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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pr 23. 2024

여전히 살아있는 제임스 딘  

에덴의 동쪽

노인네답게 "라떼는 말이야"로 운을 떼야겠다.


중고등 학창 시절 우리 대부분은 과제처럼 유행처럼 세계문학전집을 섭렵했다.

하나같이 명작으로 꼽히는 고전들은 술술 읽히는 흥미 위주의 가벼운 책이 아니었다.

솔직히 부담스럴 정도로 두텁기도 하거니와 난해한 책도 여럿이었다.

금박 표지의 전집을 마스터해야 한다는 지적 허영심도 가세, 이해하고 읽든 아니든 하여간 읽긴 읽어냈다.

세월이 흘러 흘러 인생사 쓴맛 단맛에 치이고 닦이며 나이 들어갔다.

그즈음엔 오묘한 생의 비밀로 가득 찼던 명작의 기억도 가물거려진다.

대강 어떤 스토리의 소설인가 정도만 알아도 그나마 기억력 꽤나 좋은 축에 속하고 독서 제법 한 축에 들었다,

나이 들어 명작을 다시 읽거나 명작 영화를 다시 보면 전과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와 각별스런 감동과 흥분을 느껴본 적이 있으리라.

소설 또는 영화 속 주인공의 삶에 대한 인식도, 감수성 예민한 십 대 때의 얕은 느낌과는 차이가 크게 난다는 것도.

그때와 달리 아무래도 사유의 폭이 넓고 깊어진 나이 든 지금은 감흥이 다를 수밖에 없을 터.

주인공이라는 타자의 경험이 내 삶에 투영되기도 하고 대입되기도 하고 비교되기도 하고 향유하고 공유하게도 된다.

제임스 딘이 주유소에서 자신이 아끼던 포르쉐에 급유하며 찍힌 마지막 사진.

서두가 길어졌는데 근자 다시 본 영화 얘기를 하고자 한다.


두어 시간 공간이동하여 다른 세상에 편입된 채 깝깝한 인간 잊을 수 있기에 즐겨 명화의 바다를 유영하는데.


히치콕 영화를 골라보고, 최고의 영화로 꼽는 카사블랑카며 앵무새 죽이기를 찾아보고 주말의 명화에서 수차 본 가스등도 다시 다.  


에덴의 동쪽, 이유 없는 반항, 자이언트, 이렇게 단 세 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나 영원한 청춘의 아이콘이 된 제임스 딘의 영화를 어제 차례로 찾아보았다.


에덴의 동쪽은 캘리포니아 살리나스와 몬트레이가 무대라 그곳을 두어 차례 여행했던 추억들이 떠올라 한층 가까이 다가왔다,  


살리나스가 고향인 존 스타인 벡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성경의 카인과 아벨을 모티브로 삼았다.


청교도처럼 모범적으로 살아가는 아버지 아담에게는 두 아들 칼과 아론이 있다.


아버지는 반듯한 장남인 아론을 신뢰하고 편애하는 반면 매번 인정받지 못하는 칼은 소외감과 불만을 느끼며 성장한다.


가정을 버리고 나가 부도덕하게 사는 어머니의 실체를 형에게 알려주자 이에 세상이 무너지듯 한 충격을 받는 아론.


형은 죽음의 전쟁터로 떠나버리고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에게 칼은 자책 속에서 용서를 구하고 마지막 순간 부자간 화해를 하며 눈물 흘리는 칼 역을 맡은 제임스 딘.


반항적이고 제멋대로 거칠게 행동하는 칼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은 아론의 약혼녀만이 아니리라.


살리나스 농장 지대의 끝 모를 양배추밭과 흐드러진 겨자꽃 물결은 오래전 화면에서나 이제나 그 풍경 그대로라 반가웠고.


내가 저고리 앞자락에 명찰과 손수건을 달고 다니던 때 그는 포르셰를 타고 질주하다가 24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는 사실.


그게 도무지 믿기지 않을 만큼, 죽었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제임스 딘,


삐딱한 자세로 특유의 곁눈질을 하는 거대한 광고판이 선 사고 장소를 찾았던 기억도 새롭다.

캘리포니아 중부, 지평선 멀리까지 이어지는 살리나스 농장지대를 한참토록 달려갔다.


