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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무량화
Apr 20. 2024
미완의 章
글쓰기
언제부터였을까. 우리가 자연스럽게 손 맞잡기 시작한 것은. 정확히는 모르겠다.
규칙적으로 일기를 쓴다거나 일정 형식에 따른 글을 계산하고 쓴 적은 없지만
아무튼 낙서 끄적거리듯 짤막한 글 같은 걸 즐겨 써왔다.
생활 속의 단상들을 간간이 메모해 두었다가 오죽잖은 그 편린들을 짜 모아
노트에 정리해 놓기도 했다.
그렇게 글과 나는 별 부담 없이 만났다. 흉허물 없는 친구 같고 스스럼없는 가족같이 편안한 관계로.
써놓은 글들에 시 혹은 소설이라는 호칭을 붙여 주었지만 제대로 된 글은 물론 아니었다.
체계적으로 문학공부를 한 바 없다 보니 어디까지나 자아도취에 빠진 낙서에 준하는 글들이었다.
이름이야 무엇이든 모양새가 어떠하든 그 작업은 나를 매료시켰다.
내게 중요한 것은 오직 글을 쓰는 순간의 열락(悅樂)이었으니까.
그만큼 무턱대고 좋아서 하는 일이었다.
문학이 무엇인지도, 어떤 자세로 문학에 임해야 하는지도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나의 글쓰기는 예나 이제나 제 신명에 겨운 일종의 광기이자 편집된 몰입이다.
‘쓴다는 그 자체가 좋고 그냥 쓰고 싶어서 쓰는 글.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분출하는 기(氣)에 밀려서 쓰고, 속에서 이글거리며 터져 나오고 싶어 하는 말들이 너무 많아서 쓴다’ 고 언젠가 고백했던 그대로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인식의 굴레, 나의 한계를 벗어나 무한히 자유로울 수 있음을 사랑한다.
생활과 의식의 괴리, 그 혼돈과 갈등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은
잠시일 망정 얼마나 큰 은혜인지.
처음부터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나 목표가 분명했다면
애당초 나는 아마도 글 쓸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과단성 있게 일을 추진해 내는 끈질긴 성품도 아니고 뛰어난 의지력과도 거리가 뜬 자신이므로.
막연하기만 했던 문학에의 꿈.
그 꿈 한 자락을 잡았을 뿐 딱히 한 장르만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써온 것은 아니었다.
시와 소설, 동화에다 시조까지 끄적거려 가며 자유 분방하게 항해를 계속해 오다가 드디어 정박하게 된 곳이 수필이란 기항지로, 내 유랑의 배는 산문에서 마침내 닻을 내렸다.
행복의 정상과 절망의 끝 자락을 두루 섭렵한, 오미자 차 맛과도 같은 나이에 이르러 글은 지금까지의 내게 무슨 의미일까를 생각해 본다.
우선은 글을 통한 자기 구원의 역할이 가장 값진 것이었고 ‘나 여기 살아있음’의 존재증명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가치이리라.
되풀이 말하지만, 나는 글을 쓰는 그 자체를 즐겼으며 그 순간 일종의 엑스터시마저 느끼곤 했다.
흔히 문학은 뼈를 깎는 고행이며 통렬한 가슴앓이라고들 하는데 너무 안이한 자세로 글을 써온 나.
하지만 내게 있어 글쓰기는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도, 각고의 아픔도 아닌 어디까지나 자유로운 향락일 따름.
다만 유념하는 점은 사물을 마음으로 보려 하고 또 숨어있는 내면의 핵을 발견하고자 나름대로 진지한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
초등학교 시절, 당시 이 대통령의 독립정신을 기린 작문을 써서 상을 받은 기억과 여학교 때 교지에 쓴 시 몇 편이 고작인 문학과의 인연.
물론 국문과 출신도 아닌 주변인일 따름인 나.
우리가 다시금 해후를 한 것은 그로부터 십 수년 후.
큰 아이 담임의 권고로 백일장에 나간 것이 계기가 되어 글과 나는 다시 만났다.
80년대 초반의 일이다.
그러다 느닷없이 부산으로 이사를 왔고 별다른 연고도 없으며 친구하나 없는 타향 객지 부산에서 시간을 바칠 일이라곤 자연 글쓰기와 책 읽기였다.
읽은 책은 거의 다 독후감을 남겼는데 그 덕에 무질서하고 조악한 붓이 얼마쯤은 다듬어질 수 있었다.
차츰 틀을 잡아가는 글. 나는 익명의 자유를 맘껏 누리며 여기저기에 글을 참 많이도 투고했다.
바로 이 시기, 나의 글은 훈련을 되쌓고 연마를 거듭할 수 있었으니 그때가 나의 습작 기였던가.
그러나 습작시절은 과거완료형이 아니고 현재도 수련기요 앞으로도 마찬가지이리라.
미완의 章, 그 앞에 선 나는 여전히 수줍은 신부다. 1995
<나의 습작시절>에 대한 부산일보 청탁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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