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해안선 길이가 가장 길다는 하도리.
하도리가 해녀마을인 이유를 알만도 했다.
찻길에서 바닷가와 이어진 마을길로 접어들었다.
이곳은 제주의 농업유산인 밭담이 잘 보존돼 있는 지역으로 ‘하도리 밭담길’이란 이름이 붙어있다.
밭담길은 어디서나 참 정겹고도 아릿한 풍경이다.
제주 밭담을 잇대놓으면 그 길이가 지구 반 바퀴를 돌 만큼 길다고 들었다.
그중 하도리 돌담 길이가 제주에서 젤로 긴 코스라는데 유감스럽게도 밭담 축제는 월정리에서 선점하였다.
오래전에 상연된 로드 무비 서편제는 잃어버린 우리 것인 판소리와 한의 정서를 잘 버무려낸 영화였다.
거기서 유독 인상에 남겨진 한 신이 밭담길 걷는 내내 뇌리에서 맴돌았다.
돌담 이어진 남도길 어드메쯤에서다.
소리꾼 가족이 덩실덩실 진도아리랑 부르며 걸판지게 어우러지던 모습 절로 겹쳐졌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음음음 아라리가 났네
사람이 살면은 몇백 년 사나
개똥같은 세상이나마
둥글둥글 사세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이내 가슴속엔 시름도 많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음음음 아라리가 났네.
또한 이 길은 해녀들이 물질과 밭일을 하기 위해 지나다녔던 길이라 숨비소리길이라고도 부른다.
별방진 성내 마을에서 만났던 여든도 한참 넘으신 할망은 애환 서린 이 길을 매번 종종걸음으로 걸었으리라.
현재 내 걸음새야 한갓지게 꼬닥꼬닥 유유자적 거닐지만 너나없이 일평생 살아온다는 게 어디 그리 녹록하던가.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 이내 가슴속엔 시름도 많다 /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지금 세월엔 별로 그렇지도 않다지만 우리네 정서를 대변하는 감정이 '한'(恨)이라는, 그것도 한 서린 정서라는 걸 진도 아리랑이 대변한다.
들쑥날쑥 꼬불꼬불 울퉁불퉁 끝 모르게 이어진 밭담길 따라 걷노라면 주유천하며 풍류 놀음 즐길 기분이 아니 든다.
누구라도 오히려 인생에 대한 숙고 거듭하게 만드는 길이 하도리 밭담길 아닐지.
요사이 제주도가 안달이 났다.
'관광제주'에 관광객이 형편없이 줄어서이다.
한편 제주관광의 현실은 놀고 먹자판으로 변질되었고, 물가 레전드 제주도라며 바가지요금에 질려 육지인들 다신 안 오겠다는데.
솔직히 까놓고 보면 물가가 비싸진 이유?
SNS 검색하며 인스타 맛집. 블로그 맛집만 찾아다닌 거 아님?
말은 그럴싸~내돈내산이라지만 뻔한 간접광고인 거 알고도 남을 텐데?
큰 식당이고 대형 숙박업소 쥔장들 괜히 이유 없이 인플루언서에게 최상 최고 접대해 줄까.
현지에서 삼 년 넘어 살면서 저렴하고 맛있는 집 얼마든지 찾아다니며 아무 불평 없는데?
단지 식당밥보다 집밥을 백배 선호하는지라 부득이한 경우에만 식당을 찾는 편이지만.
양식 일식 중국식 이태리식 그리스식 등등은 별식에 해당하고 한국인이라면 맨날 먹는 게 한식이다.
날마다 임금님 수라상 받잡는 것도, 12첩 반상 차림 양반님네 한상도 아닐진대 보통은 밥에 탕이나 구이에 김치에 나물반찬이면 된다.
맛? 천차만별인 입맛이란 게 또 극히 주관적이다.
나아가 좋아봤자 맛이라는 게 거기서 거기다.
더군다나 한 끼, 죽음 앞둔 마지막도 아닌데 별 의미도 없다.
아무튼 코로나 특수로 호황기 누리던 영화 사라지고 갈수록 현저하게 관광객이 줄어들자 화들짝 놀란 제주.
가성비 높은 제주관광 만들겠다며 도 차원에서 바가지요금 근절에 앞장서겠다 선언하고 나섰다.
제주도 행정당국까지 들고일어나 대책회의다 개선책을 내놓는다, 이리 난리법석인데.
유네스코가 인정한 자연환경 더없이 아름다운 섬 제주다.
인과관계를 따져올라가 보면 딱 하나, 주객이 전도된 현상 때문이다.
현지 명소 관광보다는 소문 짜하게 난 카페 순례하며 사진명소 현장에서 저마다 인증샷 남기기 위해 그간 계속 몰려든 거 아님?
그도 아니면 이십만 원짜리 통갈치 식탁 위에 길게 누워있는 사진, 지글지글 돼지고기 화로에서 굽는 동영상 찍으며 기분파 된 적은 없고?
문제는 허세부리기 좋아하는 허풍선이와 관종들이
실질적 소비는 안중에 없고 과시적 상대적인 소문난 장소만 찾다가 바가지 덮어쓰고 고물가 운운하는 거 아닐지.
여행은 어차피 즐거운 소비라면서 지갑 열러 온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러면서 위세 좋게 카드 직직 그어댔다.
현실 자리로 돌아와 꿈같은 환상에서 깨어나자 지출내역에 깜놀, 뒤통수 맞았다며 제주는 바가지섬이란 오명을 덮어씌웠다.
스스로 자청해서 덫에 걸려 과소비해 놓고 바가지에 고물가 타령이다.
순전히 내탓이오, 내탓이오다.
과다수요가 있으니 괴한 가격도 생기는 법, 그래도 좋다며 가격 고하 따지지 않고 먹고 나서 본전 생각?
그러게 기분파다이 팍팍, 딱 졸부 수준 같은 선택하기 전에 한번 생각 좀 하지.
먼저 인생에 대한 숙고 거듭하게 만드는 하도리 밭담길 걸어봤다면 달라졌을까.
거긴 입장료도 없고 장터 부스 같은 건 전혀 없다.
여기도 마찬가지라 하나 더 소개.
https://brunch.co.kr/@muryanghwa/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