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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다 숨비소리는 멀어지고

by 무량화


점심때가 지나 길냥이들 물 주러 가는 길에 일단의 해녀들을 만났다.


무거운 짐을 진 그녀들은 허리 굽은 채 바삐 곁을 지나갔다.

길냥이 물을 주고 오다가 마침 바닷물이 쑥 빠졌길래 해변으로 내려갔다.


돌미역 채취하느라 긴 장화를 신은 주민이 있기에 해녀들 물질하러 오는 시각이 몇 시인지 물어봤다.

아침 여덟 시 경이라고 했다.

이튿날 일찍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여느 때 늘 이용하는 길, 바다로 향하는 산책로 언덕길에서 앞서가는 해녀를 만났다.

이미 고무옷을 입고 바삐 걸어가는데 바로 이웃한 해녀 회관에서 잠수복으로 바꿔 입은 모양이다.

방파제 너머 돌밭 해안에 앉아있는 해녀들과 합류한 다음 채비를 갖추자마자 척척 바다로들 들어갔다.

한 팀은 들쭉날쭉 바위 거친 데서 입수를 했다.


모인 해녀 숫자도, 입수 장소도, 지난겨울과는 달랐다.

작업 장소도 먼바다, 겨울보다는 훨씬 더 멀리까지 나갔으니 깊기도 깊겠다.

요즘엔 봄볕 가리는 게 아까워 모자를 안 쓰고 다니는 터라 선글라스만으로는 빛 하도 부셔서 양손 펴 손부채 만들었다.

눈부신 아침해 덕에 기온 온화하고 은종이 뿌린 듯 온 데서 은빛 반짝대는 동해, 아무리 파도 잔잔한 봄바다라지만 이번엔 더 멀고 깊은 심해로 나간 해녀들.



곧장 작업에 들어가 거꾸로 물구나무 서자 보이는 건 두 짝의 고무 발, 현란한 싱크로나이즈 아닌 치열한 무작맥질이 시작된다.

바닷바람과 거친 물살에 맞서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되어 억척같이 살아가는 그네들이다.

기상 이렇게 좋은 날도 있지만 돌변하는 해상 일기 언제 난바다 되어 파고 높아지며 험해질지 모른다.

살아간다는 일 누구에게나 무겁고도 신중하고 진지하다,


장난치듯 농담 날리듯 그리 가벼울 수가 없는 삶이다.

희비애락 점철된 인생 여정 굽이굽이 걷노라면 얼마나 아프고 고된지 알기에, 선대부터 내려온 관습대로 자손들에게 하다못해 재산이라도 한 푼 더 남기려 하는 심정 헤아려지고 십분 이해된다.

그 누구도 마찬가지, 자식에게는 묻지도 않고 허락받지도 않은 채 풍진 세상에 내던져놓은 책임 때문이다.

한길 두 길 들어가니 / 저승 길이 오락가락 / 타고 다니는 칠성판아 /이고 사는 명정포야...

화장이 보편화된 근자야 해당되나 모르겠지만, 칠성판이며 명정포는 두 가지 다 죽어 땅에 묻히기 전 들어가게 되는 관과 연결된 물건들이다.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 쓴다는 그네들 말대로 목숨 걸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위험하고 힘든 일 맞다.

전승되는 해녀노래 가사나 가락은 그래서인지 애환 어린 정서가 절절히 녹아들었다.

바라보며 즐기는 바다 자체는 근사할지 모르나 생활전선으로의 바다는 처절하고 고단한 삶의 터전일 뿐이다.

더구나 나처럼 물과 친하지 않아 수영의 기본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넘실대는 파도 검푸른 바다는 그저 외경의 대상.

배 타기를 꺼리는 까닭은 우선은 멀미 때문이기도 하지만 멀미가 심해도 도저히 어쩔 방도 없이 견뎌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어릴 적 만리포에서 천리포까지 통통배 타고도 얼굴 노래졌고 스무 살 무렵 친구가 사는 제주도 가며 거의 사색이 되었던 기억만으로도 여전 고개 세차게 저어진다.

그 두려운 바다를 넘나들며 깊은 바닷속에서 일하는 해녀들이기에 그래서 무조건 엄청 대단해 보인다.

해산물을 캐다가 숨이 차오르면 물 위로 솟아올라 참고 참았던 긴 숨 내뿜는 휘파람 소리 같은 독특한 소리를 토해낸다.

그 숨비소리는 거리가 너무 멀어 이번엔 들을 수 없었다.

보통 네댓 시간 바다에 머물며 작업하고는 망사리 가득 수확물 무겁게 지고 뭍으로 나온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해녀는 2019년 6월 말 기준 867명이나 된다고 한다.

해녀들은 강서구 가덕도, 기장군, 사하구 다대포, 영도와 수영구, 해운대 등 해안 마을을 끼고 널리 분포되어 있어 자주 만난다.

거리상 초점 안 맞아 어룽대는 희뿌연 사진이나 따나 자료 삼아 여러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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