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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와 명태 그리고 구슬비

by 무량화


연이틀 비 내리다 그치자 연통이 왔다.

고사리 따러 가자는 기별이다.


아랫집 삼춘이다.


억척인 그녀는 사월 내내 고사리밭에서 산다.


보아하니 당신은 고사리 꺾으러 다닐 사람같지 않아 같이 가자고 하질 않았단다.


그러길래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마음속은 모르는 법이라 했지.


월매나 고사리 밭에 한번 가봤으면 했는데....


전문 꾼인 그녀를 따라서 몇 차례 그녀만 아는 비밀궁에 다녀왔던 터다.

그 일에 재미 들여 얼싸 좋다 냉큼 대답하고는 채비 갖춰 나섰다.


챙길 거라야 방수점퍼에 팔토시, 목장갑에 등산화 그리고 배낭과 큰 비닐봉지면 준비 완료.


고무장화며 고사리 앞치마 등속까지 구입하진 않았다.


아무리 재미져도 지네나 비암 물리지 않게 신는다는 고무장화요 고사리 꺾어 척척 집어넣기 편리한 용도의 앞치마가 필요할 만큼 본격적으로 나서진 않을 테니까.

고사리 꺾는 일이 신선놀음만은 아닌데 그러나 은근 중독성은 있다.

새벽 다섯 시 오십 분 출발해서 여섯 시 반에 우리는 비밀장소에 도착했다.

산자락 따라 안개가 뭉턱뭉턱 밀려내려왔다.

부연 안갯속에서도 고사리 자태는 유독 도드라지게 눈에 띄었다.

갈수록 고사리가 통통해지고 키도 움쑥 커졌다.

톡. 톡. 톡! 어린 고사리 순을 딴다.

처음엔 갓 나온 새 순을 꺾는 그 행동이 모지락스럽고 야멸차게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오히려 고사리가 어서 따달라고 고개 디미는 거 같기도 하니.

어느 고사리는 손도 대기 전 목장갑에 살짝만 스쳐도 똑 부러져 버린다.


허리가 부실한 현주씨는 허리 굽히는 자세나 쪼그리고 앉아 고사리 꺾는 일이 힘들다 하지만

삼춘이나 난 아직은 전혀 노 플라브럼.


각자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고사리를 꺾기에 안갯속 저만치 엉거주춤 엎드린 현주씨는 보이나 삼춘은 어디까지 갔는지 자취 묘묘하다.


셋이 왔어도 작업은 어디까지나 단독, 그 점이 자유롭고 편해서 좋다.

고사리 채취하는 게 어찌나 재미진지 때론 콧노래 흥얼거려지고 고사리 명상에 잠길 수도 있으니까.

그만큼 시간 가는 줄도 모를 정도로 고사리 채취 삼매경에 빠져버리곤 하는데.



오늘은 바리톤 오현명의 가곡 <명태>가 계속 뇌리에 맴돌았다.

..가난한 시인이 / 밤늦게 시를 쓰다가 쇠주를 마실 때 /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노래했듯이.

어차피 손바닥 활짝 펴지면서 쓸모없이 세어버리기 전에 어떤 미식가를 위해 차라리 제 한 몸 소신공양 바치리라.

지글지글 고기 불판 곁에 나란히 누워 누군가의 젓가락에 들려 기호식으로 산화하리라.

예로부터 정갈한 젯상 제물로 올려지거나 명절 나물로 괴임 받는 고사리다.

그만한 대우라면 미상불 그리 억울치는 않으리라.

자연의 모든 음식 재료는 절이거나 삶거나 데쳐져 생명의 기를 잃는듯하지만 그렇게 스러지므로 우리 몸을 도와 자신도 재생된다.

이는 인간 위주의 야박스럽고 지나친 아전인수일지도.

고사릿대 가을 되면 하릴없이 누렇게 시들어 낫으로 베어져 퇴비로 쌓이는 것보다는 본디 가치가 승하는 게 아닐까도 싶고.

지난번 고사리 채취 후 손목에 벌레 물린 듯 근지럽더니만 이번에 보니 쐐기도 흔하다.

잠깐 이슬비가 내리자 보이지 않던 거미줄에 옥구슬 조롱조롱 매달렸다.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절로 <구슬비> 동요도 흘러나온다.

섬휘파람새 노랫소리 해맑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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