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하늘에 둥근달이 떠올랐더군요.
보름이라, 그렇다면 물 쭉 빠진 바다에 가봐야겠구나 싶더라고요.
그새 물때 아는 갯사람 다 됐나 봅니다.
늦은 아침을 브런치 삼아 먹고 설랑 비닐봉지 챙겨 오후 한시쯤 바다로 향했습니다.
시퍼런 물결 출렁출렁 바닷물은 아직 빠지지 않았더군요.
파도 소리 들으며 갯바위에 걸터앉아 노래도 부르다가 모랫벌에 이름을 써보기도 했지요.
그래도 쉬이 썰물시간이 다가오지 않기에 해수욕장 방향으로 후적거리며 걸었습니다.
백사장 지나 산자락 아랫길을 걷다 보니 공터 펜스에 구기자 덩굴이 무더기 무더기 우거져 있더군요.
와우~심봤당!
옛날부터 불로장생의 영약으로 알려진 구기자에 얽힌 전설이 그럴싸하지 않던가요.
진도 어느 마을에 유난히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아 연유를 찾아봤더니 공동으로 사용하는 샘 옆에 구기자 고목이 샘돌 사이마다 뿌리를 뻗고 있더라지요.
처음으로 우리 집을 지녔던 대구에서 담벼락 따라 빙 둘러 구기자 줄기를 꺾꽂이해서 손수 심었기에 더욱 정겨운 식물인데요.
구기자(拘杞子)는 열매를 이르며 잎새는 천장초라 하고 뿌리는 지골피(地骨皮)라 하여 약재로 쓰이고요.
관목으로 분류되지만 나무 형태라기보다 가느다란 줄기가 쭉쭉 뻗어 나와 덩굴 숲을 이루는데요.
눈과 귀를 밝게 하며 근골을 튼튼하게 하고 목이 건조한 증세를 완화시키는가 하면 피를 맑게 해준다고 알려진 구기자이지요.
구기자 잎에는 비타민 C, B1, B2, 단백질, 루틴이 들어있으며 엽록소 성분은 간의 해독작용을 돕는다 해요.
그 귀한 구기자나무가 날 기다렸다는 듯 줄기마다 새순 파릇파릇 돋아나 한들거리고 있었어요.
새로 난 어린잎을 훑어서 봉투에 담았지요. 살짝 데쳐 나물로 무치면 달큰쌉살한 맛이 독특하거든요.
다음번엔 덖어서 찻잎으로 쓸 거리를 채취할 생각이고요. 이러니 심봤다! 소리가 절로 나오는 거지요.
가을 되면 열매도 딸 수 있지 싶어요. 누군가 일부러 심은 게 아니라 유휴지에 자생하는 구기자나무 같았거든요.
한옆엔 싱싱한 돌나물도 소복 돋아있어서 한줌 뜯어와 새콤하게 무쳤답니다.
이제는 썰물이 밀려갔을 듯해 방파제 쪽으로 갔습니다.
언덕길에서 물질 마치고 귀가하는 해녀들을 만났는데 수확물이 묵직해 뵙디다.
내일 아침엔 그녀들 잠수해서 작업하는 걸 보러 와야겠다 싶으니 목표가 있어 벌써부터 신나네요.
물 완전히 빠진 바닷가에는 동네 사람들이 들어가 미역을 따고 있더군요.
얼른 나도 소매 걷어붙이고 한 끼 먹을 만치의 돌미역을 끊은 다음 까사리와 톳을 조금 뜯었고요.
본격적으로 소라랑 보말을 잡기 시작했지요.
물가의 돌을 들추면 돌 표면에 바짝 붙은 고동이 물을 찌익 내뿜으며 물속으로 떨어져 버리는데요.
크기를 보고 적당하면 물속에서 건져 봉투에 넣는거지요.
얏호~ 심봤당! 소리가 또 터져 나왔어요. 이번엔 제법 굵은 소라를 그것도 한꺼번에 둘씩이나 횡재한 거였어요.
허리 굽히거나 쭈그리고 앉아서 하는 일인데도 힘들기는커녕 재미 진진해 두서너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리는데요.
갯바위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 종아리 단단해지도록 긴장을 해야 하니 쉬운 일은 아닌데도 하냥 즐거운 놀이 시간.
일용할 양식 적당량 채워지자 그쯤에서 욕심부리지 않고 바다를 뒤로했지요.
무상으로 얻은 자연의 선물을 들고 룰루랄라 콧노래 부르며요.
수렵채취 시대 원시부족의 기억 더듬으며 자급자족 생활 흉내 내면서 노니느라 어수선한 누항사 까마득 잊을 수 있었지요.
저녁 식탁은 해녀 집에서 산 전복 곁들여 물미역 초장 무침에 삶은 보말 한 접시까지 용궁 잔칫상이더라고요.
정식 상차림이 아니라 그냥 도마 놓고 살짝 익힌 전복 쓱쓱 썰어서 초장 찍어, 마침 안주 좋으니 와인도 빠지면 섭하지요.
근데 혹시 사진 속 전복, 바다에서 득템한 줄 헷갈리셨던 건 아니겠지요? ㅎ
진수성찬에 와인 한잔 곁들여서 그렇게 오늘 하루도 축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