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에서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 벗 삼아

by 무량화


영실 기암으로 둘러선 오백장군 거느리고 깔딱 고개 헥헥대며 넘어섰다.

햇살 따끈해도 짙푸른 계곡 바람 시원하게 몰아쳤다.

신록 깊어가는 숲은 스무 살 청년처럼 건강미가 넘쳤다.

벌써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팀도 있었다.

새벽같이 와서 일찌감치 하산하는 젊은이에게 철쭉이 좀 있더냐고 물어봤다.

그가 소지한 대형 카메라로 미루어 사진을 찍고자 올라온 듯해서였다.

에이~ 벌써 다 졌어요, 라며 싱겁다는 듯이 웃는다.

단호한 한마디에 기대감 툭툭 털어냈다.

숫제 홀가분하다.

꼬닥꼬닥 나무계단 딛고 올라 드디어 해발 1400 고지.

구상나무 싱그런 향 덕분인지, 높이가 있어서인지 흐르던 땀이 점차 식어갔다.

무엇보다도 오르막을 지나 산길 완만해진 덕인듯싶었다.

청청한 상록 침엽수가 하얀 뼈로 화한 고사목 지대를 통과했다.

처음 볼 때는 감탄사 절로 터졌던, 산정에 드넓게 전개된 놀라운 대평원.

연분홍 철쭉꽃이 천상화원 이뤘더라는 곳이다.

군데군데 더러 늦된 철쭉꽃이 남아있었다.

윗세족은오름은 하산길에 오르기로 하고 노루샘에서 물병 채운 후 윗세오름으로 곧장 향했다.



윗세오름 휴게소 층계에 앉아 김밥과 과일로 점심을 때우고 남벽분기점으로 전진했다.

양편은 구상나무숲, 오르막 내리막이 계속되는 푸른 터널 길을 지나면 이번엔 태양 곧바로 내리쬐는 평원길.

그래도 백록담 남쪽 화구벽이 점점 선명하게 드러나자,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용암의 기기묘묘함에 아예 시선고정하게 된다.

남벽에 수직으로 솟구친 바위마다 칼바위 송곳바위, 자코메티 조각같이 예리한 자태 연달아 나타나 지루하지가 않다.

웃방아오름 아래를 지나는데 섬휘파람새와 뻐꾹새 서로 화답하듯 노래 주고받는다.

용출수 고인 방아오름샘 맑은 물에 꼬리 까닥 대며 물 한모금 마시고 가는 새 이름은 뭘까.

점점 뜨거워지는 태양, 방아오름 전망대 나무 데크에 털썩 주저앉아 두 다리를 뻗는다.

또다시 왔다 가노라, 분기점을 뒤로하고 홀가분하게 그냥 그렇게 머물며 남벽 하염없이 올려다본다.

좀 전에 본 남벽이 자코메티 작품 닮았다면 여기서는 눈싸움하듯 용암 덩이 마구 내던진 모양새 마치 공룡 발바닥 닮ㅔ았다.

폭발하던 그 기세 그대로 흘러내리다가 서로 눌리고 덧겹쳐지고 다시 비집고 터져 나온 마그마, 야수처럼 이빨 드러낸 채 울부짖는다.

구름도 삼가 접근을 꺼려 저만치서 새털 조각으로 흩어져 버린다.


온 길 되짚어 하산을 한다.

백록담 가에서 뻐꾹새가 우리를 전송해 준다.


그러면서 내년엔 좀 일찍 오라 당부하네.


윗세오름 휴게실 앞 새로 만든 대피소를 잠깐 둘러본다.


건물 외관이 마치 아담하고 세련된 작은 교회 같다.


실내에는 간이의자가 줄지어 놓여있고 에어컨 시설이 되어있으니 아마 난방도 가능하겠지.


허리까지 덮는 적설량으로 길이 막힌 날, 설산 등반하다가 조난당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겠다.


이번엔 노루샘에 들러 시린 샘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삼다수 물병 비워 물을 받아 배낭에 넣는다.


에비앙에 비할 바 없는 이 물이야말로 한라산 최고 높은 지역에서 솟은 특급 삼다수다.


족은윗세오름에 오르려 했으나 제주 쪽 하늘은 안개구름이 가득하다.


시야 트이지 않는 전망일 터라 미련 없이 포기하고 만다.


하산길은 서두르지 않아도 금방 내려와 진다.


우리 2만 2 천보 걸었네요, 도반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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