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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여정수첩 15-한국인의 문화적 자긍감 높인 소설

by 무량화


대한민국에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작가 한강.

그 이전 우리는 26년 간 소설을 써 내린 박경리 선생의 역작인 《토지》 스무 권을 갖고 있었다.

한국인의 자긍심을 드높인 대하소설 토지로 해서 한글을 창제한 세종임금이 고맙기만 했던 우리.

악양 평사리 박경리 문학관에 갔던 내용은, 차마 언어 덧보태기 저어 돼 삼가 여백으로 비워두며.....




남도 여정수첩 16

최참판 댁 사랑채에서 악양들 바라보고자 함은



동학혁명에서 근대사에 이르기까지를 아우른 한민족의 대서사시 《토지》.

무려 26년에 걸쳐 집필한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 전반부 무대인 하동 평사리에 들어섰다.

지리산 능선의 완만한 기슭에 자리한 최참판 댁은 마을의 제일 높은 위치에서 저 아래를 굽어보며 널찍하게 앉아 있다.

고색창연한 전통 한옥으로 물론 소설 속 가상공간을 현실화시킨 지주 댁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다.

6백여 명이 등장하는 토지, 하면 안채 윤 씨 부인이나 별당아씨 등 주인공보다 가장 먼저 시리게 서럽게 먹먹하게 떠오르는 인물이 월선 그녀다.

사무치게 애닳고 애틋하고 애련했던 그녀.


착하디 착한 그녀가 한 서린 생을 마감하며 용이 품에서 숨 거두는 순간을 묘사한 대목에 이르면 뉜들 책을 읽으며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오늘은 서희의 아버지이자 최참판 댁 당주인 최치수가 머물던 사랑채부터 첫 번째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신분의 위계가 뚜렷, 반상의식이 엄연했던 당시 하얀 얼굴에 신경질적인 최치수는 경제권도 아랑곳하지 않아 안채 어머니가 맡았다.

그는 첫 부인과 사별하고 재혼한 별당아씨와의 사이에 딸 서희를 두나 별당아씨는 그의 이복동생과 야반도주해 버리고....

냉소적으로 굳어가는 그가 칩거하다시피 머문 사랑채는 어흠! 기침소리만으로도 체통 유지되는 전형적인 양반가의 바깥채다.

이 사랑채 누마루에서는 악양 들판과 섬진강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기 때문에 거기서 80만 평에 이르는 아랫들을 바라보고 싶었다.

소설은 물론 드라마를 통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악양들의 사계, 언제라도 조망권 끝내줄 것 같은 곳.

모내기 마친 질서 정연한 초록 들판의 봄, 논의 푸름이 저마다 달라 동색 계열 조각보 펼친듯한 여름,

눗누런 황금벌판 아름다운 가을, 추수 끝난 빈 들 휴식기에 접어든 고즈넉한 겨울.

삼월의 악양들이 보고 싶어서 왔는데 온누리를 희뿌옇게 휘감은 황사가 이를 허락지 않았다.

해마다 그런데 뭘.... 대수롭지 않게 아주 예사로운 현상으로 치부하는 언니의 무감각은 어쩌면 당연지사.

황사 발생지인 중국 들먹대면서 씹어대는 내가 유별나다 여기며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한다.

하지만 내가 평사리 찾은 이유인즉 내심 봄철 악양들 보고자 했음이니.

앞자락에 유연하게 굽이 트는 섬진강 도저한 물줄기를 가려버린 사성암에서도 희끄무레한 대기 못내 안타까워했듯이.

번번 흐릿하니 침침하게 나오는 희득스런 사진이 맥없어서가 아니라 평사리에서 악양 들판 직접 두 눈으로 명료한 실경을 보고자 했건만.

거두어지기는커녕 외려 더 심해지는 미세먼지 농도에 결국은 백기 들고는 언제이고 다시 찾으리라, 작정하고 다음 기회로 바통 넘겨버렸다.

아무래도 대기 청명한 가을녘 버스를 타고라도 평사리를 한 번 더 다녀와야겠다.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길 7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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