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뉴저지 교우와 긴 시간 통화를 나눴다.
눈이 많이 내렸으며 강추위가 계속된다는 얘기부터 오 안드레아 부부가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쳤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 댁만이 아니라 모국방문이 잦던 한 씨네도 한국에 가서 노후 보낼 집을 고향 쪽에 이미 장만해뒀다고 한다.
특히 한 씨 댁은 오랜 비즈니스로 탄탄한 경제력을 쌓았는 데다 무엇보다 남들 다 부러워하는 자녀교육 성공 케이스다.
자제들이 대학교수로 의사로 회계사로 미국 제도권에 들어 중산층 이상의 자리에서 안정되이 자리 잡고 산다.
자녀 모두 다 이 땅에 사는데도 훌훌 떠날 채비를 하는 한 분은, 구순 넘은 어머니가 동생 집에 기거하셔서 지금이라도 자기들이 모시려 한다는 것.
칠십도 한참 지난 또 한 가족은 귀소본능대로 고향 돌아가 노후를 편안히 살고 싶어 역이민을 작정했다고.
한 분은 한국에서 선경에, 다른 분은 대한 타이어 대리로 있다가 미국 와서 초창기 시절 밑바닥부터 고달픈 이민생활을 감내했다.
세탁소를 하며 시난고난하던 우리를 보고 그 정도는 양반 놀음이요, 했던 분들로 악수를 해보면 억세고도 거친 촉감 통해 충분히 헤아려졌다.
그동안 손발로 힘들게 때운 고초의 나날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주일날 평화의 인사를 나누며 주변 분들과 으레 악수를 나누므로).
오늘 통화를 한 모니카 씨는 삼 형제가 다 뉴저지에 살고 딸만 한국에 있는데, 딸이 아닌 어떤 아들이라도 한국 산다면 자기도 나가 살고 싶다 하신다.
근자 들어 부쩍 심란스러워진 속내를 그대로 솔직히 내비쳤다.
한국 정세가 심하게 요동질 치며 시국이 불안한 요즘엔 미국 나와 살기를 백번 잘했다고 하는 얘길 자주 듣는다.
고국방문 후 교민들마다 몰라보게 달라진 한국의 발전상에 감탄하는 한편, 흥청흥청 너무도 잘 먹고 잘 사는 한국 실정이 부럽더라 얘기하기도 한다.
사람살이 거의가 오십보백보요 어느 사회나 명과 암은 공존하므로 한 단면만 보고, 겪고, 호불호 평가를 내릴 수는 없는 일.
사람 사는 일 365일 날마다 호호하하 한다면 머리에 꽃 꽂은 경우?
쾌청한 날도 있고 흐린 날도 있고 인생이란 그런 것, 조울증환자가 아니라도 나남 없이.
그럼에도 가끔 마음이 추워질 적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명절 때나 혹은 낙엽 지는 가을녘이나 눈바람 찬 계절이면 수구초심의 알싸한 기분이 든다.
그렇다고 고향을 영영 찾지 못할 망명객 신세는 아니니 가고자 맘먹으면 돌아갈 수 있는 곳임에도.
타향살이 노랫말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고향 떠난 지 얼마나 됐나? 손꼽아 헤아려본즉 십 년이 넘었다나 어떻다나 하면서 청승을 떨어댄다.
한데 여기서 만난 교민들은 그게 아니다. 손꼽아 헤아려 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하나같이 미국에 온 지 얼마나 됐어요? 물으면 즉각 37년이니 42년이니 대답이 나온다.
거의 생애 반토막 이상을 미국에서 살았단 얘기다.
재미없는 천국이 미국이라 하면서도 한 해 두 해 어찌나 빨리 가는지, 모두들 금방 몇십 년이 되어 버렸더라는.
그런즉 구태여 손꼽지 않아도 알만큼 햇수가 정확히 머릿속에 입력이 돼있는 셈이다.
자신이 한국을 떠나 타국에서 산 세월만을 날마다 계산했을 리 만무인데 희한하게도 질문을 받으면 금방 답이 나오는 것이다.
결혼한 지 얼마 됐어요? 갑작스레 누군가가 물으면 가만있자, 그러니까 으음~~ 하며 잠깐 암산을 하기 마련인데 미국 온 지 얼마나 됐냐는 물음에는 항시 답변을 준비하고 다니는 사람처럼 금세 그 세월이 튀어나온다.
그 정도로 쉽지 않아서이리라.
그만큼 고단하고 팍팍해서이리라.
어떤 입장이건 남의 나라 타국살이가 그리 녹록 할리야,...
다들 그런 건 아니나 대부분 미국에 오면 학력이고 경력이고 일단 접어두고 살아야 한다.
한국에서의 대단한 학벌, 그간의 화려한 경력, 그걸 인정해 줄 체제도 아니고 나아가 그걸 내세워 밥벌이할 재간도 없다.
더러 어쩌다 더러, 고급 인력다이 제대로 된 대우받으며 사는 예도 있긴 있지만 극소수다.
유학을 온 경우라면 전문직 종사자도 되겠으나 대부분의 이민 1세대들은 학력 경력 평가절하시키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
말이 좋아 비즈니스, 쉽게 말해 장사하며 그렇게 살았다.
