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무얼 하려고 했지? 왜 여기 이러고 섰지?
도대체 올라가는 중이었나? 내려가는 참이었나?
층계 중간쯤에 멀거니 서있게 하는 이 멍하고도 난감한 상태,
참 얄궂기도 하고 고약스럽기도 하다.
나이 들수록 머리도 녹이 슬어 총기가 흐려진다고 한다.
판단력도 무뎌지고 기억력도 낮아지게 마련이다.
하기야 나이 관계없이 젊은이들도 깜빡깜빡하는 증세가 영 없진 않다고들 한다.
그게 엄살이나 과장된 호들갑만도 아닌 것이, 새파란 애들도 단단히 일러두고 맡겨놓은 일을
어이없이 까먹는 실수를 하기도 하니까.
층계에서 우두망찰 서있기도 하는 내 경우, 단순 건망증이야? 초기 치매 중세야?
은근 겁을 먹고는 혼자 고민하다 건망증 자가 진단 테스트까지 슬그머니 해보는 사람들 중 하나다.
홈디포에 나사못을 사러 갔더니 바로 옆에서 자물쇠 세일을 한다.
50% 세일 광고에 내심 혹해서 기웃거린다.
열쇠 없이 금고식으로 번호를 맞춰서 돌려 여는 자물쇠다.
밤낮없이 열고 살다시피 하는 쪽문에 걸까 싶어 하나를 집어 든다.
계산대로 향하던 발길이 멈칫, 아서라~ 언젠가 벌겋게 녹슨 채 매달린 자물통을 할 수 없이 쇠톱으로 잘라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거의 뻔한 일이다.
비밀번호를 다이어리에 야물게 메모해 두었다 해도 오랜 시일이 지나면 아리송하니 이게 무슨 번호지?
고개 갸웃대며 긴가민가해질 터.
열쇠 번호라고 써놔도 그때쯤엔 다이어리를 교체해 아예 흔적조차 남지 않을 경우도 생기겠고.
인터넷을 하면서 여기저기 웹사이트마다 각기 다른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갖고 드나들게 되었다.
각 포털에 개설한 메일이며 용도에 따른 블로그며 카페에다 페이스북까지 그럭저럭 대여섯 개가 넘는다.
인터넷 쇼핑은 안 하지만 인터넷 뱅킹 서비스는 이용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처음부터 일률적으로 통일해서 쓰지 않는 담에야 아이디나 비번을 여럿 사용하고 있다고 보면 맞는다.
게다가 메일은 6개월에 한 번씩 사용자 정보보호 차원에서 아이디나 비번을 바꾸라고 채근하는 바람에 더욱 어수선하게 만든다.
그럭저럭 내가 보유한 인터넷 비밀번호가 꽤 여럿 된다.
요즘엔 e-메일 어드레스의 경우, 보안 유지를 위해 6~8자리의 비밀번호를 쓰도록 하는 게 보통이다.
게다가 수시로 보안 몇 단계로 변경하라 보채대지만 내 두뇌 암기 용량을 아는지라 자꾸 바꾸지는 않는다.
뭐 그리 대단한 비밀이나 정보가 담긴 메일을 주고받는 입장도 아닌 데다 나중엔 긴가민가 아리송하니 머리 복잡해지며 자꾸 헷갈리기 때문이다.
어쩌다 가끔 사용하는 비밀번호는 잊기가 쉽지만 그래도 거의 날마다 쓰는 번호는 잊을 리가 없어 다행.
여러 개의 비밀번호를 착오 없이 외우는 내 머리가 때론 신통방통, 기특하기도 하다. ㅎ
왜냐하면 전화번호라든가 기타 숫자 외우기는 영 젬병이기 때문이다.
아들네 전화번호 외엔 암기하는 전화번호가 없을 정도의 실력이니 말해 무엇하리.
미안한 노릇이지만 딸 전화번호도 수첩을 뒤적여야 하는 수준이다.
그쪽에서 날마다 전화를 하니 구태여 내가 번호를 누를 필요가 없기도 하여 더 태무심인지도.
하긴 우리 집 전화번호도 갑자기 물으면 막혀버리고 만다.
그럼에도 두세 개의 이 메일과 블로그 비번 등 숫자로 된, 그것도 복잡하고 묘한 번호 조합들
꽤 여럿을 혼동하지 않고 잘 챙기고 있으므로 아직은 괜찮은 수준이군, 하며 흐뭇해한다.
나이도 있고 한데 그래도 아직은 기억력이 꽤 쓸만하다고 자화자찬으로 격려.