세계의 샐러드 볼(Salad Bowl) 답게 양상추 청경채 로메인 치커리 너울대는 채소가 한밭자리씩.


차창 내리니 셀러리 향이 상큼하게 풍겨왔다.   


곳곳의 낮으막한 구릉 휘덮다시피 한 포도밭, 달려도 달려도 이어져 진력나게 스쳐 보냈다.


캘리포니아 센트럴 코스트 와인 산지에 걸맞게 2백 여개 와이너리가 산재해 있는 곳이다.


이번엔 가로 양 켠 따라 죽 늘어선 밀밀한 과수원 길 한정없이 달렸다.


획획 쏜살같이 내달리는 바람에 어떤 과목인지는 구별할 재간이 없었다.


어림짐작으로도 오렌지나 사과나무는 아니라서, 유추컨대 아몬드나무 아닐까 싶었다.


적막한 황야와 전원풍경이 번갈아 나타나던 101번 프리웨이에서 루트 46으로 옮겨 타고 얼마 후.


동쪽 방향으로 달리다가 언뜻 '제임스 딘 추모 교차로' 싸인판이 보였는데 그만 후딱 지나쳐버렸다.  


영화배우 제임스 딘은 표현 그대로 혜성처럼 나타났다 사라진 전설 같은 반항아 아이콘이다.


그는 1931년에 태어나 1955년 스물넷 나이로 요절했다.


내가 겨우 국민학교 1학년 때 세상 뜬 오래전 사람인데, 이처럼 생생하게 기억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여전히 젊은 그도 살아있었다면 구십 대, 과히 거리감 느껴지지 않건만 그는 진작에 신화가 됐다.


스피드광인 그는 캘리포니아 살리나스에서 열리는 카 레이스에 참가하려 루트 46을 달려가는 중이었다.


마주 오는 차량이 교차점에서 41번 도로로 좌회전하는 순간 충돌사고가 일어나 그는 비명에 갔다.


바로 그 장소, 그렇다고 일부러 다시 돌아가 추모 싸인판을 찍어볼 생각까지는 없었다.


사고 날 당시는, 46번이 산 위에서 거의 직선으로 내려오는 길인지라 Blood Alley라 불리는 사고 다발지역이었다 한다.


그가 질주하다 사고당했던 도로상의 커브길과 경사로 등 Cholame 지역 일부 도로망을 수정, 새로운 길이 그의 사후에 만들어졌다.


못 말리는 호기심 천국일지라도 차를 돌려 굳이 사고지점 인근을 확인하고 싶진 않았다.


은색 포르셰 타고 바로 그 도로를 질주하는 딘을 봤다는 운전자가 한두 명 아니라는 괴소문으로도 오싹한 도로가 아닌가.

50년대 중반, 날로 부강해지는 나라 미국 청소년들은 로큰롤 즐기며 밤엔 떼 지어 파티를 벌였다.


몸소 전쟁 겪은 절박한 아버지 세대와는 다른 자유분방한 삶의 유형을 그들은 찾고 있었다.


그때 제임스 딘이 등장, 청소년들 환호작약하는 해방구 같은 영화 <에덴의 동쪽>을 내놓았다.


에덴의 동쪽이 큰 성공을 거두며 한 편의 영화로 제임스 딘은 일약 할리우드의 대스타로 도약했다.


이마에 주름 질 정도로 찡그리며 곁눈질하듯 슬쩍 바라보는 우수 어린 눈빛이 묘한 매력이던 제임스 딘.


그냥 좀 가만 내버려 둬 달라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담배를 꼬나문 채

반항아 이미지로 남겨진 그는 영원한 아웃사이더의 표상이었다.


이어서 그는 영화 <이유없는 반항>을 찍었다.

이 영화는 유작인 <자이언트>와 마찬가지로 그의 사후 개봉돼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젊은 세대 청춘들은 단숨에 그의 행동, 패션, 일거수일투족에 매료당했다.   


열광하는 우상으로 떠오른 그는 이미 스타로서 정상가도를 치달았다.


인기 절정인 제임스 딘이 몰았던 차종은 포르셰 550 스파이더, 납작하니 디자인 매끄러운 은색 오픈카였다.


독일산 스포츠카인 포르셰 550 스파이더는 알루미늄 바디 등 획기적인 신기술로 경량화에 성공한 신차였다.


