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같이 부지런 떨며 알베르게 빠져나와 길 걷다 말고 뒤를 돌아다보았다. 떠나온 마을이 부옇게 틔여오는 여명 속에서는 신비감마저 들게 했다. 고양이만 어슬렁거리는 퇴락한 동네, 노인 몇 무표정한 낯빛으로 골목에 앉아있던 적막한 마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꽤 한참 동안 들길을 걷자 지평선 끄트머리 저만치에서 야트막한 언덕이 나타났다. 표현이 야트막하지 실제로는 평야 한가운데 솟은 산이라 땀 꽤나 흘리게 만드는 만만찮은 오르막길이었다. 무료하게 내리 뻗은 그 길은 정말이지 기를 팍 질리게 만들었다. 더구나 빤하게 난 언덕길을 한 시간 가까이 오르려니 지루하기 짝이 없어 오전부터 이미 힘은 빠지기 시작했다. 순례길은 성스러운 장소를 찾아가는 그 목적보다 그곳을 찾아가는 길 위의 여정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지칠 만도 한 시점이 되어서인지, 떠나온 마을에서 옮은 무기력감 때문인지 '카미노의 의미'란 뜻조차 탈색이 된듯했다.
매가리 없이 터덜거리며 걷다 보니 푸른 강줄기가 나타났다. 시원한 물빛에 그나마 기운을 차리게 되었는데 피수에르가 강 위에 걸쳐진 다리는 더더욱 굉장했다. 메세타 지역의 단조로움에 지친 우리를 위로하듯 강바람 시원하게 불었고 강을 건너는 동안 눈빛 바짝 긴장시킨 다리였다. 그럴 만큼 '시작하는 사람들의 다리'라 불리는 길고도 견실한 이테로 다리 (Puente de Itero)는 카미노 길손을 압도해 왔다. 석재가 귀해 성당조차 벽돌로 짓는 대평야 지대인데 화강암 석조 다리라니. 그럴 만도 한 것이 에스파냐의 전쟁왕 알폰스 6세가 카스티야와 레온 두 왕국을 합친 걸 기리려고 만든 다리는, 열한 개의 아치가 떠받드는 대단한 교각이었다. 물가라서 인지 인근엔 이파리 한창 피어나 팔랑거리는 미루나무도 서있었으며 밀밭 푸른 초장이 드넓게 펼쳐졌다.
강을 경계로 팔렌시아 주에 넘어왔다. 언뜻 봐도 아주 오래된 유적지 같은 단조로운 카스티요 마을, 스치듯이 무덤덤하게 지나쳤다. 길가의 소성당 하나와 초라한 농가 두엇 서있을 뿐, 기실 마을이랄 수도 없는 그곳. 동네 가로질러 끝날 것 같지 않은 들판길 터벅터벅 걸어가자 이테로 데 베가란 마을이 저만치서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낡고 허름하니 작은 농촌마을이었으며 볼품없는 잡목들이 길 옆에 줄지어 서있었다. 쨍쨍 내리쬐는 땡볕 맞서 걷다가 잠시 그늘에 들어 쉬려는데 말 탄 순례객들이 또가닥거리는 말발굽 소리와 함께 등장했다. 엉거주춤한 채로 우리는 다가왔다 멀어져 가는 말을 바라보고 또 서로를 쳐다봤다. 대놓고 얘기하진 않았지만 위풍당당 늠름한 그들이 내심 부럽다는 표정 다들 역력했다. 그러게 누가 생고생 하랬냐구, 타박을 들은들 그저 빙긋 웃을 수밖에.
그렇다고 오래 의기소침에 빠져있을 우리가 아니다. 심기일전 발걸음을 옮겨놓은 덕에 보아디야 델 카미노 마을에선 진귀한 정경과 마주할 수 있었다. 말 탄 이들 부러워했던 심정 상쇄시켜 주려는 듯 보너스로 다가온 선물. 침체의 늪에서 우릴 건진 건 뜻밖에도 황새를 닮은 커다란 새의 나래짓이었다. 로마네스크 풍의 묵직하고 장중한 성모승천 성당은 비어있는 듯했다. 교회 종탑 꼭대기에도, 광장 앞마당의 조각 정교한 심판의 기둥(Rollo Juridiscional) 위에도, 나뭇가지 물어다 둥지 튼 황새 가족에게는 아기새나 알이 있었던 모양이다. 부담스러운 사람들 시선을 분산시킬 요량으로 어미 새는 주변을 휘휘 돌다가 하늘 높이 비상했다. 새의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넋을 놓고 창공에서 선회하는 새를 바라다본 그날. 아기 새를 보호할 심산으로 수없이 날개 펄럭대며 경계 늦추지 않는 새 조차 본능이 그러하거늘... 책임과 의무 가벼이 접어놓고 먼 길 떠나와 문득 듣게 된 심판 소리에 기분 묵직해졌으니. 마지막 날까지 성심껏 가정 돌봐야 할 부모의 막중한 역할에 대해 오래 숙고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