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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pr 23. 2024

캐너리 로우 사람들

스타인벡

낯선 소리에 잠을 깼다. 끼룩거리는 갈매기 소리였다. 소리의 향방을 가늠하며 동쪽으로 난 창의 커튼을 열었다. 간밤에 빗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는데 여전히 희뿌연 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서는 가랑비가 흩날렸다. 건너편 옥상 난간에 나란히 앉은 갈매기뿐 아니라, 바람 거친 허공을 선회하는 갈매기 무리들이 어찌나 많은지 문득 히치콕의 '새' 한 장면이 겹쳐졌다. 사방 구분이 안 되는 오밤중에 도착한 몬트레이인데, 듣던 대로 바다와 인접한 지역인 게 틀림없었다. 이른 시각 우리는 명작의 산실인 캐너리 로우로 향했다.

미 동부에 헤밍웨이가 있다면 서부를 대표하는 작가는 죤 스타인벡이다. 스타인벡의 소설에는 캘리포니아의 자연과 정서는 물론 시대 상황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몬트레이 여행을 다녀온 다음, 죤 스타인벡의 소설을 영화화한 '분노의 포도'와 '캐너리 로'를 차례로 찾아보았다. 문학작품은 시대의 산물이다. 두 작품 다 경제 대공황 이후,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인의 삶이 가장 피폐해졌던 그 당시가 배경이다.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오클라호마에서 캘리포니아 농장으로 일감을 찾아온 조드(Tom Joad) 가족이 온몸으로 겪어낸 이주노동자의 비참한 생활을 다뤄 그에게 퓰리쳐상을 안겨준 The Grapes of Wrath. 사회의식과 휴머니즘이 녹아있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이 작품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과 결함을 고발하며 가진 자와 권력에 대한 저항을 부추기는 요소가 있다 하여 한 때 금서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진작에 분노의 포도를 읽었지만 영화로 보니, 아무리 공황 때라 하나 노동계층의 고통스러운 삶이 하도 신산스러워 진짜 미국 얘기 맞나? 할 정도였다. 비참한 수용소 군도를 연상케 하는 분노의 포도로 잔뜩 위축됐던 기분을 가볍게 풀어준 것은 캐너리 로였다. 전쟁으로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그 소설을 썼다더니 과연 그랬다. 그 영화에서는 즐겁고 유쾌하면서도 정이 넘쳐흐르는 소박한 군상들이 뮤지컬 장면처럼 개성 넘치게 통통 튀면서 따스한 휴머니즘을 보여주었다. 캐너리 로는 소설로는 접하지 못하고 영화만 봤다. 1982년에 만들어진 영화에서 닉 놀테 (Nick Nolte)와 데보라 윙어 (Debra Winger)가 각각 남녀 주인공 역을 맡아 멋들어지게 호흡을 맞췄다. 두 사람이 춤추는 장면은 특히 압권이다.

세계대전 뒤끝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골목 안 서민들 모두 누추하고 가난하게 살지만, 삶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선한 이웃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 골목에서 유일한 인텔리이며 무한정 사람 좋은 닥은 생물학 연구소를 운영한다, 수완 좋은 장사꾼 같은 리청은 식료품가게 주인인데, 빠꼼이 같고 인색해 보이나 외상에 외상을 주는 야박하지 않은 중국인이다, 목포 선창가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허름하고 비릿한 어항. 팰리스 플롭하우스라는 녹슨 창고에 사는 사고뭉치 맥과 건달패, 매춘업소 베어 플래그를 운영하는 도라 등등 캐너리 로에 사는 하층민들이 좌충우돌 야단법석을 떨며 훈훈한 휴먼 스토리를 엮어간다.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본의 아니게 저지르기도 하는 실수를 용납하고 수용하는 가슴 넉넉한 캐너리 로우 사람들, 남의 실수나 잘못을 보면 눈 불씨고 달려들어 그르다 질타하고 성토하며 용서 못할 흠결인 양 헤집어파는 삭막하고 살벌한 시대라 그들이 더욱 그립다  

몬트레이 해변가에 있는 캐너리 로(Cannery Row)는 한때 통조림 공장이 스무 개 가까이 몰려 있던 거리였다. 두 차례의 대전으로 수요가 폭증하며 통조림 제조업이 번창하자, 일자리를 찾아 많은 이주자들이 모여들었다. 1940년대 어업 중심지이기도 했던 이곳은 어류 남획으로 인해 쇠퇴하였다. 이후 주변 태평양 바다를 국립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하어, 지금은 갖가지 해양자원의 보고가 되었으니 외려 전화위복이랄까. 원래 이름은 오션뷰 에비뉴 (Ocean View Avenue) 였으나 스타인백의 소설 제목을 따 공식적으로 캐너리 로라 개명했다. 과거 통조림 공장 건물들은 내부만 개조해 쇼핑센터와 레스토랑, 호텔, 명품점으로 탈바꿈해 사철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비 그친 아침의 캐너리 로 해변에는 철썩이는 해조음뿐, 바다는 꿈꾸듯 아련하다.  해조류가 파도 따라 넘실거리는 연근해는 무수한 바닷새와 바다사자 서식처이자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낚시의 명소이다. 주변에 위치한 맥아비는 카약을 즐기는 이들에게 인기가 있으며, 산칼로스 해변은 소문난 스쿠버 다이빙 장소로 바닷가 곳곳이 절경지이자 해양스포츠 천국이다.

풍광 빼어난 미 서해안을 따라 달리는 캘리포니아 1번 도로가 지나고 몬트레이 반도를 안고 도는 환상의 '17마일 드라이브 코스'로도 유명한 관광 명소를 품은 Monterey. 1821년부터 1948년까지 캘리포니아의 주도였던 몬트레이에는 캘리포니아 최초의 공립학교, 극장, 신문사 등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곳이 여럿이다. 카운티 내의 살리나스는 세계의 샐러드 볼(Salad Bowl)로도 알려져 있는 농업도시이지만, 바로 스타인벡의 고향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작가에게 헌정된 단 하나의 박물관인 National Steinbeck Center가 살리나스의 메인 스트릿 1번지에 위치해 있다. 캐너리 로우를 비롯해 살리나스 밸리 일대 지역을 Steinbeck Country라 부를 정도로 스타인벡의 후광은 지금도 대단한 빛을 발한다. 2월 27일은 스타인벡 생일이다. 지난 1979년 2 월 27 일 작가 탄생 77 주년을 기려 Steinbeck의 얼굴이 들어있는 기념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 한다. John Steinbeck은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불만의 겨울 외에 에덴의 동쪽 등 다수의 저서를 남기고 1968년 뉴욕에서 심장병으로 66세 나이에 세상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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