마자 부지런히 피어나는 근면한 꽃인가 하면 어린잎은 데쳐 먹으니 살신성인의 표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민자의 삶처럼 멀리멀리 날아가 제힘으로 일가를 꾸리므로 그 역시 기릴만한 민들레다
민들레 씨앗을 후~하고 불어 본다
홀연 바람처럼 구름처럼 가벼이 날아가 버린다
감광성 식물인 민들레는 해가 돋으면 꽃이 피고 저녁엔 오므라든다.
이 찰나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다.
꽃 지고 씨를 만드는 순간부터 생태적으로 꽃대를 쑥 밀어 올린다는 민들레.
더 멀리 씨앗을 날려 보내고자 꽃대를 전심전력 힘껏 치솟게 한다는 것.
바로 옆의 꽃을 단 대궁보다 거의 서너 배는 더 훌쩍 크게 키를 돋우고 선 민들레에게서 생명의 신비, 경이를 접한다.
그 본능이야말로 눈가 뜨거워지게 감동적이다.
한동안 보살피며 끼고 사는 동물과 달리 식물들은 일찌감치 분신을 멀리 떠나보낸다.
어미 그늘을 벗어나 넓고도 자유로운 신세계 향해 날아가 살라고 한다.
각각의 방법에 따라 더러는 바람을 타고서, 물결에 실려서, 동물의 신체를 빌려서라도 모체로부터 그렇게 떨어져 나와 아주 멀리로 떠나간다.
더 너른 영토에서, 새로운 땅에서, 힘차게 번식을 하라고.
그리하여 고만고만한 무리와의 경쟁에서 벗어나라고 새하얀 깃털 가벼운 나래 달아주는 모성.
마음 매인데 없이 뒤돌아보지 말고 아무 미련 없이 떠나라고. 본디 자리에 집착 두지 말고 훌훌히 떠나라고 한다.
사진 몇 컷 찍고 돌아서는데 바람 한자락 스친다.
미풍이 지나자 뒤돌아 본 대궁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말끔히 빈 대궁.
아주 잠깐 사이다.
이 놀라운 섭리 앞에 무릎 꿇고 싶은 숙연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그랬다, 그 꽃은.
공항에서 어여 가~~ 하며 손사래질하던 자그마한 내 엄마의 모습이었다.
오래전 이승 떠나며 큰 공부시킨 엄마 닮은 그 꽃.
수련 중인 나.
공부/ 김사인
'다 공부지요'
라고 말하고 나면
참 좋습니다.
어머님 떠나시는 일
남아 배웅하는 일
'우리 어매 마지막 큰 공부 하고 계십니다'
말하고 나면 나는
앉은뱅이책상 앞에 무릎 꿇은 착한 소년입니다.
어디선가 크고 두터운 손이 와서
애쓴다고 머리 쓰다듬어주실 것 같습니다.
눈만 내리깐 채
숫기 없는 나는
아무 말 못하겠지요만
속으로는 고맙고도 서러워
눈물 핑 돌겠지요만.
날이 저무는 일
비 오시는 일
바람 부는 일
갈잎 지고 새움 돋듯
누군가 가고 또 누군가 오는 일
때때로 그 곁에 골똘히 지켜 섰기도 하는 일
'다 공부지요' 말하고 나면 좀 견딜 만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