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이 좋은 날은 바다 풍광과 마주하는 날이다.
서귀포 앞자락에 펼쳐진 짙푸른 대양과 해안선은 세계 유수의 바다 어느 명승지 못지않게 근사하다.
그중 대평포구에서 바라보는 박수기정의 수직 단애는 명품 중 명품이다.
병풍을 두른듯한 주상절리 암벽이야말로 신의 작품다이 기기묘묘해 눈을 뗄 수가 없다.
하지만 벼랑 오연한 자태는 접근을 불허.
단호한만치 더 호기심을 일바친다.
절벽 아랫길은 열리지 않았으나 절벽 위로 올라가면 산길이 뚫려있다.
언덕 입구에 올레길 안내 리본이 나풀대며 손짓했지만 숲 깊어 어둑신하고 으슥한 터라 모험은 금물이니 아서라 참자! 그냥 돌아섰다.
두 번째 그 언덕에 올라섰지만 역시 망설이던 차, 때마침 단체팀이 오기에 즉각 따라붙었다.
꽃만큼 어여쁜 신록의 숲은 윤기로워 눈이 부셨다.
바윗돌을 쪼아 낸 산길은 비좁고 가팔랐으나 보조 로프가 연결돼 있어 전혀 위험하지는 않았다.
1세기나 원제국에 예속되었던 오래전, 말을 조공으로 바치고자 낸 길이라 몰질(말길)로 불렸다.
목축장에서 살 찌운 제주마를 물길이 열린 포구까지 몰고 와 중국으로 무수히 날랐던 공마로였다.
조공물인 말 떼를 포구로 나르기 위해 절벽 아래위를 잇는 길을 내려고 암벽 바위를 정으로 쪼아서 길을 텄다는 조슨다리 지나며 여러 풀꽃과 만났다.
여린 풀꽃보다 애틋하고 애달픈 제주민의 사연들이 정 자국마다 비애로 스민 길은 아닐지.
몽골 제국은 제주를 직할령으로 삼아 백 년이나 통치했으니 아마도 그때 섬사람들을 동원해서 낸 조슨다리일 거 같았다.
원이 퇴각하자 몰질(말길)은 물질하러 넘나드는 해녀들과 산상 드넓은 평원에 밭을 일군 농부들이 오가는 길이 되었다.
더러는 멈춰서 땀들이면서 난드르 아기자기한 원경을 뒤돌아서 감상하기도 했다.
별로 어렵지 않게 박수기정 꼭대기에 이르렀다.
갯무꽃 흐드러진 산상 길은 황톳길이었다.
박수기정 꼭대기 평원의 삼거리길 우측은 월라봉 가는 길, 왼쪽은 절벽길이었다.
올레객들은 월라봉으로 방향을 잡았으나 며칠 전 다녀온 곳이라 태평양 조망하며 걸으려 절벽 쪽으로 난 길을 택했다.
출입을 금한다는 어떤 표식도 없으니 태무심하게 들어선 길.
몹시 호젓한 숲길이었다.
반가운 으름꽃이 만개해 있기에 여유로이 사진도 몇 장 담아두었다.
얼마쯤 가자 전망대 비슷한 송림에 벤치가 놓여 있었으나 솔숲에 가려 바다는 보이지 않기에 그냥 패스했다.
분명 절벽가에 나무 철책으로 든든히 경계 지른 길 빤히 틔여있건만 자꾸 얼굴에 거미줄이 걸렸다.
그쯤에서 상황 파악하고 재깍 돌아설 것을.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쪽은 지형이 험한만치 위험 요소가 많아 폐쇄시킨 길이라 인적이 끊겼던 것.
호기심은 작열하나 도전 즐기는 모험가는커녕 간이 작아 겁도 많은지라 슬금 소심증에 무섬증이 도지기 시작했다.
저 아래 절벽에서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낯선 새소리만 들리니 불현듯 추리소설 장면과 범죄영화 필름이 슥슥 돌아갔다.
그때부터 종종걸음으로 풀숲 사잇길을 빠르게 전진하며 거의 탈출자처럼 황급히 내달렸다.
꿈속에서 푹푹 빠지는 모래사장을 걷듯 걸어도 걸어도 숲으로부터 벗어나지를 않자 등은 땀범벅, 하여튼 무작정 돌진해 나갔다.
정신없이 내빼느라 모자가 벗겨진 줄도 모르고 마라톤 주자처럼 달음박질을 쳤다.
한참 후 화순 화력발전소 굴뚝이 보이자 비로소 안도감이 들었다.
멀리서 들리는 차소리도 반가웠다.
뒤에 알고 보니 월라봉이 흘러내려 바다로 빠지며 빚어낸 박수기정 위 평원은 무척이나 넓디넓은 곳이었다.
말 방목장이 있는지 말이 산에서 내려가지 못하도록 고안된 리을자(ㄹ) 형태의 출입문도 나있었다.
그만큼 너른 줄 모르고 지형 파악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무모하게 나섰다가 한마디로 식겁했다.
화순에서 바라본 박수기정 측면은 대평마을에서만큼 근사하진 않았다.
대신 높이 100미터에 달하는 벼랑 아래 널브러진 어마무지 큰 바윗돌마다 하도 거대한 데다 기묘하게 생겨 이색진 정경에 혹하고 말았다.
현대조각품 같기도 하고 불규칙한 벌집 혹은 골다공증에 걸린 뼈 단면도같이 구멍 난 바위 표면 까칠까칠해 미끄러질 염려는 없었다.
부챗살처럼 펴진 주상절리 형태의 검은 해암마다 낚시꾼들 여럿이 진을 치고 있었다.
위험천만인 박수기정 해안길을 탐색한 어느 호사가 글을 본 적이 있다.
집채만 한 바위 틈새로, 수직 바위 낭떠러지 아래를 네발로, 조심조심 암벽등반하듯 가까스로 돌았는데 근 두 시간이나 걸렸다고 한다.
지질학자가 봐야 할 독특한 단층대도 있고 석벽 아래 커다란 석굴 뚫려있었으며 바위 틈새에서 수도꼭지 틀어놓은 듯 용천수 콸콸 솟구쳐 흐르더라고 했다.
이름처럼 바가지로 퍼마실 수 있는 맑은 샘물이 솟는 벼랑이라서 박수(바가지로 뜨는 물) 기정(절벽)이란 제주어 그대로이겠다만.
스턴트맨 흉내는 절대 사양, 단지 눈으로 그 길 그려보다가 화순 금모래해변을 거쳐 차도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