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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렁모루 가는 길

by 무량화


서귀포로 거주지를 옮겼다.

와서 교통 좋은 중심지에 자리 잡았다.

날씨만 궂지 않으면 동으로 서로 한라산 너머로 마냥 쏘다녔다.

가보고 싶은 곳은 어디든 먼 거리 마다하지 않고 뻔질나게 찾아다녔다.

어물거리다 오전 어중간하게 지났거나 자투리 시간만 남은 경우는 마을 근처 여기저기를 훑었다.

그러다 서홍팔경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서홍동에 있는 여덟 곳의 절경지라, 작정하고 한 곳 씩 섭렵해 나가기로 했다.

목련이 벙글 무렵의 일이었다.

돌아다녀 보니 한동네에 거의 모리모리 모여있었다.

하루 만에도 완파할 수가 있을 거 같았다.

다만 한 곳, 위치와 사진을 들이밀어도 다들 모른다고 했다.

들렁모루 자리는 묘연하기만 했다.

벚꽃이 흐드러질 무렵에도 서홍동을 누볐다.

마을 노인에게 물어봤지만 역시 고개 절레절레, 들렁모루는 여전 오리무중.

등잔 밑이 어둡다 했던 대로다.

서포터스 한 분이 들렁모루 위치를 안다면서 혼자 가기 휘휘하니 앞정서 주겠노라 하기에 탐방에 나섰다.



서귀포시 서홍동, 서홍동은 서귀포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인 '홍로'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마을 모양이 봉우리로 둘러싸여 있어 지형이 화로 같다고 하여 홍로(烘爐)라고 불렀다.

홍로마을은 행정구역 개편을 하며 서홍동, 동홍동으로 나뉘었다.

솜반천을 지나고 한참 언덕 거슬러 오르자 민가가 끝나며 비닐하우스 귤 농장만 계속 이어졌다.

우측으로는 한낮에도 으슥한 숲 속, 천지연으로 흘러갈 서홍천 계곡이 곳곳에 웅덩이를 드러냈다.

의외로 깊고 후미진 곶자왈 닮은 산기슭에서부터 들렁모루 가는 길은 나 있었다.


버젓이 산책로 안내도와 표식도 있건만 마을사람들이 통 모르다니?


하긴 서홍동 지형이 위로는 치유의 숲이 있는 산록남로 아랫녘 산지를 끼고 길줌한 터라 솜반천 근처에선 감감할 만도.



'들렁'은 제주어로 속이 비어 있는 바위를 의미하고 '모루'는 동산을 뜻한다고 한다.

고인돌 형상의 번쩍 들린 바윗돌인 들렁모루, 오래 흠모해 온 님을 만나러 가듯 마음 은근 설렌다.

들머리부터 범상치 않아 굵직한 맹종죽 군락 이뤄 바람결에 서로 부딪칠 때마다 삐이꺽 노 젓는 소리를 냈다.

죽순을 얻기 위해 독림가가 재배하는 대나무라서 죽순 대라고도 부르는 맹종죽이다.

대밭 지나자 어둑신한 잡목림 잠시 이어지다가 삼거리 산길이 산책로 안내판 앞세운 채 조붓한 흙길 불현듯 나타났다.

푸른 이끼 덮인 숲의 경사로 약간 휘돌아 오르자 앞이 훤해지며 전망대가 보였다.

정상 바위 주변에는 상록의 석위, 마삭줄, 왕모람, 자금우 등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고란초과의 상록 여러해살이 양치식물인 외뿔석위는 잎 뒷면이 마치 스웨이드 가죽 같은데 제주에만 있는 희귀 식물 같다.

전망대에 오르니 같은 높이의 들렁모루가 바로 옆, 저 아래로는 서귀포 앞바다 푸르게 펼쳐졌다.

멧돼지 형상과도 같은 큰 바윗장이 앞으로 불쑥 튀어나왔는데 콧잔등 부위에 친절하게도 산새들 물놀이터를 마련해 뒀다.

한눈에 또렷이 드는 낯익은 정경들.

지귀도~제지기오름~섶섬~문섬~삼매봉~범섬~고근산~각시바위~송악산으로 이어지는 파노라마 멋지다.

이리 감탄사 연발 터지는 훌륭한 조망터라 그리도 품섶에 꼭꼭 숨겨놨던가 보다.

먼 데서 낮닭 우는소리 들려와 나른해지기에 바다 쪽 향해 심호흡 여러 번 한 다음, 들렁모루에 손 흔들어주고는 하산했다.

서홍 8경은 하논 분화구· 솜반천· 흙담 소나무· 온주밀감 시원지· 성당 녹나무· 지장샘· 앞내 먼나무· 들렁모루를 이른다.


뒷마당처럼 누빈 그곳도 천천히 소개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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