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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대의 봄은 화사하기보다 삭연했다

by 무량화

치열한 저항의 역사가 골골에 새겨진 충절의 고장 동래다.

왜군이 조총과 화살로 무장하고 바다를 건너 쳐들어 온 것은 1592년 봄이었다.

정발 장군이 지키던 부산진성을 함락시키고 적들은 동래읍성을 향해 파죽지세로 몰려들었다.

읍성 안에는 동헌 장관청 객사 등 관청과 교육기관인 향교가 있었으며 동래부에는 4~5천 명의 주민들이 거주했다.

동래읍성에는 동서남북을 지키는 네 개의 문이 있었으며, 높은 곳에는 적의 동태를 살피는 장대가 있었다.

장대에서 아래를 굽어보니 왜적들이 불개미 떼처럼 동래부를 향해 쳐들어 오고 있었다.

부사는 성민들을 불러들인 다음 사대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창칼 든 병졸을 도와 백성들은 낫 곡괭이까지 들고 결사항쟁을 벌였으나 끝내 부사와 성민들은 격전 끝에 순절하고 말았다.

선조는 임란 초기에 왜군을 막지 못한 책임을 물어 동래 도호부를 현으로 격하시켜 버렸다.

그로부터 백여 년 지나, 임진왜란 당시 허물어진 채 방치된 성을 영조 때 크게 증축시켰다.

나라를 빼앗기고 일제강점기를 지나는 동안 서서히 폐허가 된 성을 2000년대 다시 복원시켰다.



나라의 관문으로 임란 초기 군관민이 벌인 항쟁사만이 아니라 부산 항일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던 동래다.

오늘 찾았던 곳은 동래성 장대길 따라 마안산(馬鞍山) 서쪽 능선에 솟은 동산 위의 서장대다.

가벼이 산책하듯 휘적휘적 걸어 동래사적공원을 빙 둘러 돌아보는 역사탐방 코스였다.

서장대 가는 도중 어느 집 뜨락에 핀 개나리꽃 명자나무꽃을 반가이 만났다.

도로변에서 동백꽃 붉은 꽃송이, 만개한 키다리 목련화도 보았다.

산길에서는 호젓이 핀 진달래 연연한 꽃 이파리와 조우했다.

숲길로 접어들자 역시 유다른 기운이 느껴졌는데 청청한 기개만이 아니었다.

밋칠한 편백나무뿐 아니라 여느 산과는 달리 소나무조차 올곧게 죽죽 뻗어있었다.

마치 선열들이 지켜낸 숭고한 충절의 가치를 기리듯 나무란 나무는 한결같이 대나무처럼 반듯했다.



해발 400여 미터인 마안산이나 이름에 나타나듯 말안장처럼 두 개의 봉우리가 있는 산이라 제법 오르내림이 심한 편이었다.

산책로로 잘 다듬어진 황톳길 구비 돌아 허물어진 성터를 지나자 저만치 매끈한 화강암 성곽이 깃발 휘날리며 나타났다.

언덕 아래 안온한 터에 자리 잡은 장대(將臺)는 한창인 매화 거느리고 오연스레 서있었다.

헌데 건물 외형이 어쩐지 낯설다.

날아갈 듯 추켜올린 처마 선도 그렇고 정자처럼 팔각도 아닌 사각진 이층 건물은 생경스럽다.

심지어 화들짝 피어난 매화까지 분위기 미묘하게 만들어 잠시 뜨악했다.

솔직히 왜색 느낌마저 드는 게 언뜻 사각형 건물인 일본 금각사가 겹쳐졌다.

설마 왜적과의 항쟁 역사를 기억하고자 만든 장대에 무슨 억하심정으로 일본 냄새야 풍기겠는가.

알고 보니 그럴만한 당연한 이유가 있었다.

장대는 조망의 기능 고려해 성곽 일대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높은 장소에 세운 건물로 장수의 지휘본부이자 장졸들 훈련시설을 겸하는 곳.

따라서 공간 확보가 용이치 않아 장대는 장방형도 있으나 이처럼 정방형으로 짓는 경우 흔하다는데 이런 건물은 초면이라 낯설었던 듯.

매화 난분분 꽃잎 휘날리는 자취가 왠지 4백 년 전 낙화한 백의의 동래 성민들만 같아서인가.

화사한 서장대의 봄은 눈부시게 화사할 수 없이 못내 삭연하기만 했다.

환한 벚꽃이 서장대를 밝히고 있건만 이래저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게 세상사 흥 돋울 일도, 재미질 일도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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