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오름에 오르려고 집을 나섰다.
사려니숲 입구에서 내렸다.
대로변에 주차한 승용차 행렬 끝없이 늘어섰는데 관광버스까지 비스듬 끼어있었다.
한창 시즌이라 다들 꽃놀이 갔으려니 했건만 사려니숲도 외지인들로 초만원이었다.
얼마쯤 숲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마음이 변해 도로 나왔다.
도떼기시장처럼 붐비는 단체 탐방객의 소음이 숲의 고요를 휘저어서다.
붉은오름은 사려니숲길을 통해 오를 수 있으나 실은 붉은오름 입구가 따로 나있다.
한 코스만 더 가면 붉은오름 자연휴양림이 기다리니 그쪽에서 오르기로 하였다.
볕살 좋은 날 일광욕 겸하려 양팔 걷어붙인 채 모자 벗고 대로변 따라 성큼성큼 걸었다.
빨랫줄에 넌 빨래 마르며 햇볕 내음 풍기듯, 기분 좋게 보송보송해지는 이 느낌.
붉은오름 자연휴양림은 숲 안쪽에 너른 주차장이 있기도 하지만 초입부터 사려니숲에 비할 바 없이 한적했다.
왼편짝에 다소곳 온순하게 생긴 오름이 봉긋, 신록의 숲 새새로 산벚나무 꽃 만개해 하얗게 웃고 있는 붉은오름.
자연휴양림일랑 우측에 떨구고 곧장 무장애 나눔숲길 탐방로로 들어섰다.
더할 나위 없이 고즈넉한 숲길, 어쩌다 한둘씩 인기척도 없이 스쳐 지나는 산책객들.
식물처럼 아주 조용한 몸짓들이다.
울창한 삼나무 숲이 자연림으로 연결되는 데크길 외에 나무계단 흙길 탐방로 잘 조성돼 있었다.
평화로운 초록 오름인데 이름이 왜 붉은오름일까?
'썰' 하나는 고려 때 삼별초군과 여몽 연합군이 치열하게 격전 치르며 흘린 핏자국이라 하나 그건 너무 섬뜩.
또 하나는 흙 색깔이 붉어서라는데, 실제 오름 기슭 허물어진 언덕 흙이 붉은 편이라 후자가 맞을 듯하다.
숲길 쉬엄쉬엄 걸어 올라가는 언덕길 내내 풀잎 키 돋우는 소리, 눈엽 피어나는 소리, 새소리, 바람소리가 따른다.
정겨운 이웃들 거느리고 가면서 한번씩 그들 이름도 불러주고 눈맞춤도 하며 걷다 보면 정상 전망대가 금세다.
약간 가파른 오르막이 있댔자 고작 높이 569미터인 오름이다.
그러나 고도에 비해 사방으로 탁 트인 조망권 기가 막힌다.
한마디로 압권이다.
저 멀리 한라산 기슭에는 작은 화산체인 오름이 여러 개 울멍줄멍 산재해 있다.
정면으로는 한라산 장관 아래 물찻오름 말찻오름 마흐니오름 사려니오름이 시봉하듯 자세 굽혔다.
측면에는 절물오름 거친오름 물장오리오름 견월악이 연두색 보자기를 펼쳐놓은 듯한 목장 초지를 둘러쌌다.
풍차가 있는 동쪽 마을은 가시리로, 따라비오름 큰사슴오름 족은사슴오름이며 조랑말공원 유채꽃플라자 정석비행장도 보인다.
둘러보고 또 보고, 봐도 봐도 그지없이 시원한 눈 맛.
그렇다고 마냥 그러고 서있을 수만은 없으니 하산을 시작한다.
내려오는 길, 유난히 눈에 자주 띄는 때죽나무라 녹음 푸르러지는 오월 말쯤 다시 찾을 생각이다.
하얀 종을 닮은 때죽나무 꽃을 보러 그때 다시 붉은오름에 올 것이다.
소재지 : 서귀포시 표선면 남조로 붉은오름 1487-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