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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채취 삼매경

by 무량화

태반에서부터 철이 들었나 봐요

아기 머리 쏘옥 솟아나자마자

공손히 경배드리는 고사리

하늘에 대지에 바람에 이슬에

땅속 포실하게 적셔준 빗님에게

삼라만상 모두모두에게 감사하다며

합장배례 고개 숙인 고사리 순

뽀야니 보송보송 솜털에 싸인 고 어린 새순

매정스레 차마 꺾기 저어 되지만요

저를 데려가 주세요, 선뜻 나서듯 눈에 띄는 고사리.



톡 톡 분질러질 때마다 비명 대신

고사리는 명료하게 스타카토 찍네요

방수처리 안 된 등산화 이슬에 젖어 축축하게 젖은 발

그래도 요사이 고사리 따러 가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내고 있어요

얼마나 먹자고 생고생하느냐고요?

원래 고사리라면 비빔밥에 든 고사리도 골라내는 식성이거든요

고사리 고유의 비릿한 내음이 거슬려서이지요

그렇다면 부업으로 뛰느냐고요?

에이~돈독이 오를 나이는 벌써 지났잖아요

푸드득 꿩 날아오른 언저리에서 섬휘파람새 노래하고요

바람결에 묻어오는 송화 향기는 또 얼마나 은근스러운지요

힐링이 따로 있나요, 그 시간이 곧 삼매에 들어 무아지경 노니는 때라네요.



봄비 실비 살몃 내린 다음날 새벽

몽유병자처럼 안개는 뭉텅이로 숲을 배회하고요

이런 때가 고사리 채취하기 최적 타임이라데요

키 부쩍 돋운 오동통한 햇 고사리가 고물고물

사방 어디나 지천으로 올라오는 고사리 순들로 아예 고사리밭이지요

불그죽죽 묵은 고사릿대 건초더미처럼 쌓인 근처면 틀림없어요

햇볕 잘 드는 양지쪽 비옥한 토양이라면 고사리는 쑥쑥 자라지요

목초지나 무덤가에 그래서 고사리가 많은가 봐요

고사리 꺾기는 중독성이 은근 있더라고요

톡톡 끓기는 손맛에 빠지면 새벽잠 자동 반납하게 되거든요

순전히 재미져서이지요

게다가 몇 분에게 선물했더니 너무도 좋아하시는 거예요

손수 고사리 채취해서 직접 삶아 정하게 말렸으니 얼마나 귀한 거냐면서요

그 맛에 또 진진한 묘미를 느끼게 되더군요.



고사리 허리 짬에 손이 닿을 즈음이면 어느새

풀숲 잽싸게 서치라이트처럼 훑는 시선

동시에 인근 순식간에 스캔을 뜨지요

그렇게 고사리 꺾는데 몰두하다 보면요

무념무상, 아예 선의 경지에 들게 되더라고요

기도 붙잡고 앉았어도 온 동네방네 헤매는 뭇 사념인데요

어쩌면 그리도 머리 말갛게 비워지는지 신기하더라고요

대기권 그 너머처럼 고요히 텅 빈 그 느낌

한번 맛들리면 다시 또 오지 않곤 못 배기지요

무심결에 꺾고 또 꺾고... 고사리에 눈 어두워 고사리만 좇느라구요

신춘頌 부르며 새로 핀 제비꽃 엉겅퀴꽃 자칫 놓칠 뻔했네요



고사리를 일러 산에서 나는 쇠고기라 하더군요

반면 고사리가 무성히 자라는 지역은 흉지라느니,

고사리가 귀신을 부르는 음식이라 제사상에 오른다느니,

심하게는 고사리를 먹으면 남정네들 정력을 약하게 한다느니,

더 심하게는 고사리에 발암물질이 많이 들어있다느니,

부작용을 낳는 식품이라는 오해를 자주 받는데요

발암물질은 충분히 삶는 과정에서 자연 해소되고요

외려 성질이 차서 열을 식혀주는 효능도 있다네요

섬유질과 단백질 함유량이 높은 건강식품이지만요

태양인 소양인에겐 맞겠으나 소음 체질에는 적합하지 않겠군요

아마 그래서 생래적으로 고사리를 즐기지 않았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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