더구나 요즘은 로그인을 해야 열리는 사이트들이 제법 된다.
필요에 의해서나 혹은 소통의 창구라서 회원 등록을 하려면 아이디와 비번을 만들어야 한다.
문제는 자주 들락거릴 적엔 아무 걸릴 것이 없으나 한참 뜸하다 들어가려면 비번이 그만 헷갈린다는 점이다.
오리무중, 이것저것 비번을 넣어보나 요지부동이다.
잃어버린 비번을 찾느라 한참 어물대다 보면 입구부터 원천봉쇄, 출입이 통제된다.
이 점 나만의 고충이 아닌 모양이다.
미국에서 인터넷 사용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비밀번호를 조사해 발표한 적이 있다.
그들이 선호해 상위권에 든 인터넷 비밀번호는 퍽도 단순했다.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123456'과 'password'로 조사됐다.
3위와 4위는 '12345678'과 'lifehack'였으며 5위는 알파벳이 시작되는 컴퓨터 자판 상단 왼쪽부터 6자리까지인 'qwerty'였다.
지난해 온라인상에 공개됐던 핫메일 이용자 1만 명들이 사용하는 비밀번호 1위도 '123456'이었다.
비번을 만들 때 잊지 않으려고 마치 장난처럼 1234식으로 쉽게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자칫 비번 노출로 뜻밖의 피해를 입을 수도 있으므로 나름 남들이 생각해 낼 수 있는 쉬운 조합은 피하게 마련이다.
대신 자신 있게 사용하기로는 결혼기념일이나 남자들의 군번도 그 가운데 하나.
반면 자신의 생일이나 집 전화번호 적용은 기피해야 할 점이라고 주의를 준다.
하긴 해킹 대상이 될 만큼 특출날 것도 없긴 하나 요즘 세태가 좀 무서운가.
작정하고 덤비는 정보 도굴꾼에게야 허점이 뚫리기 마련이라지만 대단한 기밀 보유자도 아니고...
추억은, 함께 한 공간 속에 남아있던 이미지를 기억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 이미지 가운데 깊이 각인된 하나를 들춰본다.
70년대, 결혼 후 집을 장만하고도 두 해를 기다린 끝에 드디어 우리 집에 청색전화가 설치되었다.
전화를 첨 놓은 그때의 기분이 어찌나 좋았던지 그 전화번호는 자다가 물어봐도 술술 흘러나오는 숫자 배열로 굳어졌다.
근 사십 년 전의 그 번호가 지금 내 비번에 전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추가되는 영문이나 숫자가 더 있긴 하지만.
그 외 여러 개의 패스워드가 마련되어 있음에도 드나드는 곳곳마다 각기 다른 비번들을 헷갈리지 않고 그런대로 출입을 용케도 잘한다.
이만하면 기특한 나의 기억 창고가 아닌가.
아직까지 만사 오케이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기억세포들을 격려해 주며 자상스레 보듬어주려 한다.
무엇보다 이 귀한 보물 제대로 유지하도록 허락해 주신 하늘에 깊이 감사드린다.
tip: 우리의 기억을 저장해 두는 곳이 뇌 양옆에 있는 해마라는 기관입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은 모두 해마에 기억이 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해마의 뇌신경세포들은 조금씩 파괴가 되는데요.
이것은 후천적 노력으로 예방이 가능합니다. 기억 세포마다 여러 개의 신경돌기가 존재하는데요. 후천적 노력을 많이 한다면 신경돌기들이 계속 생성됩니다. 이것이 기억세포의 역할을 대신하기 때문이랍니다.
후천적 노력으로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는데요.
1 메모 : 우리 뇌의 장기기억 용량은 무제한입니다. 하지만 단기기억 용량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오래 기억해 둘 필요가 없는 단기기억들이 많으면 머릿속에서 정보가 엉켜 더 기억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기억해 둘 필요가 있는 것들은 메모로 적어 따로 보관하는 것이 좋습니다.
2 독서 : 책을 읽는 것은 내용의 전후 맥락을 연결해 읽게 되므로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전환시켜 줍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기억력이 향상됩니다.
3 운동 : 걷기를 일주일에 3회 이상 30분 이상하게 되면 뇌의 활동력이 3배 이상 증가합니다. 걷기 운동을 하면 운동 경추가 자극되어 뇌 혈류가 2배 이상 증가하는데요. 혈류 공급이 원활하면 뇌세포의 감소가 줄어들어 기억력을 증가시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