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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03. 2024

안덕계곡에 겨자빛 신록 번지고

지난해 시월, 안덕계곡에서 가곡의 향연이 펼쳐졌다.


절경 이룬 자연 품에서 열리는 예술제.


과히 긴 계곡은 아니지만 임팩트 있는 골짜기임에 틀림없는 장소다.


아름다운 풍광과 물소리 이웃하여 천연 바위 위에서 어우러지는 특이한 그날의 공연이었다.

무대도 자연 암반이요, 객석도 의자 대신 사철 풍우에 씻긴 너럭바위다.

이보다 더 자연친화적인 공연을 열 수가 있겠으며 공연자와 관객이 이 이상 더 자연스레 하나 될 수 있을까.

자연조명 외에 조명이라고는 몇 개의 램프, 무대장치가 별도로 없어도 석양빛이 바위를 황금색으로 물들여 신비감을 더했다.

계곡이 동굴처럼 바위벽에 힘차고도 청아한 가락들과 부딪쳐 되울리면서 맑은 울림통 역할을 해 한층 더 경이로웠다.  


이리도 특별한 발상을 한 이가 누구였을까.

안덕계곡에서 예술제를 열, 기발한 생각을 한 기획자는 누구일까.


앞으로 더욱 신선하고 참신한 문화예술 콘텐츠가 계속 시도되고 탄생되기를 바랐던 그날의 공연.




오월, 계절이 바뀔 때를 기다리며 아껴두었던 안덕계곡으로 향했다.

신록 푸르러지면 찾으려 별러 온 곳이다.

벚꽃 지고 어느덧 연둣빛 눈엽 깨어나 세대교체 서두르기에 연한 새잎들 마중하러 갔다.

초입부터 깎아지른 수직의 암벽인 주상절리대가 압도해 왔다.

반반하게 대패질 잘 된 대형 각목 다발로 서있는 절리대 표면은 매끈하고 따스했다.

화창한 봄볕이 수목 우거져 응달진 골짜기까지 고루 스며든 모양이었다.

널펀펀한 암반 쓰다듬으며 계류 흐르고 계곡 양편 둘러싼 기암괴석 즐비하게 시립해 있

는 곳.

안덕계곡 상록수림은 국가지정 문화재 천연기념물 제377호다.




안내문 때문일까.

양치식물 너울대는 사이로 반 벌거숭이 고대 부족이 툭 등장할 거 같았다.

토테미즘 같은 거석신앙을 받드는 원시인들과 곧장 조우할듯한 분위기.

아니나 다를까, 말로만 듣던 그늘집 터가 연달아 모습 드러냈다.

바위 그늘에 자연적으로 생겨난 반 동굴 형태의 주거지가 아아아~외치듯 크게 입을 벌리고 나타났다.

겨우 눈비나 피할 자그마한 공간이지만 그래도 집터여서인지 아늑해 보였다.

캐년랜즈에서도 비슷한 모양의 옛 주거지를 본 적 있는데 여름철 그곳은 완전 모기 소굴이었다.

널찍은 했으나 눅눅하고 침침하던 캐년랜즈와는 달리 여기는 옹기종기 서너 명 살림터로는 깔끔 맞고 밝았다.

생활의 필수조건인 식수도 절벽 틈에서 졸졸 흘러내리니 안성맞춤, 이만하면 거주여건 대충은 갖춰진 장소다.

탐라시대 후기 아치형 주거지로 적갈색 토기와 곡물을 빻는 공이돌이 출토되었다는 이곳.


 
아득한 선사시대를 주제로 한 한국판 SF 영화 촬영지로 쓰임 직한 골짜기다.

빼곡하게 들어찬 상록수 숲에는 담팔수, 보리장나무, 구실잣밤나무, 후박나무, 붉가시나무 등이 군락 이뤘다.

그만큼 어둑신한 계곡은 으슥할 정도로 깊고 그윽했다.

다만 계류가 투명히 맑지는 않았다.

큰비 쏟아져 골짜기 오탁물 말끔히 쓸고 내려간 다음, 계곡 깨끗해지면 다시 찾아오리라.


그때는 신록 녹음으로 짙푸르러 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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