그 덕분에 1953년 파리 모터살롱 데뷔 이후, 각종 로드 레이스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당시 기준으로야 놀라운 성능을 보여줬으므로 명성 역시 공고히 쌓였다.


포르셰는 애초부터 레이싱 경기용으로 550을 개발했으며 이후 순조로이 양산 판매됐다.


제임스 딘은 애마 550 스파이더를 몰고 여러 로드레이스에 출전 우승도 몇 차례 거머쥐었다.


평소 스피드를 즐겨왔던 제임스 딘은 그날 살리나스를 향해 캘리포니아 46번 도로를 신나게 달렸다.


옆좌석엔 독일 포르셰에서 온 정비사가 앉아 있었다.


캘리포니아 파소 로블레스 못 미쳐 41번 도로와 46번 도로가 교차하는 지점을 달리다

그는 스물세 살 젊은이가 모는 포드 세단과 정면 충돌했다.  


사고 시 제임스 딘은 경추 손상으로 유명을 달리하였으나 차 밖으로 튕겨 나간 정비사와 포드를 운전하던 맞은편 차량 청년은 부상 정도 입었다.


스포츠카로 45마일 존에서 65마일로 달렸다면 미친 듯 빠른 스피드는 아니었으니

어쩌면 그것이 그의 운명이었던가.   


몰아의 한순간 전신 불태우고 홀연 사라져 버린 격정의 . 이윽고 時空 텅 빈 적요.


신화가 된 세기의 반항아 제임스 딘, 그러나

찰나에 소진시켜 버리기엔 삶은 경건하고 준엄한 것인데.

노을 내리는 도로 달리며 제임스 딘 얘긴 이제 그만, 좀 전에 지나온 과수 품종으로 우리는  화제를 바꿨다.

제임스 딘이 마지막으로 떠나간 길 기억을 애써 떨쳐냈는데 의외의 장소에서 다시 그를 만났다.

근동에서 재배되는 과목 수종이 대체 뭔지 궁금증도 풀어볼 겸 46번이 33번 국도와 만나는 대로변 블랙웰스 코너에 위치한 마켓에 들렀다.

주유소를 겸한 제법 규모 큰 가게였고 길가에 제임스 딘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벽 한 면 가득 제임스 딘 사진이 붙어있기에 뜬금없이 웬 제임스 딘? 했더니 그가 사고당하기 직전 이 가게에 들러서 사과와 우유를 샀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암튼.  

1921년도에 주유소로 출발했으며 카페와 대형 식료품 가게가 딸렸으니 있음 직한 사연이긴 하다.

그 집에서 알려준 바에 의하면 인근 길 양 켠 과원에 들어찬 키 낮은 나무는 피스타치오나무였다.  

캘리포니아가 피스타치오 98%를 생산하며 특히 이 주변이 피스타치오 주산지라 했다.

광장같이 너른 가게에는 지역 특산물인 와인과 피스타치오, 이몬드가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아몬드 한 봉지 사들고 나와 어둑신해진 길을 부지런히 달리는데 이번엔 또 다른 진경이 나타났다,

컨 카운티 허허벌판에 펼쳐진 유전지대였다.

영화 자이언트 한 장면처럼 석유시추 펌프인 Grasshopper, 일명 메뚜기가 떼거리로 출몰했다.

원유를 펌프질 하여 뽑아 올리는 기계가 연신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하는 이색진 풍경은 노을 속에 아주 장관이었다.

각종 농산물 산지인 베이커즈필드 가까이에 대단지 유전까지 있다니, 과연 캘리포니아는 누런 황금은 물론 초록 황금에 검은 황금까지 골고루 지닌 천혜의 땅 맞네.

집에 도착한 시각은 밤 아홉 시, 캘리포니아 윗동네 두루 누비느라 며칠간 딸내미 수고 무진 많았다.

부산에서 평양까지가 324마일이니 그 거리를 세 번 왔다 갔다 할 만큼 장거리 운전을 한 셈이다.

먼 길 무탈히 다녀오도록 안전운행 허락해 주신 높은데 계신 분께도 무한 감사!

 

https://youtu.be/k4eIflLFIm4?si=FD14sEAkVe6S-EDH

https://youtu.be/YA19V3fQacw?si=l5j0QNIluyk7Lj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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