그로서리, 꽃가게, 바디샵, 세차장, 이미용실, 봉제업, 음식점, 네일가게, 세탁업, 옷집을 하다가 물론 규모 큰 사업가로 발돋움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개중엔 검은 뭉칫돈 싸 짊어지고 온 사람도 있긴 하나, 맨몸에 빈손으로 너무도 못 살아서 미국에 온 예도 적지 않다.
70년대 이민을 온 사람 중에 단돈 40불 들고 온 경우도 있다 하니까 누군 비행기값도 빚내서 왔다고 했다.
지역에 따라서는 공부하러 와서 머물게 된 케이스나 자녀교육을 위해 미국행을 단행한 이들이 몰려 살기도 한다.
뉴저지 체리힐도 그중 한 곳.
그들은 저마다 교육 수준이 높다.
그냥 척~해 보는 허세라거나 허언, 흰소리가 아니라 실제 주변에 명문대 출신이 수두룩 빽빽하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좋은 대학 나와 보장된 직장 버리고 왜 미국에 와서 험한 일, 궂은일 가리지 않고 하면서 생고생할까.
그런 맘 들 적 많긴 하나 아무튼 한국에선 상상도 못한 일일지언정 현실에 맞춰 성실히 노력해 재산 일구고 자녀 교육에 성공한 사람들도 허다하다.
예일, 하버드 박사로 만든 부모들도, 그러나 나이 들수록 고국을 그리며 가끔씩 향수에 젖는 건 어쩌면 인지상정이리라.
내가 한국을 떠나온 지 그럭저럭 사십 년째요, 이젠 자식들 뿌리내린 여기서 살 수밖에 없지만 우리나라, 가고 싶지요.
한숨을 슬쩍 흘리며 자조하듯 내뱉기 일쑤였는데 드디어 오 안드레아 가정이 한국행을 결정했다니 축하할 일이다.
당당하고 씩씩하게, 미국만큼 살기 좋은 나라가 어딨냐면서 제대로 미국을 즐기며 사는 사람도 진짜 많긴 하다.
야, 거추장스럽게 얽힐 일 없지 체면치레할 일 없지 여기 사람들 대체로 검소한 데다 정직하지 타인에 대한 배려심 깊지 성격 솔직 담백하지 환경 끝내주지 여러모로 얼마나 살기 좋은데.... 하면서.
한국의 경제 발전상은 들을 때마다 흐뭇하다만 흥청망청 해대는 과소비 성향에 뇌화부동하는 가벼운 국민성에다 더구나 정치 꼬라지 봐라, 봐!
정나미 뚝 떨어지지.... 하면서도 내심 은근 회귀성 연어가 되는 이들을 부러워하는 눈치마저 내비치는 나이 든 교민들.
정들면 어디나 고향인걸요, 말은 담담한 척 그리하나 마음이 무작정 푸근하고 따뜻하게 머무는 곳이야 모국 아닌가.
아들이 연세도 있는데 그만 들어와 사시지요, 권하나 괜히 심적 부담 주지 말고 멀찍이서 서로 편안하고 자유로이 살아가는 방식을 나는 고집한다.
앞으로 지내고 싶은 한 곳을 딱 정하라면 글쎄? 미국이나 한국이나 어디든 구태여 마다할 것도 없고 둘 다 살만하니 좋고도 괜찮다.
하건만 흘러간 옛 노래 타향살이를 들으면 마음이 낮게 가라앉으며 괜스레 추연해지는 이 얄궂은 심사는 또 뭔가.
구성지면서도 한 맺힌 정서로 비감스레 부르는 타향살이를 고복수 씨가 발표한 건 1934년도.
정말이지 당시는 나라 잃고 너나없이 남루하고 구차스럽게 살아야만 했던 세월이다.
부모와 자식이 생짜배기로 헤어져 낯설고 물 선 상해로 간도로 흩어져서 부평초처럼 살 수밖에 없었던 한 서린 시대.
몸도 마음도 시립고 서럽던 시절 얘기가 담긴 타양살이다.
시대 배경이나 이산의 사연이 전혀 달라진 작금.
그럼에도 아무나 타향살이를 하겠나, 역마살이 끼어도 단단히 낀 사람이나 하는 거겠지.
비라도 내릴 듯 창밖 하늘은 잿빛으로 무겁다.
조용히 흥얼거려 보는 노래,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여 년에~~ ~2016
2019년도에 나는 한국적을 회복한 바 있다. 시민권을 취득함과 동시에 자동소멸된 국적이다. 그러나 65세 이상은 본인이 원할 경우 복수국적이 허용되는 제도가 있어서이다. 얼마 전부터 역이민자 숫자가 늘고 있다. 거의가 은퇴자로 미 연금이 넉넉한 시니어층이다. 형편이 어려운 계층의 시니어라면 되돌아올 근거가 없으므로 아무래도 마음뿐일 터.
70대 후반인 지인은 샌프란 시민으로 분당에다 거처를 마련했다. 그분은 말한다. '미국에서 오래 살면서 터득한 것은 대한민국 때문에 내가 행복하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이 빛날 때마다 나는 행복을 느껴왔다. 이제는 한국에 돌아와 살고 싶어 아파트도 구입했는데...'라며 어수선한 국내정세로 갈피를 못 잡겠다며 진솔한 속내를 내비쳤다. 국정마비에 준할 정도로 혼돈에 빠진 이즈음 대한민국. 모쪼록 빠른 안정세로 전환되기만을 기원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