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서 살던 한참 전.
귀가시간이 늦어지는 바람에 서둘다가 엉뚱한 버스를 타고 수정동 산복 도로를 지난 적이 있었다.
이후 일부러 가끔 밤 시간대에 차를 타고는 그 도로 위에 서보곤 했다.
저 아래 내려다보이는 부산역 근처와 남항, 건너 쪽인 영도 조선소와 청학동 인근 불빛 나름 일품이라 그걸 지켜보기 위함이었다.
낮에 보면 올망졸망 이마 맞댄 허름한 집들이 산허리를 뒤덮다시피 한 전형적인 달동네 영세촌이 수정동 초량동이다.
부산역이 마주 보이는 건너편 산지에 피난시절 판잣집보다는 조금 발전한 브록크집(벽돌보다 질 낮은 큰 블록)들이 경사진 골목길 비좁게 따개비 붙듯 다닥다닥 붙어있는 빈촌이기도 했었다.
파리에서 본 아름다운 조명을 대신해, 삶의 현장에서 밤늦도록 땀 흘려 일하며 빚어내는 영롱한 야경을 감상하고자 찾았던 그곳.
도시 기반 시설 보강만으로도 바빠 조경에나 겨우 관심 두었을까 도시조명까지야 그다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던 당시다.
이름 그대로 ‘인체의 배와 같이 산(山) 중턱(腹)을 지나는 도로’라는 뜻의 산복 도로(山腹道路).
산지가 많고 평지가 유달리 솔은 부산인데 육이오 전쟁통에 산지사방에서 피난민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비바람 가려줄 임시 거주지로 판잣집이 마구잡이 들어서자 산복 도로란 것도 생겨나게 되었다.
부산 사투리로 '산 만디'는 산꼭대기이듯, 거처할 곳 없던 피난민들이 경사진 산만디까지 산기슭 따라 점점 올라가며 허름한 집을 촘촘 짓기 시작해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하늘 아래 첫 동네가 된 수정동.
부산항 개항 이후 사방에서 모여든 이주민들이 죽으면 묻히던 공동묘지터였거나 임자 없는 거친 땅에 무허가 판잣집을 짓고 정착하는 피난민들이
늘면서 마을 형태 역시 점차로 커졌다.
그러나 이제는 사통팔달로 교통 편한 시내 요지가 된 데다 번듯한 주택도 많이 들어서, 예전 전쟁통의 남루한 산동네 자취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게 됐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승달만 외로이 떴더라는 금순이 노래 대신 세계로 약진하는 대한민국 제2 도시, 괄목할만한 부산의 도약상이 실로 눈부시다.
위치가 높아 전망 끝내주는 산복 도로만이 아니라도, 이제는 곳곳의 부산 야경이 귀한 관광자원으로 자리매김되기에 이르렀다.
그중에서도 부산항 터미널에서 바라보는 부산항 대교는 시시각각 색상이 변하는 조명발로 가히 황홀경을 빚어낸다.
황령산 봉수대에서 굽어보는 광안대교 야경도 자태 아름다운 부산 명물로 자리 잡혔고, 해운대 밤바다 위에 화려한 꽃수를 놓는 달맞이 길 야경도 볼만하다.
수영만에 오색 찬란히 얼비치는 영화의 전당이며 마린시티 초고층 아파트촌이 만드는 불빛 역시 홍콩 못잖은 명품으로 부산 관광의 한 축을 담당한다.
다대포 바닷가 노래하는 분수대 외에 주변 빽빽이 둘러싼 아파트 단지의 야경, 낙동강 생태공원을 따라 줄지어 선 아파트촌 불빛도 관광지 부산을 키우는데 한몫을 보탠다.
그간 전 국민이 한마음으로 단결해 훌륭히 발전, 성장시킨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다.
모쪼록 흔들림 없이 체제를 잘 지켜나감으로, 강력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옳게 유지시켜서 후대에게 물려줄 수 있게 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